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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이나 승진 탈락, 모성권(출산휴가, 육아휴직) 침해 등, 여성들은 노동생애 중에 많은 차별을 겪는다. 이러한 고용상의 성차별은 여성들이 직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된다. 대표적인 예로, 작년 말 검찰청에서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중간 수사 결과에서 대한석탄공사와 가스안전공사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 단계에서 비정상적으로 낮은 점수를 주거나 점수를 조작해 여성지원자를 탈락시켰음을 확인됐다.

이뿐 아니다. "여자가 애 낳고도 오래 다니기엔 ○○분야가 좋다"는 주문을 숱하게 들으며 '좁은 미래'에 갇히는 것, '남자인 스펙'이 없어 더 미친 듯이 스펙쌓기를 하면서도 보다 가중된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 어렵게 붙은 최종면접에서 '결(혼)-남(친)-출(산) 계획에 대한 질문을 들어야만 하는 것 등 '채용 성차별'은 여성의 취준시기에 다양한 층위에서 존재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2018년 3월 8일 여성의날을 맞아 '채용 성차별'의 문제를 드러내고자 20대 취준여성들을 인터뷰하고 집담회를 가졌다. 그 내용을 총 4회의 연재로 기고한다. [편집자말]
청년실업을 사회문제로 꼽는 사람은 많지만 청년 취준생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열정 페이, 무급 인턴, 삼포세대 등의 단어들이 심심찮게 언급되는 것을 보면 취준생들의 서사가 많이 알려진 듯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 속에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가 있다. 바로 취준생이자 '여성'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성 취준생들은 취업전선에서 구직자로서의 자질을 갖춰야 함과 동시에 남성과 동등하게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어필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을 평가하는 시각에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물음부터 앞선다. 노동자보다 '여성'으로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취준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 여성 취준생의 서사를 담고자 지난 2월 8일 한 카페에서 김서현(가명)씨를 만났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학생 자원활동가 마라가 김서현 씨를 인터뷰 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학생 자원활동가 마라가 김서현 씨를 인터뷰 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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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커리어우먼을 꿈꿨지만, 현실은 '시궁창'

"저는 성공한 여성이 되고 싶었어요. 하이힐, 정장을 차려 입으면서도 국제기구나 NGO에서 일하는 그런 멋있는 여성상을 바랐던 것 같아요."

서현 씨는 원래 비영리·사회공헌 분야 직업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 졸업이 가까워지고, 부모님의 퇴직시기도 다가오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서현 씨는 취업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었다'고 했다. 취업시장이 불안정 하더라도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나은 것을 택하기 위해 서현 씨는 토익 점수를 따고,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의 언어도 준비했으며,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과 전산회계 자격증 등을 구비했다. 그는 취업과 연계되는 분야로 유럽에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취업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살펴보니 여성들에게 취업의 문제는 연봉과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고민하게 되죠. 저희 어머니 같은 경우는 의료 쪽에서 종사하시다가 아이들 때문에 10년 정도 일을 쉬었다가 늦은 나이에 직장으로 돌아가 힘들게 다시 자리 잡으셨거든요. 그리고 대기업에서 일했던 외숙모 같은 경우도 (여자라는 이유로) 어떻게 더 쉽게 퇴직을 당하는 지도 보았고요."

주변을 둘러보아도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아 온 여성을 찾기가 힘들었다. 당장 가족들의 사례만 봐도 막막했다. 서현 씨는 그만큼 한국에서 여성이 경력 단절되지 않고 일을 계속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체감했다. 들려오는 비슷한 세대의 지인들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영업직 쪽은 '물경력'(경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행태)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쪽으로 입사했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많이들 잘린다고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외국기업에서 서비스업 쪽 일하던 한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한국 동종업계에 면접을 봤는데, 여자 나이 26살은 아슬아슬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어요."

'국내 대기업은 힘든 25살 여자', 회계 쪽으로 취준

갖가지 스펙을 마련했지만 취업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서현 씨는 이력서, 자소서 그리고 면접을 대비하기 위한 학원에 다녔다. 대략 한 반에 10명의 취준생들을 모아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 동안 '취업 스킬' 세미나를 제공하는 학원이었다. 서현 씨는 전직 대기업 이사인 남자 선생님 반에 있었다. 세미나 선생님은 서현 씨에게 대뜸 회계·전산 분야가 잘 맞을 것이라며 서현 씨가 취직할 분야를 회계로 정해주었다고 한다. 

"그 분과 면담을 할 때는 저보고 25살 넘은 여자는 국내 대기업은 무리라고 했어요. 이 말 때문에 저는 스스로 한계를 미리 그어버렸고요. 그리고 수업 시간에 가만히 듣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고 회계가 딱 적성에 맞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수업 시간에는 기본적으로 경청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웃음) '조용해 보이는 여자'는 회계 전산직과 같이 누군가를 보조하고 지원하는 업무에 제격이라고 판단하신 거겠죠."

성역할에 대한 편견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들은 후 서현 씨는 그 선생님이 말한대로 회계쪽 취준을 결정했다. 무려 대기업 이사로 지냈던 사람이 무 자르듯 이쪽이 맞을 것이라 하니, 다른 분야를 잘 모르는 취준생의 입장에선 그의 말이 나침반과 같았다. 게다가 회계 분야는 여자들이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이라는 기대도 결정에 한 몫 했다. 주변으로부터 회계·전산직은 여성들이 대부분이니까 아이를 낳아도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경력을 인정받고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

그러나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경력단절 없이 근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좋은 근무환경을 뜻하진 않는다. 들여다보면 박봉과 오랜 근무시간에 시달리는 '안 좋은 일자리'들을 '여 직원들이나'하는 일로 치부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기업 회계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가 이제 3년차로 접어들었는데, 직급이 올랐지만 정말 박봉이래요.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버는 정도? 그런데 같은 직장의 남자 과장이 '회계 전산직은 여자가 길게 할 수 있을만한 일이다' 말하면서, '(널) 자르진 않을 거야'라고 말했대요. 이런 거 보면 회계 전산직은 같은 동료가 아니라 '여직원'의 영역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남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상대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서현 씨는 자신에게 '안정적인 직장'은 무난한 월급, 유연한 노동환경, 그리고 쉽게 잘리지 않는 것의 삼위일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안정성'은 경력 단절을 당하지 않는 것 위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를 포함한) 여성들이 쉽게 잘리지 않는다는 것만 보고 회계 분야로 취직하길 선택한다고 봐요. 회계뿐만 아니라 비서, 간호 조무사 같은 직종들도. 설사 경력이 단절되더라도 재취업은 빨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서현 씨는 이렇게 경력단절을 기준으로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한 강박이 자신의 존엄성을 점점 침해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나 자신'을 기준 삼아서 미래를 설계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여성에게 제약이 많으니 제가 이 현실에 잠식 당하는 것 같았어요. 아직 오지도 않은 30대와, 하지도 않은 결혼, 낳지도 않은 아이를 걱정하면서 말이에요. 원하는 분야로 취업할 수 없는 게 따지고 보면 내 잘못도 아닌데, 나중에는 스스로를 공격하게 되고... 힘들었어요."

 문정희 시인의 시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2001)> 중에서.
 문정희 시인의 시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2001)> 중에서.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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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은 '취준 고민의 질'이 다르다

서현 씨는 여성과 남성이 취직이 되어서 그릴 수 있는 비전이 서로 다르다면 취준 시절의 고민도 성별화되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대 여성 친구들이 결혼·임신·출산·육아 이후를 걱정하며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 반면, 남성 친구들은 취직을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 승진해야 할지, 혹은 사업을 한다면 사업을 어떻게 굴려서 키워야 할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성 취준생의 고민과는 너무나도 질이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거죠. 저희 친오빠만 봐도 그래요. 오빠가 취업 준비 기간이 길었는데, 그때도 오빠는 자신의 적성과 이 진로과 맞느냐에 대한 것이었어요. 저는 경력단절이나 결혼, 출산 시 해고 같은 것을 고민할 때 말이죠. 오빠는 취직 된 후에는 하루에 13시간씩 정말 열심히 일해요. 그렇게 해서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하길 기대하면서... 실제로 승진도 했고요.

그런데 저는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 하더라도 내가 과연 오빠처럼 일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곤 해요. 제 주변에 직장다니는 여자 친구들은 현재 직장이 있는데도 언제 경력이 끝날지 모른다면서, 부동산 자격증을 따야 할 거 같다고 하거나 공부방을 차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말 종종 하고요."

서현 씨는 현재 회계 분야로의 취업 준비를 멈추었다. 작년 10월, 한 여성단체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패널로 나가, 취준 압박 속에 스스로에게도 감춰놨던 여성의 노동과 관련된 성차별적 구조에 대한 고민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 토로하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참고: 한국여성노동자회 팟캐스트[을들의 당나귀귀 | 취준페미 특집1]).

"경력 단절을 걱정하며 회계 쪽에 취직한다 해도, 저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잘리지 않는다는 점이 오랜 근무시간과 경직된 근무환경 등의 힘든 노동조건을 상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정말로 제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나 답게 살기를 다시 한번 꿈꾸며 다른 선택을 한 서현 씨. 모두가 취직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로 여성 취준생들이 성별화된 틀 안에서 평가받는 구조는 여전히 고민으로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서현 씨는 여성들이 각자가 취업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언어로 표현하다 보면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서도 의지를 갖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지금은 방향을 틀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경력단절이나 결혼, 출산의 문제가 계속 저의 발목을 잡겠죠. 이 불안함을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여성이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라서 겪는 차별'에 대해서 다같이 발언하고 행동하는 발언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강경화 장관 같이 여성 롤모델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러다 보면 세상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3.8 여성의날 - 20대 여성취준, 이거 실화냐 다음기사]
② 결혼하니 "올해 그만두냐" 묻던 회사, 커플링을 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마라(최지연) 님은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학생 자원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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