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한 장면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한 장면 ⓒ KBS2TV


25일, 평창올림픽 폐막식과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29.3%(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였다. 물론 KBS1을 비롯해 MBC와 SBS 등 3개 채널에서 폐막식 중계를 한 탓도 없지 않겠지만, 시청률 하락의 이유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주 <황금빛 내 인생>의 경우 시간을 변경해 방송했음에도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충성도를 보이던 시청자들의 마음에 뭔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당초 계획돼 있던 50회에서 2회를 연장해 단 4회 방송을 남겨두고 한참 절정을 달려야 할 이 드라마는 오히려 방영 이래 가장 큰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는 시청자들의 불만과도 맞닿아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시청률 30% 정도는 거뜬히 넘는 이른바 '국민 드라마'이다. 그리고 이들 '국민드라마'는 그 시청률에 걸맞게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프로파간다'이다. 때문에 드라마는 중산층인 한 가족을 중심에 두고 자신들보다 나은, 혹은 못한 다른 가족들과 엮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엔 가족 모두가 힘을 합쳐 모든 것을 이겨내고 가족 화합에 도달한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전에 KBS2TV를 통해 방영됐던 <월계수 양복점>이 그랬고, <아빠가 이상해>가 그랬으며, 이제 종반을 달려가는 <황금빛 내 인생>이 그러하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황금빛 내 인생> 작가 소현경이 드라마를 통해 설파하고자 하는 주제의식과 KBS2TV 가족드라마의 정체성이 충돌하며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명탐정 서태수로 인해 진짜 위기에 빠진 해성

지난 47회에 이어 48회도 아빠 서태수(천호진 분)의 활약은 거의 '셜록'급이었다. 47회 전직 무역맨이었던 서태수는 쏟아지는 '찌라시' 기사 때문에 자신의 딸들이 위험에 빠지자 과거의 경험을 살려 기사의 출처를 밝힌다.

이어서 48회 최도경을 돕기 위해 소액 주주들 설득에 나선 서지안이 들고왔던 소액 주주 명단을 보고 의아해 하던 서태수는 위암 말기인 몸으로 해당 집들을 일일이 방문해 최도경 측에 위임장을 넘기지 않은 소액 주주들이 사실은 노진희의 위장 주식 매입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왜 '셜록'에 가까운 서태수의 활약이 필요했던 것일까? 이것은 <황금빛 내 인생>이 애초에 풀어놓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서다. 서태수의 아내 양미정(김혜옥 분)의 거짓말로 딸들이 뒤바뀌게 된 해성가, 그로 인해 서태수네 집안은 드라마 내내 '원죄'를 가지게 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에 빠지게 된 두 집안의 아들 최도경과 딸 서지안. 서지안은 재벌이라는 존재론적 딜레마에, 저 '원죄'까지 얽혀 계속 최도경과의 사랑을 거부한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원죄'의 해결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태수가 해성가 위기에 '해결사'로 등장하며 '은인'이 된다. 또한 드라마 내내 무능력한 가장으로서 외면받고, 그래서 병까지 얻었던 서태수가 '아버지'로서 장렬하게 그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도 결정적 전환점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47, 48회에서 보여준 과거 상사맨의 경험을 살린 '명탐정' 서태수의 활약이다. 그로 인해 서태수와 그의 딸 서지안은 위기에 빠진 해성가를 살린 '은인'이 되고, 서태수 집안의 '원죄'는 상쇄된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또 다른 딜레마가 발생한다. 할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해성가 후계자 자리는 싫다며 해성가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사업체까지 꾸린 최도경은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집안의 뿌리를 찾아 해성가로 복귀한다. 뿐만 아니라 이모 노진희네 부부가 찌라시 기사 등의 부도덕한 방식으로 할아버지를 대표 이사에서 몰아내고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조차 해임시키려하자 분개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해성을 장악하려는 이모네에 대항하여 해성을 다시 복구시키려 한다.

하지만 최도경의 의도가 무색하게 해성가의 위기 상황에서 최도경을 비롯한 그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노양호의 대처는 무능력했다. 서지안을 비롯한 셰어하우스 '동지'들의 소액 주주 설득 과정, 그리고 거기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노진희 측의 위장 주식 매입을 서태수가 밝히는 동안, 최도경을 비롯한 해성가의 식구들은 주요 주주들의 몇 마디 말만 믿고 주주총회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잘 될 것이라 안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태수와 서지안의 활약은 오히려 최도경을 비롯한 해성가의 존재론적 무능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만다. 오히려 무능력한 최도경 일가, 부도덕한 노진희 일가의 해성이라면 서태수의 도움을 얻은 최도경의 '수성 성공'이 아니라 '해체'가 되어야 맞는 것이다.

재벌 체제의 비판적 시각, 그 귀추는?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한 장면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한 장면 ⓒ KBS2TV


노양호 회장은 드라마 전개 과정 내내 족벌경영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혈연에 매달리면서 최도경에 집착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를 제거하려 했던 노진희 쪽과 그에 합류한 주주들의 결정은 과연 잘못된 것일까?

드라마는 남자 주인공 최도경과 여자 주인공 서지안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최도경네 편을 들며 해성가 주주 총회 쿠데타의 논점을 모호하게 한다. 직원들 말대로 시키는 일만 했던 최재성, 자신의 꿈을 찾겠다고 해성을 버리고 뛰쳐나간 최도경과 달리, 지금의 해성이 되도록 애썼던 노진희의 남편 정명수의 야망은 과연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는 '족벌 경영'의 문제점을 줄곧 지적해 왔으면서 정작 두 주인공의 사랑을 위해 '족벌 경영'의 편에 서는 '자가 당착'에 빠진다(이후 어떤 전개를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소현경 작가는 그동안 노양호라는 입지전적 인물의 자수성가로 이루어진 해성의 족벌 경영 체제를 비판적으로 그려왔다. 그런 비판적 묘사의 정점은 바로 해성이라는 조직 속에서 '개'가 되기를 거부했던 최도경의 '가출'과 자수성가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성가의 위기 속에서 최도경의 모습은 '꿈을 찾기 위함'이 아닌 '책임 방기'로 귀결되고 만다.

이렇듯 소현경 작가가 재벌 경영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벌여놓은 포석과 그 정점의 갈등으로 등장한 노진희네 부부의 해성가 경영권 장악 쿠데타의 과정은 그저 찌라시 기사로 인한 부도덕한 경영권 장악 획책을 넘어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최도경의 말처럼 '그럼에도 내 뿌리이고, 나를 사랑했던 할아버지요, 해성가를 일군 장본인'이라는 말로 이 위기를 무마할 수 있을까? 과연 애초에 가졌던 최도경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금의 위기에서 어떻게 풀어갈 것이며, 또 어떻게 '족벌 경영 프렌들리'가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을 극복해 나갈 것인지 소현경 작가의 현명한 한 수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황금빛 내 인생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