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코미디를 한데 녹인 영화 <흥부>를 두고 정우는 고민이 많았다. 자기 밥벌이만 알던 인물이 이후 대의를 깨닫고 조선 전역을 달군 풍자소설을 쓴다는 점에서 매력이 컸지만, 선뜻 용기를 낼 수는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극 장르인데다가 캐릭터 자체가 배우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여지가 컸기 때문.

생각을 거듭하던 그가 결정하게 된 주요한 이유는 "함께하는 사람들"때문이었다. 베테랑 정진영을 비롯해, 평소 그가 흠모하던 고 김주혁 등이 한다는 소식에 정우는 "욕심을 냈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그의 첫 번째 사극 도전이 시작됐다.

캐릭터 연구

이름만 빌려 왔을 뿐 영화 <흥부>는 한국 사람들이 흔히 아는 흥부전과는 좀 다르다. 홍경래 난으로 헤어진 형을 찾던 흥부(정우)는 형의 소식을 아는 조혁(김주혁)을 만나며 시야가 넓어진다. 정치적 야욕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자신과 자신의 형(정진영)의 이야기를 써보라는 제안에 흥부는 조선팔도를 열광케 하는 새로운 '흥부전'을 완성한다. 당시 조선 양반들의 행태를 풍자한 작품이었다.

"힘든 캐릭터였다. 보기보다 흥부의 감정선이 깊기 때문이다. 놀부 형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영화에선 놀부 형과 쌓아놓은 일화가 없어서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애정을 가볍게 연기할 수도 없고, 짧지만 강렬하게 표현하려 했다.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그만큼 힘들었다. 제 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할 공간이 무엇일지 많이 고민하면서 연기했다."


많은 고민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라지만 정작 정우는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정진영, 정상훈, 김주혁 등을 언급하며 "즐겁게 촬영한 만큼 관객 분들도 충분히 그걸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 중 그와 가장 많은 장면을 호흡해야 했던 김주혁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워낙 선배가 기존 작품에서 보인 모습들이 좋으셨다. 그 분의 연기를 제가 논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선배와 같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분만의 느낌이라는 게 있다. 김주혁 선배님 뿐 아니라 정진영 선배님 역시 <왕의 남자> 등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자라왔으니 이 분들과 같은 현장에 있다는 자체가 큰 경험이었다."

풍자와 해학 

그가 언급한 <왕의 남자>가 어쩌면 <흥부> 개봉 이후 관객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될 작품일 것이다. 당대를 풍자하고 비틀었다는 점에서 <흥부>와 비교해서 논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자가 진지하고 진중하게 이야기를 풀었다면 후자는 보다 가볍고 재치 있게 풀었다는 게 차이였다. 게다가 정우의 바로 전 영화가 <재심>이다. 부조리와 비상식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재심> 역시 분위기는 전혀 달라도 <흥부>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왕의 남자>랑 비교된다는 건 영광이다. 개인적으론 그걸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영화마다 어떤 메시지가 있는 법이고 그걸 어떻게 풀어내느냐의 차이지 않을까. <흥부>는 밝고 신명나게 풀어냈다. 사실 비교할 작품이 너무 많다. <관상>은 너무 재밌게 본 작품이고, <사도> 역시 인상적으로 봤다. 이런 좋은 작품들 사이에 어깨를 견주면 좋은 일이지.

어떤 메시지가 좋아서 출연하는 건 아니다. 그건 연출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전 인물의 감정이 중요하다. <재심>과 <흥부> 모두 초반엔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점차 정의를 찾아가는 모습으로 변한다. 이렇게 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해서 연기한다. 물론 시나리오 자체도 중요하다. 어떤 이야기를 누구와 하느냐, 거기서 내가 할 몫은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려 한다. 좀 지루한 대답일 수 있지만 이게 사실이다." 


배우의 몫

자신의 학창시절을 영화화 한 <바람>(2009)으로 데뷔한 이후, 꽤 긴 무명생활을 거쳤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로 급부상 했다는 표현이 다른 기사에 종종 등장했지만 급부상이라는 단어보단 꾸준했다는 단어가 적절할 것이다. 해당 드라마로 널리 알려진 건 맞지만 이미 그는 그전까지 스무 편이 넘는 영화의 주연과 조연을 경험했으니 말이다. 특유의 편안해 보이는 연기가 그의 장기라고 치자, "사실 그 편안한 연기를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타입 같다"고 그가 고백했다.

"<재심> 때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편하게 연기하는 것 같아 촬영도 편하게 즐길 거 같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다른 인터뷰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걸 봤다. 연기할 땐 편해 보이는 걸 찾으려 한다. 그래야 관객 분들도 불편하게 보지 않을 테니까. 다만 그 모습을 찾기 위해 엄청 노력하려고 한다.

여전히 전 뚜벅뚜벅 걷는 중이다. 아직 뒤돌아보고 제 경력을 논할 때는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작품을 쌓아가다 보면 뭔가 느끼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한참 더 작품을 해야지! 연기 동력은 역시 사람이다. 가족일 수도 있고,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일 수 있다. <흥부>도 그랬고, 매 작품마다 제 한계를 느낀다. '이거 이상 안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게 되더라. 

스스로를 괴롭히는지 잘 몰랐는데 그러는 것 같더라. 피곤한 일이지(웃음). 연기를 즐기기 위해선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사 연습도 잘 해야 하고. 물론 어떤 경우엔 준비해서 가는 것보다 백지상태에서 잘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연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바람>이라는 작품도 부담 없이 한 것처럼 보이지만 6개월이란 시간을 사전 기획에 투자해야 했었다." 

설 연휴 모처럼 유쾌한 사극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에 그는 "많은 분들이 보시고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젠 또 어엿한 가장이자 아빠다. 가족 이야기에 조심스러워 했지만 "(아이가) 성장하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모습에 힘을 얻는다"며 그는 "저 역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좋은 쪽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