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관악고 체육교사는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윤성빈 선수의 선전을 기원하며 칠판에 응원 문구를 적은 뒤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영태 관악고 체육교사는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윤성빈 선수의 선전을 기원하며 칠판에 응원 문구를 적은 뒤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아이고, 제가 뭐 한 게 있다고요..."

지난 1월 31일, 평창동계올림픽을 9일 앞두고 만난 김영태 관악고 교사(58)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이 같이 말했다. 고개를 연신 흔들며 "다 성빈이가 잘해서 그런 거죠"라고 말하는 그는 사실 '스켈레톤 세계랭킹 1위'를 발굴한 당사자다.

김 교사가 말한 "성빈이"는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종목의 유력한 우승 후보인 윤성빈 선수(25, 강원도청)다. 고3 때 처음 스켈레톤을 시작한 윤성빈은 6년 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넘어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특히 2017~2018시즌은 윤성빈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일곱 차례 월드컵에 출전해 다섯 차례 1위, 두 차례 2위를 기록한 윤성빈은 8차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세계랭킹 1위 자리에 올랐다. 김 교사는 "성빈이에게 참 대단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라고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걔는 어떻게 그렇게 떨지 않고 잘하는지 몰라요. 그 자리에 있으면 마음이 초조하고, 조바심도 생길 것 같은데... 이젠 성빈이 경기를 보고 있으면 오히려 제가 가슴이 떨려요."

윤성빈의 탁월한 운동신경 "30여 년 교직생활 동안 처음"

윤성빈, 쾌속질주 지난해 3월 17일 오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7 BMW IBSF 봅슬레이 & 스켈레톤 월드컵' 남자 스켈레톤 경기에서 윤성빈이 질주하고 있다.

▲ 윤성빈, 쾌속질주 지난해 3월 17일 오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7 BMW IBSF 봅슬레이 & 스켈레톤 월드컵' 남자 스켈레톤 경기에서 윤성빈이 질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윤성빈도 고3이던 2012년까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신림고, 김 교사도 당시 신림고에 재직 중). 김 교사의 표현대로라면 "성빈이는 놀기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는,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볼 수 있었던 아이"였다. 방과 후 체대 입시반을 운영했던 김 교사는 그런 윤성빈을 눈여겨보고 함께 체대 입학을 목표로 잡았다.

함께 운동을 시작한 뒤, 윤성빈은 김 교사를 자주 놀라게 만들었다. 김 교사는 "30여 년 교직 생활 동안 저렇게 체격이 잘 갖춰진 친구는 처음 봤다"며 몇 가지 장면을 떠올렸다.

"그날도 밖에서 언덕을 오르내리며 달리기를 한 뒤 체육관으로 들어오고 있었어요. 제가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성빈이가 친구들이랑 장난을 치면서 뒤따라오고 있었죠. 한 친구가 농구대를 향해 점프를 했는데 림에 손이 닿지 않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성빈이가 (그것도 못하냐는 식으로) '에이'라고 말하더니 제자리 점프로 림을 잡는 거예요. 곁눈질로 그걸 보고 너무 신기해서 다시 한 번 잡아보라고 했어요. 점프를 '팡'하고 뛰더니 또 떡하니 림을 잡는 거예요. 제가 농구선수 출신이거든요? 고1만 됐어도 제가 농구를 시켰을 텐데..."

김 교사는 윤성빈의 고교 시절을 떠올리며 "날아다녔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가 소개한 또 다른 일화다.

"체대 입시를 위한 종목 중에 제자리 멀리뛰기가 있거든요. 보통 아이들이 2m 6, 70cm를 뛰고, 좀 잘 뛰면 2m 80cm를 뛰어요. 근데 이 녀석이 3m를 뛰더라고요.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었죠. 성빈이의 그런 하나하나의 모습이 '아, 이 친구는 운동을 위해 태어난 친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돌이켜보면 '세계랭킹 1위 윤성빈'의 탄생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수많은 우연이 모여 필연을 만들어냈고, 김 교사도 그 필연을 만든 누군가 중 한 명이 됐다.

먼저 2전 3기 끝에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됐고, 대한민국에 첫 썰매 종목 경기장(올림픽슬라이딩센터)이 생기는 등 인프라가 확충됐다. 그러면서 한국체육대학의 강광배 교수(체육학과, 46)를 중심으로 썰매팀도 만들어졌다(관련기사 : 썰매 레전드가 '문재인 후보' 지원한 까닭).

강 교수가 썰매팀 선수 영입을 고민할 때, 김 교사는 서울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의 이사를 맡고 있었다. 농구선수 출신인 김 교사였지만, 지인의 부탁으로 썰매 종목에 애정을 쏟고 있던 때였다. 그 즈음 김 교사는 윤성빈을 만났고, 강 교수에게 윤성빈을 추천했다.

한체대에서 썰매팀 테스트가 있던 당일, 김 교사는 점심 즈음에서야 "정말 괜찮은 아이가 있는데 혹시 고등학생도 괜찮을까?"라고 물었다. 강 교수는 "당연하죠. 상관 없습니다"라고 답했고, 김 교사는 곧장 윤성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파이크 빌려 신던 제자, 뒤에서 맘 졸이던 스승

 김영태 교사가 지난해 월드컵 8차 대회 당시 알펜시아를 찾아 윤성빈 선수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태 교사가 지난해 월드컵 8차 대회 당시 알펜시아를 찾아 윤성빈 선수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유성호


2012년 6월, 그렇게 윤성빈은 첫 테스트를 받는다. 김 교사는 그날 윤성빈을 불러낸 전화 통화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 윤성빈, 뭐하고 있어?
"선생님, 저 자고 있었어요."
- 지금 몇 시야, (낮) 12시잖아.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직도 잠을 자고 있어? 게을러 빠져가지고... 너 빨리 씻고 오후 3시까지 한체대로 나와!
"저 씻고 나가면 그 시간에 못 갈 거 같아요."
- 아무튼 걱정하지 말고 체육복장 갖춰 입고 나와.

결국 30여 분 지각한 윤성빈이었지만, 테스트 후 강 교수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속으로 마음 졸이던 김 교사도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성빈이가) 한체대에 도착했는데 티셔츠·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더라고요. 테스트를 하려면 달리기도 해야 하는데 그냥 운동화로는 안 되잖아요. 그래서 강 교수 통해서 그 자리에서 스파이크도 빌려 신었어요. 걱정스러워서 테스트 내내 눈을 못 떼고 있는데 강 교수가 상기된 표정으로 기록지를 들고 오더라고요. (강 교수가) '얘 좋은데요?' 그러기에 그제야 안도했죠."

이후 강 교수에 의해 스켈레톤 썰매 위에 오른 윤성빈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3개월 만인 2012년 9월에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 출전해 16위를 기록했다. 김 교사는 윤성빈이 처음 국가대표가 됐을 때 벌어진 '웃픈' 일을 떠올렸다.

"그때 교장선생님에게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현수막을 걸어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그랬더니 '스켈레톤이 뭐야?' 그러시더라고요(웃음). 결국 현수막을 걸긴 했지만, (지금도) 사실 스켈레톤이란 종목을 (많은 분들이) 잘 모르잖아요."

이제 윤성빈은 세계랭킹 1위 자리에 올라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첫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선수로 성장했다. 스켈레톤이란 종목에 물음표 대신 느낌표가 붙도록, 금빛 레이스를 위한 담금질도 마쳤다. 김 교사는 제자가 뛰는 현장을 직접 찾아 응원할 예정이다(15일 1·2차, 16일 3·4차 주행).

"윤성빈!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경기한다면 평창에서 반드시 좋은 결과 있을 거야. 선생님은 너를 믿는다. 성빈아, 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김영태 교사 자리에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윤성빈 선수가 스승의 날에 보낸 화환 리본이 놓여져 있다.

김영태 교사 자리에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윤성빈 선수가 스승의 날에 보낸 화환 리본이 놓여져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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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스켈레톤 윤성빈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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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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