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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자연환경의 가치는 제주도에 못지 않지만 일찍이 관광으로 산업을 발전시킨 제주도와 달리 거제도는 조선업이라는 중추산업이 자리하고 있어서 관광은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은 산업이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의 조선업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고부가가치를 가진 조선업은 일본이 가져가면서 한국의 조선업은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버렸다. 거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인 조선업의 쇠퇴는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쳤고 거제시는 수년 전부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관광산업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찾아가 본 거제도는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성탐방
▲ 둔덕기성 성탐방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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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수려한 자연환경을 보기 위해서는 거제 둔덕기성을 먼저 올라가 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일본 왜구의 출현이 잦았던 곳이라서 거제도는 생각보다 성과 읍성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예전에 왔을 때는 주로 경관이 좋은 관광지 위주로 돌아다녀서 이렇게 역사적인 흔적이 많은지 알지 못했다. 오래 전의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둔덕기성은 폐왕성으로 불리다가 둔덕기성으로 명칭이 바뀌어 사적(제509호, 2010.08.24 지정)으로 지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안내
▲ 둔덕기성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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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에는 고려 왕족의 아픈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1170년(고려 제18대 의종 24년) 9월에 상장군 정중부의 반란으로 인해 피난 온 뒤  경주에 가서 이의민에 의해 허리뼈가 부러져 죽기 전까지 3년 동안 머물다간 곳이기도 하다. 둔덕기성은 둔덕면 거림리 뒷산 우두봉(牛頭峰)의 중허리에 있는 산성이다. 이름은 현(晛). 초명은 철(轍), 자는 일승(日升). 인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공예태후(恭睿太后)를 둔 고려 의종의 시호는 강과장효대왕(剛果莊孝大王)이다.

성벽
▲ 석축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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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직접 가서 본 둔덕기성은 견고하게 지어진 산성으로 적을 충분히 막을만하게 지어진 곳이었다. TV 드라마 등에서 고려의종을 상당히 무능하고 사치만 일삼는 왕으로 그렸다. 그러나 사실 의종은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시스템을 갖추려고 노력은 했지만  재위 중 왕권 능멸의 풍조와 신변의 위협으로 시달림을 받다가 결국 의종이 보현원에 거동했을 때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이고(李高) 등 무인들이 정변을 일으켜 폐위된다.

식수
▲ 샘물 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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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은 실제 이곳에 거주를 했던 의종이나 그 시종들과 주둔했던 군사들이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상당히 깊은 수량을 유지하고 있어 조금 신기하기까지 했다. 둔덕기성에 온 의종은 마고할매의 도움으로 천재단을 쌓고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성벽
▲ 성벽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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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둔덕기성은 7세기 신라 시대의 축조 수법을 알려주는 유적으로 현문식 구조인 동문지와 고려 시대에 보수된 성벽의 축성법을 간직한 곳이다. 이곳은 고려 의종뿐만이 아니라 조선 초에 왕씨를 가진 고려 왕족들이 유배된 장소로 역사성뿐만이 아니라 잊힌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남겨진 곳이기도 하다.

거제도
▲ 거제 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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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는 상당히 큰 섬이다. 크기로만 본다면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고 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안 둘레길로만 본다면 제주도의 올레길보다 더 길다. 62개의 부속섬을 가지고 있는 거제도의 면적은 380.1㎢이고, 해안선 길이는 275.1㎞에 달한다. 삼한시대에 변한 12개국 중 독로국(瀆盧國)의 영역이었다가 신라에 속하고 757년(경덕왕 16)에 거제군으로 편제되면서 거제는 이 지역명이 되었다.

몽돌
▲ 몽돌 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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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년 전에 둔덕기성 유적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일정한 크기의 몽돌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는데 망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의 부지 550㎡를 대상으로 표층 10㎝ 가량을 파내자 흙속에 박힌 몽돌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굴 당시 몽돌은 당시 의종을 보호하기 위한 투석용 무기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연구원은 추정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의 입구에는 돌들이 쌓여 있는데 이는 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총 같은 무기가 없었을 때는 돌만큼 훌륭한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리아스식해안
▲ 거제의매력 리아스식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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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맑은 날 둔덕기성에 올라와서 둘러보면 거제도의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멋진 경관이다. 둔덕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어서 이곳까지 올라오는 것이 어렵지 않다. 거제도의 바람이 부는 언덕보다 둔덕기성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더 멋스럽다.

신라의 토목기술의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산성인 둔덕기성은 거제지역의 고대문화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판석형의 석재로 정연하게 쌓은 체성벽과 보축성벽, 그리고 현문식 성문이 남아 있다.

둔덕기성
▲ 거제의 향기 둔덕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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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거제도로 배를 타고 건너오는 사람들은 없지만 옛날에 육지와 떨어져 있어 견내랑 수로를 통해 의종이 건너온 곳에는 지금도 '전하도목'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기도 하다.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왕건의 후손들은 왕씨를 숨기지 못한 왕족들은 모조리 도륙을 당하던지 이곳에 유배되기도 했다. 봉건제 국가에서 왕권을 지키지 못해 이곳까지 유배를 온 의종은 1173년에 김보당 등 의종 복위 세력이 무신 정권에 항거하여 거병하면서 사람을 보내어 유배된 의종을 모셔와 받들고 경주로 가서 웅거하였다. 그러나 무신 정권이 보낸 군대에게 모두 패하면서 47세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 소식을 들은 기성에 남아 있던 신하와 백성들은 석 달 그믐 의종을 추모하는 춤제를 올렸다는 것을 보면 역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능하고 사치만 일삼던 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태그:#거제도, #거제 둔덕기성, #둔덕기성, #고려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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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쓰는 남자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며, 역사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다양한 관점과 균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은 열심이 사는 사람입니다. 소설 사형수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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