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케니는 현대 미국 코미디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전설적인 유머 잡지 <내셔널 램푼> 공동창립자였고, 라디오 방송 <내셔널 램푼의 라디오 아워>를 통해 미국 NBC 장수 인기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의 산파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등장한 미국 코미디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되는 <애니멀 하우스의 악동들(National Lampoon's Animal House)>을 만든 핵심 멤버이기도 했다.

넷플릭스 신작 오리지널 영화 <어느 허무명랑한 인생>(원제: A Futile and Stupid Gesture, 데이빗 웨인 감독)은 바로 이 전설적인 인물의 성공과 몰락을 묘파한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케니(마이클 콜튼 분)가 잡지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고 라디오와 영화 등으로 끝없이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오로지 일에 매진했던 실화를 통해, 영화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그의 인생을 조명한다. <어느 허무명랑한 인생>은 지난 24일 '2018 선댄스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으며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케니와 주변 인물들의 유쾌한 이야기

 영화 <어느 허무명랑한 인생>은 미국 코미디 거장 더글러스 케니의 인생을 담아냈다.

영화 <어느 허무명랑한 인생>은 미국 코미디 거장 더글러스 케니의 인생을 담아냈다. ⓒ Principato-Young Entertainment


케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잡지 편집회의 장면에 나왔던 아이디어를 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린 큰 부리새가 성적 자각하는 이야기', '태만한 엄마들', '낸시 레이건의 데이트 팁', '착한 친구 찰리 맨슨', '베트남전쟁 육아일기', '벌거벗은 황제 닉슨', '미니 마우스의 젖꼭지' 등 풍자와 패러디를 핵심으로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이런 이야기들이 진실을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믿었다.

본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굵직한 사건들 사이에 깨알같이 배치된 뒷얘기와 괴짜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면면이다. 특히 주인공 케니가 <내셔널 램푼> 공동창립자였던 헨리 비어드, 투자자였던 출판사 대표 매티 시몬스, SNL 제작책임자 론 마이클스, 코미디언 체비 체이스 등 실존 인물들과 빚어내는 관계 그리고 갈등이 영화에 큰 생동감을 부여한다.

외모에 큰 변화를 준 도널 글리슨(비어드 역)의 새로운 면모, 에미 로섬(캐슬린 역)의 똑 부러지는 연기, 등장할 때마다 큰 웃음을 주는 매트 월시(시몬스 역)와 조 로 트루글리오(브래드 역)의 감초연기 등을 보는 맛도 상당하다.

하지만 영화가 가장 집중하는 것은 '케니의 일 중독과 코미디에 대한 집착이 과연 어디서 온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영화는 어린 시절 겪었던 형의 죽음, 형을 편애했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끝내 좌절됐던 그의 욕망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는 듯하다. 결국 이 두 가지가 기성 체제에 대한 반항과 야유, 끝없이 인정받으려는 욕구, 현상 유지에 대한 불안, 약물 중독 등 복합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코미디 거장의 장례식

 영화 <어느 허무명랑한 인생> 속 잡지 '내셔널 램푼'의 필진들.

영화 <어느 허무명랑한 인생> 속 잡지 '내셔널 램푼'의 필진들. ⓒ Abominable Pictures


영화는 그런 케니의 인생을 기본적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노년의 모습을 한 케니가 화자로 등장해서 전후사정을 설명해준다는 설정 역시 그런 배경에서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실제 그는 3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마지막 장례식 장면은 코미디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그의 업적에 바치는 헌사로 읽는 것이 마땅하다.

세상에서 가장 웃긴 사람들이 모인 한 코미디 거장의 장례식 풍경이 여타 다른 장례식의 그것과 같다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영화는 침울했던 장례식장 장면을 온갖 음식이 날아다니는 난장판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음식을 집어던지고 비로소 웃는 얼굴이 되는 모습들이 짧게 이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좀 더 길게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최근 며칠은 내가 무시한 날들 중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다'는 문장이 두 번 등장한다. 따지고 보면 케니가 무시한 날들이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가리킨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여가, 즉 일손을 잠시 놓고 혼자 혹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망중한을 뜻한다. 하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이런 시간들을 무시했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대부분 나쁜 약물에서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영화에 인터뷰어로 등장하기도 하는 감독 데이빗 웨인은 그의 인생을 두고 다음과 같이 짧게 평한다. '코미디 판을 영원히 바꿨지만 자신의 삶은 바꿀 수 없었던 사람'.

영화 <어느 허무명랑한 인생>은 이처럼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웃겼던 사람이, 스스로 웃을 일은 별로 만들지 못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어느 허무명랑한 인생 더글러스 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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