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서울역>의 더빙, <부산행> 출연 등 심은경은 연상호 감독과 인연이 깊다. 그 인연을 곧 개봉할 <염력>에서까지 이어가게 됐다. 앞선 두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염력>에선 주인공인 영세세입자 루미 역으로 전면에 나섰다는 것이다.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야반도주 한 아빠(류승룡), 어려운 살림을 함께 꾸리다 철거 용역에 의해 비명횡사 한 엄마. 그러다 십 수 년 만에 나타난 아빠는 초능력이 생겼다며 세입자들 틈에 있지 말고 자기랑 살자고 권한다. 루미 입장에선 원망과 황당함으로 가득할 상황의 연속이다. <염력>은 물리적, 경제적 위기에 몰린 가난한 서민들 틈에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가는 부녀를 다룬다. 아빠의 '초능력'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 히어로의 그것이 아닌 관계 회복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심오한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읽었을 때 심은경이 처음 한 생각은 "연상호 감독스럽다"였다. 출연작뿐 아니라 <돼지의 왕>, <사이비> 등을 보며 스스로 팬을 자처할 정도로 연 감독의 대한 관심이 깊었던 터였다. "이야기를 살짝 비트는 점을 개인적으로 너무 사랑한다"며 심은경은 "평범해 보이는 루미가 그만큼 더 어렵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기본적으로 사실감이 강한 캐릭터였다. 루미가 지닌 자연스러움을 보이고 싶었는데 감독님도 같은 생각이더라. 사실 제가 전작에선 판타지 느낌이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서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다. 감독님이 여러 참고할 영화나 영상을 알려주셨고, 저도 전작들과 달리 그런 레퍼런스들을 많이 봤다."

 영화 <염력>의 한 장면.

영화 <염력>의 한 장면. ⓒ NEW


그렇게 찾아 본 게 <더 레슬러>, 영화 <스포트라이트> 등이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전자에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는 딸이 등장하고, 후자에선 마크 러팔로의 생활연기가 일품이다. 여기에 더해 <다큐3일>이나 <생생정보통> 같은 다큐나 교양 프로도 챙겼다. 촬영 전까지 심은경은 캐릭터를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해갔다.

"감독님의 화법을 매우 좋아한다. <사이비> 땐 결말이 매우 비참했고 인간의 밑바닥 모습까지 담아낸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라 오히려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부산행> 같은 실사 영화에 담긴 감독님 세계관을 보면 굉장히 그 색깔이 짙을 것 같았는데 대중적인 면이 적절히 담겼더라. 감독님에 대한 편견이 깨진 순간이었다. 이번 <염력>도 마찬가지 같다. 철저히 감독님 특징이 담길 것 같은데 한 번 더 비트는 감이 있다.

감독님 워낙 열정적이고 적극적이다. 디렉션 전에 본인이 먼저 연기 시범을 보이는데 배우의 끼도 있다고 감히 생각했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일종의 뼈대였다. 현장에서 지시에 맡게  따라가려 했다. 그만큼 애드리브도 많이 했었고, 연기적으로 제가 스스로를 볼 때도 처음 보는 표정이 많이 나왔다. 그냥 스쳐 지나는 장면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론 그런 제 모습에 쾌감도 느꼈다."

알려진 대로 <염력>엔 2009년 발생했던 용산참사를 떠오르게 하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심은경 역시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지난해가 8주기였고, 감독님과 함께 곧 개봉할 <공동정범>을 관람했다"며 당시 사연을 전했다.

"아예 용산참사라는 사건을 의식하지 않고 참여했다고 할 순 없다. 어쨌든 <염력>의 초점은 '평범한 사람이 초능력을 얻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에 있다. <공동정범>은 영화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관람한 것이다. 음... 감독님의 말씀을 빌리면 <염력>엔 도시개발에 대한 감독님의 시선이 담겨 있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시선을 상업영화로 다룬 것이다." 

 배우 심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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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배우

이제 20대 중반인데 어느덧 14년차 경력이 됐다. 드라마 <대장금>부터 시작해 출중한 연기력을 보인 그는 어느새 한 작품을 책임지는 위치까지 오게 됐다. 흥행의 성패는 있었지만 연기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꾸준히 깊어지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일각에선 그가 너무 여러 작품에 나온 게 아니냐는 걱정 아닌 걱정의 목소리도 있었다.

"글쎄... 작품을 선택하는 게 항상 어렵고 무엇보다 신중해지고 싶기도 하다. 결국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 선택 기준이 되는 거 같다. 정말 자신 있게 그 작품을 좋아하고, 그 캐릭터를 연기하고픈 마음이 생기면 택하는 것 같다. 연기에 대한 고민은 늘 한다. 어떤 평가와 사람들의 인정 사이에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그런 걸 겸허하게 받아들이는데 제가 절 볼 때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의 정체는 바로 '연기를 계속 할 수 있나'라는 본질적 질문이었다. 여기에 대해 심은경은 재능이라고 표현했다. "제가 재능이 있나?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다른 걸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었다"며 그는 말을 이었다.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있었고 괴로웠던 시기가 있었다. <염력>을 하면서 그런 걸 좀 내려놓게 됐다. 촬영 현장에서 스스로 살아있는 걸 느끼고,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이게 너무 신난다. '연기는 이런 힘으로 계속 하는 게 아닐까'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다. 어릴 땐 연기 그 자체가 좋아서 했던 것 같다. 다시금 단순하게 생각하면 진정성이 돌아오지 않을까. 편하게 마음을 먹고 싶고 여유 있게 내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모든 작품이 어떻게 다 사랑받을까. 다만 작품에 담긴 진심이 항상 통하길 원한다. 그게 배우로서 큰 행복인데 그것 역시 매번 실현되기엔 어려움이 있고,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 더 분발하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 흥행이나 평가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신의 영역이고, 개인들의 견해라고 생각한다. 온전히 전 제가 좋아하는 걸 많이 즐겼으면 좋겠다."

 배우 심은경.

ⓒ NEW


담담한 말투였지만 꽤 오랜 시간 고민했던 흔적이 보였다. 심은경은 "내 중심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택한 게 <걷기왕>이었다"며 "차기작들 역시 온전히 제가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다. 관객들에게 그 진심이 느껴지게 한다면 제 몫은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굵은 심지를 드러냈다.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하지만 더욱 신중하고 정확하게 보려고 한다"가 현재 심은경의 선택 기준이자 작품을 대해는 태도였다. 다음 도약을 꿈꾸는 그의 발걸음을 함께 응원하며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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