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이 2년 2개월 만에 옥타곤에서 승리를 따낸 한국인 여성 파이터가 됐다.

'인천 불주먹' 김지연은 28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샬럿의 스펙트럼 센터에서 열린 UFC on Fox 27 대회 저스틴 키시와의 플라이급 경기에서 2-1 판정승을 거뒀다. 2015년 11월의 함서희(현 로드FC 아톰급 챔피언) 이후 UFC에서 두 번째로 승리를 챙긴 한국인 여성 파이터가 된 김지연은 UFC 진출 2경기 만에 첫 승을 챙겼다. 밴텀급에서 플라이급으로 체급을 내린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김지연을 비롯한 12명의 선수가 이날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누린 반면에 반대편에 있던 12명의 선수는 패배의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이 중에는 메인이벤트에서 호나우도 '자카레' 소우자에게 KO로 패하며 설욕에 실패한 데릭 브런슨도 있었고 안드레 필리에게 1-2 판정으로 패한 데니스 버뮤데즈도 있었다. 특히 버뮤데즈는 이번 패배로 3연패의 늪에 빠지며 UFC 진출 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현 페더급 챔피언 할러웨이도 꺾었던 '다크호스'

 버뮤데즈(왼쪽)는 현 페더급 챔피언 할러웨이에게 패배를 안겼던 세 명 중 한 명이다.

버뮤데즈(왼쪽)는 현 페더급 챔피언 할러웨이에게 패배를 안겼던 세 명 중 한 명이다. ⓒ UFC.com


1986년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난 버뮤데즈는 학창 시절 레슬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 시절 북미 아마추어 레슬링의 가장 높은 레벨인 NCAA 디비전1에서 활약하던 버뮤데즈는 2009년 종합 격투기에 데뷔하며 프로 파이터 생활을 시작했다. 실력도 뛰어났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한 선수였던 버뮤데즈는 2010년 한 해 동안 중소 단체에서 무려 8경기를 치르며 착실히 경험치를 쌓았다.

버뮤데즈는 2011년 UFC의 선수육성프로그램 TUF의 14번째 시즌에 출전하며 옥타곤을 밟았다. 16강전부터 4강까지 두 번의 KO와 한 번의 서브미션 승리를 통해 파죽지세로 결승에 오른 버뮤데즈는 결승에서 디에고 브랜다오에게 1라운드 암바로 패했지만 인상적인 경기력을 인정 받으면서 UFC와 정식 계약을 맺었다.

중소단체에서 충실하게 쌓은 경험과 검증된 레슬링 실력, 여기에 화려한 경기 스타일을 바탕으로 스타성까지 겸비했던 버뮤데즈는 정식으로 UFC에 데뷔한 후 파죽의 7연승을 달리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버뮤데즈의 제물이 된 상대 중에는 현재 UFC 페더급 벨트를 가지고 있는 (그때는 아직 덜 아물었던) 맥스 할러웨이도 있었다. 그만큼 버뮤데즈는 페더급의 떠오르는 다크호스로 격투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연승 행진을 달리던 버뮤데즈는 페더급 상위권의 강자 리카르도 라마스와 제레미 스티븐스에게 잇따라 패하며 UFC 진출 후 처음으로 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특히 상대가 체중을 맞추지 못해 계약체중경기로 열렸던 스티븐스전 3라운드 KO패는 버뮤데즈에게 대단히 아쉬운 경기였다. 하지만 버뮤데즈는 일본 페더급의 에이스 가와지티 타츠야와 브라질의 호니 제이슨을 차례로 꺾으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페더급의 중·상위권을 지키던 버뮤데즈는 지난해 2월 UFC 진출 후 처음으로 메인이벤트 출전을 제안받았다. 상대는 조제 알도와 타이틀전을 치렀던 강자지만 부상과 군복무로 3년 6개월 동안 옥타곤을 떠나 있던 동양 선수였다. 당연히 오랜 공백으로 경기 감각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고 버뮤데즈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경기였다. 그렇게 버뮤데즈는 '코리안 좀비' 정찬성의 복귀전 상대로 낙점됐다.

정찬성전 KO패 시작으로 내리 3연패, 위기의 버뮤데즈

 연승을 달리던 버뮤데즈는 작년 2월 정찬성을 만난 후 거짓말 같은 3연패를 당하고 있다.

연승을 달리던 버뮤데즈는 작년 2월 정찬성을 만난 후 거짓말 같은 3연패를 당하고 있다. ⓒ UFC.com


정찬성의 복귀전 상대가 버뮤데즈로 결정됐을 때 국내 격투팬들은 우려를 할 수밖에 없었다. 3년이 넘는 공백이 있었던 정찬성에게 당시 페더급 7~9위를 오가던 버뮤데즈는 너무 강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찬성은 지난해 2월 5일에 열린 버뮤데즈와의 옥타곤 복귀전에서 1라운드 중반 기습적인 라이트 어퍼컷에 의은 파운딩으로 멋진 승리를 거뒀다. 공백에 따른 후유증 따위는 찾을 수 없는 '코리안 좀비'의 환상적인 복귀 신고식이었다.

정찬성의 화려한 컴백에 제물이 된 버뮤데즈는 "오늘은 정찬성의 날이었다. 승리를 축하한다"며 쿨하게 패배를 시인했다. 하지만 역시 좀비에 물린 인간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버뮤데즈는 정찬성에게 패한 후 11개월 동안 2경기를 더 치렀지만 2연속 1-2 판정패를 당하며 UFC 진출 후 처음으로 3연패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7월에 상대했던 데런 엘킨스는 버뮤데즈를 만나기 전까지 4연승을 달리고 있었지만 아직 랭커들을 이긴 적이 없어 비교적 한계가 뚜렷한 파이터로 불렸다. 하지만 버뮤데즈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던 엘킨스를 상대로 1-2 판정으로 패했다. 무엇보다 버뮤데즈가 가장 자신 있게 여기는 영역이었던 레슬링에서 엘킨스를 압도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28일에는 페더급 상위 15위에 포함되지도 못한 만 27세의 신예 필리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필리는 180cm의 좋은 신장에 188cm의 리치를 가지고 있지만 UFC 진출 후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던 어중간한 파이터였다. 하지만 버뮤데즈는 유효타에서 133-93으로 앞서고도 필리에게 테이트다운을 네 차례나 허용하며 1-2 판정으로 패했다. 두 경기 연속 레슬링에서 상대에게 밀리고 말았으니 이제 레슬링이 장기라고 말하기도 민망해졌다.

최두호보다 한 단계 높은 페더급 랭킹 12위에 올라 있는 버뮤데즈는 순위권 밖에 있는 필리에게 패하며 최악의 경우 랭킹에서 제외될지도 모를 위기에 처했다. 만 31세의 버뮤데즈는 아직 파이터로서 노쇠화를 걱정할 시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 점이 더욱 문제인지도 모른다. 코리안 좀비에게 '물린' 이후 파이터 인생 최대 위기에 빠진 버뮤데즈. 과연 그가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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