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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지금의 인간관계가 전부 단절되고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니! 냉동 인간 할 만하네." (177쪽)

<알쓸신잡>에서 유시민과 정재승 사이에서 냉동 인간 관련하여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유시민은 기존의 모든 인간관계와 사회적 맥락에서 단절된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는 입장이었고, 정재승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그렇게 단순화해서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의 저자 오찬호는 '인간관계 리셋이라니 대환영'이라고 말한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표지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표지
ⓒ 블랙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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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화성으로의 이민 접수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파일럿 프로젝트라서, 귀환은 보장 못 한다. 아니, 귀환은 없는 것으로 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했다. 아니, 그런 프로젝트에 누가 지원하겠냐는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원자가 넘쳐났다. 생환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된다면, 냉동 인간 지원자도 분명 차고 넘치리라.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는 우리 사회의 병든 모습을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제1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다. 시작부터 화끈하다. 층간 소음에 당당한 사람들 이야기다.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는 게 잘못이냐고 따지는 윗집 사람이라니. 설마 그런 사람이 있겠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도 예전에 그런 사람을 윗집에 두고 산 적이 있다. 저 말을 글자 그대로 들었다. 내 집에서 내 맘대로도 못하느냐고.

차별에 당당한 사람들도 부끄러움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을 당연시하려는 것이 반드시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익명성과 물리적 거리 뒤에 숨어서 막말을 내던질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을 살펴보면, 많은 나라에 '일베'와 같은 폭력의 장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버 상이 아닌 실제 공간에서도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목소리가 제법 크다.

남녀차별에 대한 토론에 나가려는 저자에게 많은 남자들이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같은 조건이라면 남자 구직자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44%라는 것을 여성 진영에서 들고나올 테지만, 사실은 56%가 성별은 상관없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라는 훈수였다고 한다.

상식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채겠지만, 저 조사의 나머지 항목 하나는 "같은 조건에서 여자 구직자를 선호한다"이고, 응답률은 0%다. 여자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항목의 반대 항목이 "남자에 대한 차별이 있다" 여야지 어떻게 "남녀차별이 없다"란 말인가?

All lives matter 피켓을 당당히 들고 있는 사람. 이어지는 "집에 가서 직업이나 구해라"라는 문구가 이 사람 수준을 알려준다.
 All lives matter 피켓을 당당히 들고 있는 사람. 이어지는 "집에 가서 직업이나 구해라"라는 문구가 이 사람 수준을 알려준다.
ⓒ Johnny Silver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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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흑인들이 경찰 폭력에 희생당하는 일들이 반복되자, 시민사회는 시위에 나섰다. "흑인들의 목숨이라고 함부로 하지 마라(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그런데 미국에도 용감한 사람들이 많은지, 그 옆에서 "(흑인들만이 아니고) 모두의 목숨이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여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피켓을 들고 여성 혐오 범죄에 항의하는 사람들 옆에서 '남자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피켓을 든 한국사람들은 화성에서 왔던가?"(62쪽)

통계자료를 보낸 남자들이나,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사람들 옆에서 딴지를 거는 사람들은 편향과 중립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기울어진 정도는 줄어들지 모르지만,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 정상이라는 생각이다. 단식 농성 중이던 세월호 유족들 바로 옆에서 정크 푸드로 '폭식 투쟁'을 하던 '자랑스러운 일베인들'과 뭐가 다른가?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몸이 기울었다면 그 반대편으로 부채질을 해야지만 줄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중립 어쩌고 그러면서 이쪽에 했으니 저쪽에도 하고 이것도 모자라 가운데도 부채질을 해서 과연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사회의 진보는 지금까지의 익숙한 삶과 반대되는 쪽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때 가능하다. 이 과정은 갈등으로 비춰지지만 갈등이 아니라 진짜 균형을 잡기 위한 성장통일 뿐이다." (201쪽)

이어지는 제2부에서 저자는 '별걸 다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아직도 집단주의적 문화가 남아있어서 그런지, 우리 사회는 혼밥과 혼술이라는 행위를 '이름을 붙일 정도로' 삐딱하게 본다.

남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다 보면, 남들 헐뜯는 이야기밖에 할 것이 없게 된다. 남들과의 비교가 사회적 상식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남들 험담이나 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혼밥이 얼마나 행복한가.

바람직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이 정해져 있고, 기대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사회 규준에 반하는 것으로 보는 사회. 이거 전체주의 아닌가? 이 정도쯤 되면, 냉동 인간이 되어 다른 세상으로 탈출하는 꿈을 꿀 만도 하다.

사회를 이렇게 만든 것이 우리들이기에,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도 우리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제3부를 통해, 무엇을 실천해야 우리 사회가 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실천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사회학적 자기계발서라고 부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파브리스 무암바 선수. 그는 기적적으로 소생하였지만, 선수생활은 은퇴한다.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파브리스 무암바 선수. 그는 기적적으로 소생하였지만, 선수생활은 은퇴한다.
ⓒ BPM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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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영국에서 축구 경기 중 한 선수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갑자기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선수의 모습에 경기장에 있던 모두가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졌다. 주심은 양 팀 감독과 논의 후 경기 취소를 선언한다. 이 상황에 어떤 대학생은 트위터에 "그놈 잘 죽었다"라고 글을 남겼다가 체포되어 56일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상식의 실천이었을 뿐이다. 한국이라면 이 상식이 과연 지켜졌을지 생각하면 확신이 없다."(247쪽)


저자는 제3부를 통해 어떻게 하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를 제시하겠다고 했지만, 시민 개개인의 실천이 당장 변화를 가져오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한국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렇다. 징역형을 받은 영국 대학생의 사례는 그러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면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저자가 사례로 드는 안전벨트 문제를 보자. 예전에는 정말로 안전벨트 매는 행위가 '좀스럽다'는 평가를 받던 때가 있었다. 안전벨트 미착용에 벌금이 부과되자,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누군가가 안전벨트를 매다니 좀스럽다고 말하면, "그럼 네가 벌금 대신 내줄래?"라고 응수하면 그만이니까.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첫째, 어떤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탈로 규정하고, 둘째, 그 일탈에 대해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너무 당연한 주장이므로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남는 과제는 어떤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일탈'로 규정하느냐의 문제다. 나로서는 세월호 유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는 행위를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떤 행위를 저자가 말하는 '절대 악'으로 규정할 것인지는 시민사회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규정된 절대 악에 대해 법의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백날 말해봤자 구체적인 행동이 없으면 변화는 없다. 저자는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한다.

"정치 영역에 돈을 지출해야 한다. 정당에, 정치인에 그리고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언론과 시민단체에 말이다. 투자하는 돈이 많아야지 정치와 언론을 감시할 의욕이 생긴다."(272쪽)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정치에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돈을 쓰니까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그런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정치 영역에 피 같은 내 돈을 지출하라는 말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반성해본다. 대안 언론을 후원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나, 깨진 얼음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에 우선 마음이 가는 사람이다.

정치나 언론을 생각하면 우선 화부터 나니까 별로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전형적인 회피 심리다. 그러나 아무리 싫은 것이라도 내 삶의 일부라면 직시하고 고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후원할 정치인부터 찾아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https://brunch.co.kr/@junatul 및 블로그 https://blog.naver.com/junatul에 곧 게재할 예정입니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블랙피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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