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예능프로그램 특히 토크쇼에서 연예인에게 "이 일을 하는데 부모님의 반대는 없으셨나요?"라고 묻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때 들을 수 있는 대답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중 듣는 이의 감탄을 이끌어 내는 대답은 이것이다. "부모님이 전교 1등하면 하고 싶은 거 시켜준다고 하셔서... (1등 했어요)."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꿈을 향한 열의를 증명하기 위해 성적을 높였다는 그 노력은 분명 박수 받을 만하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성적에 따른 발언권의 불평등이 느껴졌다. 학생이 입시 제도의 불합리함을 아무리 말해봤자 어른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공부 못하니까(혹은 하기 싫으니까) 핑계는.'

하지만 전교에서 노는 학생이 같은 내용의 말을 하면 반응이 달라진다. '똑똑하니까 저런 생각도 한다'는 식이다. 이렇듯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지는 일은 한국 사회에서 꽤 흔하다.

'1등부터 하고 그런 소리를 해'라는 말은 '성공부터 하고 그런 소리를 해'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무리 밑에서 세상이 불공평하다, 사회가 잘못됐다, 이건 부당하다 등 백 번 외쳐봤자 성공하지 못한 자들의 자기변명으로 왜곡되기 십상이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은 사회 구조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내'가 무능력해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기보다 이런 문제를 겪을 필요가 없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표지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표지
ⓒ 블랙피쉬

관련사진보기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옛말은 그야말로 옛말이다. 이 말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럼 수입이 왜 귀천이 있는 건데?' 나는 이 말이 가리키는 것은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의 수입은 제각각이지만 그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사이에는 귀천이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낮은 곳에서 차별을 당했다면 낮은 곳에 팽배한 차별 자체를 없애야 한다. 낮은 곳에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는 것은 차별하는 자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셈이다.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을 보면 어린 한나가 유대인이라고 놀림 받고 집에 와서 엄마에게 유대인이 뭐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 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이라고 공격받으면 유대인이라는 사실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단다."

오찬호 작가의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에는 하도 차별을 받아 그 논리를 완전히 체화해버린 우리 사회 자화상이 드러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이 상식이 되어버릴 정도로 부동산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린 이 사회에서는 땅값을 사수하기 위해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게 정당한 권리로 둔갑한다.

집단 따돌림을 받는 학생에게 왕따 당하지 않는 법을 가르침으로써 가해자의 괴롭힘을 타당한 행동으로 포장해버린다. 새벽같이 일어나 풀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를 단장하고 온 여자를 부지런하다, 자기관리를 잘한다고 치켜세우며 화장 안 하고 안경 쓴 여자를 게으르고 경쟁력 없는 인재로 치부한다.

나는 이러한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을 미디어에게 묻고 싶다. 미디어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성공한 사람의 사례에 주시하며 그 사람들을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할 이상형으로 만든다. 업계를 불문하고 '성공 신화'는 언제나 좋은 이야깃감이다. 이 사회가 얼마나 차별이 만연한지 주목하기보다는 그런 상황에서도 이 악물고 버텨서 상위 1%로 올라선 인물의 삶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다 같이 경탄한다.

그러고 나면 무엇이 뒤따라오겠는가?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각오를 다잡으며 차별의 가해자에게 자기도 모르게 면책권을 선사한다. 그러다 '아, 나는 이래서 안 되는 거구나'까지 도달하면 사회의 차별이 원하는 종착지에 정확히 떨어진 셈이다.

MBC의 장수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는 700회를 맞아 역대 MC를 게스트로 불렀다. 출연자 중 유세윤은 이런 말을 했다. "요즘에 그런 짤들 많이 올라오잖아요. 불편러 없던 시절 해가지고, 그때 당시는 이제, 지금 국민 MC들도 멘트에 막힘이 없었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자막이 떴다. '(그립다 불편러 없던 시절)' '불편러 없는 광야로 가자'. 이후에 김구라가 수습하듯 '그런 분들 덕에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고 그렇게 '불편러'를 다루는 이야기는 장난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이 장면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편러'라는 말이 유통되는 것부터가 참극이다. 이런 조롱이 아무렇지 않게 나돌고 있으니 불이익을 당해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게 된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교육 수당 관련 문의를 한 뒤 상사로부터 각종 조롱과 괴롭힘에 시달렸다. 대전의 9급 공무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유족은 '부당한 업무를 거절한 후 직장 내 따돌림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이버 직원은 임원으로부터 과도한 업무 지시를 받고 모욕적인 언행을 감수하다 못해 역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직장 이름만 바뀔 뿐 대한민국 어디서든 벌어지는 일이다.

평화로운 사회는 불편러들의 입을 틀어막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불편함을 표할 때 다같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되돌아보는 사회,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는 사회야말로 가장 평화롭고 공정한 사회이다. 과연 우리에게 누군가의 불편함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점점 '공감 결여의 인간'들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블랙피쉬(2018)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