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두의 예상과 우려대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결정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20일(한국시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승인했다. 남북 단일팀은 한국 선수 23명, 북한 선수 12명으로 구성돼 총 35명의 규모로 결정됐으며 팀 이름은 COR(고려시대 한반도를 일컫는 단어 'COREE'의 약어)로 결정됐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 규모는 선수 22명, 임원 24명으로 결정됐고 5개 종목에 출전한다.

남북 단일팀이라는 단어가 나온 직후부터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찬성과 비판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선수와 대표팀 측은 모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새라 머리(30·캐나다) 대표팀 감독은 '충격적'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만약 북한 선수들이 참가하게 될 경우 내게 북한 선수들을 꼭 기용하라는 압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IOC의 발표 직후 이 같은 바람은 모두 물거품이 됐고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감독에 '선수 선발' 전권 주겠다는 약속, IOC 합의로 깨졌다

질문 듣는 새러 머리 감독 새러 머리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 16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문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질문 듣는 새러 머리 감독 새러 머리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 지난 16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문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 선수들이 합류하게 되면서 한국 선수들 일부가 결국 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 때문에 단일팀에 대한 반대여론이 상당히 거셌고 청와대를 비롯한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상당한 양의 반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대표팀 감독에게 선수기용에 대한 전권을 주겠다"며 약속을 했다. 그런데 이 약속은 불과 며칠 만에 IOC에서 열린 남북회의 직후 산산조각 났다. IOC가 발표한 '올림픽 한반도 선언(Olympic Korean Peninsula Declaration)'에 따르면, 경기당 북한 선수가 3명 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스하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각 팀 엔트리는 22명으로 정해져 있다. IOC가 남북 단일팀 규모를 35명으로 정했지만, 아이스하키 규정상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인원이 22명인 것은 변함이 없다. 즉 다른 팀에 비해 전체 엔트리 정원은 늘었지만 실제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인원은 동일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매 경기마다 북한 선수를 3명씩 기용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당초 북한은 5명을 기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측에서 선수 조직력과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을 이유로 결국 3명으로 줄이는 중재안이 결정됐다. 이같이 아예 규정을 못 박아 버리면서 결국 새라 머리 감독의 기존 계획이 틀어졌고 3명의 북한 선수를 무조건 경기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한국 선수들이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는 '4라인'에 배치하는 것이다. 머리 감독은 "북한 선수 중 수비수 2명, 공격수 1명 정도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선수들의 주력이자 전력이 8할 이상인 1~3라인에 들어올 만한 기량을 갖춘 선수가 있는지도 현재로선 의문이다. 여러모로 볼 때 결국 급한 대로 '끼워 맞추기' 형태가 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또한 12명의 북한 선수 중 3명만 실제 경기에 뛸 경우 나머지 북한 선수들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북한 측의 반응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푸대접'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단일팀을 구성해 하나의 조직을 이뤘지만 이것이 자칫 서로 상처를 주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지원도 없고, 말로 받은 상처... 박탈감 클 것으로 우려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는 황무지 중 황무지로 꼽히는 종목 가운데 하나다. 실업팀이 단 한 팀도 없고 현재 대표팀 선수들이 한국 여자 선수 인원이 전부다. 불과 2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아이스하키의 명맥을 이어온 셈이다. 이에 따른 정부나 체육계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국내 빙상장의 개수가 워낙 적은 탓에 같은 크기의 링크장을 사용하는 쇼트트랙, 피겨 등과 나눠서 사용해야 한다. 태릉선수촌 내 실내빙상장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말 진천선수촌으로 옮기면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평창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여기에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으로 선수들은 말로 깊은 상처를 받고 말았다. 이 총리는 지난 16일 국무총리실 취재 기자단과 오찬에서 "여자 아이스하키는 메달권에 있지 않다. 한국 선수단은 세계 랭킹 22위, 북한 선수단은 25위다"라고 발언해 비난을 받았다. 이는 자칫 메달권에 있지 않기 때문에 단일팀을 구성해도 되지 않느냐는 식의 내용으로 들릴 수 있었다.

결국 이 총리가 이후 19일 선수들에게 사과했지만 이미 내뱉은 말로 인한 상처는 돌이키기엔 부족한 듯이 보인다. 아이스하키 대표팀 이민지 선수는 지난 20일 본인의 SNS 계정에 "아예 벤치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선수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선수들이 이 상황을 기분좋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요"라고 적기도 했다. 현재는 해당 게시글이 비공개 처리된 상태다.

남북한, 평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추진 남북한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파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사진은 지난 2017년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Ⅱ 그룹 A 대회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한 모습.

▲ 남북한, 평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추진 지난 2017년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Ⅱ 그룹 A 대회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한 모습. ⓒ 연합뉴스


당장 대표팀은 오는 2월 4일 인천 선학빙상장에서 스웨덴과 올림픽 전 최종 평가전을 갖는다. 이후 5일에 곧바로 선수촌에 입촌에 본격적인 평창 올림픽에 들어간다. 이후 10일 스위스와 조별리그 1차전, 14일 일본과 조별리그 2차전 등 빡빡한 일정에 돌입한다.

그런데 현재 북한 선수들이 과연 언제 한국 선수단에 합류할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로잔에서 회의에 참가했던 임원들은 북한 측에 2월 1일 전에 합류해 줄 것을 통보했지만 현실적으로 평가전 전에 북한 선수들과 손발을 맞출 수 있는 기간은 일주일 남짓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문용어를 비롯해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상당히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직력이 생명이고 곧 전력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이스하키에서 이 같은 일정은 너무나 무리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여자 아이스하키를 남북 단일팀으로 구성했는데 남자 아이스하키는 왜 그러지 않았냐는 것이다. 백지선호가 이끄는 남자팀이 디비전A 그룹에 진입하는 등 나날이 상승세를 보인 데 반해 여자팀은 상대적으로 조명이 적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팀을 향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남북단일팀이 추진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자 아이스하키도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선수와 감독의 노력으로 이끌어 왔고, 선수단을 단순히 보여주기식 '쇼'나 눈요기를 위한 '치어리더'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 현재와 같은 상황으로 대회가 치러진다면 지원이 적고 냉혹한 현실과 정치권 발언의 상처·갑작스러운 단일팀 추진 등 '삼중고'를 겪은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국내 남자 선수들과 비교돼 박탈감과 허탈함을 지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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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단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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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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