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화유기>의 포스터.

tvN <화유기>의 포스터. ⓒ tvN


방송 중단 사고를 낸 tvN 새 주말드라마 <화유기>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 추락 사고도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스태프가 소속된 MBC아트 측은 사고 원인으로 "비용 절감을 위해 사용된 부실 자재"를 지목했다.

23일 새벽 2시께,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 현장에서 MBC아트 미술팀 소속의 A 스태프가 3m  높이에서 바닥으로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A씨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스태프로, 병원 후송 당시 척수 손상에 의한 하반신 마비로 의식까지 잃은 상태였다. 의료진이 '뇌사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릴 정도로 상태가 위급했지만, A씨는 4시간의 수술을 마친 뒤 다행히 의식을 찾은 상태다.

하지만 tvN은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23일 오후 첫 방송을 강행했고, 결국 이튿날인 24일, 2회 만에 방송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tvN은 24일 방송 지연 및 중단 사고 직후, 보도자료 등을 통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보이고자 촬영은 물론 마지막 편집의 디테일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했으나 제작진의 열정과 욕심이 본의 아니게 방송사고로 이어졌다"고 해명한 바 있다. 방송사인 tvN과 제작사인 JS픽쳐스는 A 스태프 낙상사고를 최초로 알린 한국일보의 보도가 있기 전까지, <화유기> 방송 중단 사태에 대해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4차례 발송했지만, 낙상사고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4차례 '방송 중단' 이유 설명한 tvN, 스태프 사고 언급 없었다 

 tvN <화유기>의 방송 사고 장면. 와이어가 노출된 화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tvN <화유기> 2회 방송 사고 장면. 와이어가 노출된 화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고, 곧 방송이 중단됐다. ⓒ tvN


스태프 사고 소식이 드러난 26일, tvN은 "<화유기> 제작진은 사고 발생 당시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당 스태프의 가족 측과 꾸준히 치료 경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면서 "23일 새벽 2시경 다음날 촬영 준비를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 직후부터 제작 책임자가 스태프의 응급실 이동과 초기 진료까지 함께 했으며, 지속적으로 상호 연락을 취해왔다"고 알렸다. 이어 "(해당 스태프의) 가족들이 사고 처리 방안 논의를 스태프 소속 회사인 MBC아트에 일임하면서, 27일 제작사인 JS픽쳐스와 MBC아트 간의 논의가 예정되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7일 오후 MBC아트 측은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사고 처리 방안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고 반박하며, "현장 책임자의 사과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CJ E&M의 협력 회사로서, 사건 발생 이후에도 대기업의 책임 있는 대응을 기대하며 묵묵히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와 피해자 가족의 기다림을 무시하고 CJ E&M은 거짓 입장을 내놨고, 제작사 소속 미술감독은 <미디어오늘>에 우리 직원이 스스로 세트에 올라가서 떨어졌다는 인터뷰를 했더라. 천인공노할 일"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MBC아트는 27일 오전 JS픽쳐스와의 만나 1) A씨에 공식 사과하고 즉각 피해구제 행동에 나설 것 2)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배려를 보일 것 3) 산업재해보상법에 따라 재해보상처리를 할 것 4) 보상법에 따른 처리와 별도로 피해보상 입장을 밝힐 것 5) 해당 현장 직원들의 트라우마가 크므로, MBC아트와 맺은 용역 계약 해지를 협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JS픽쳐스 측은 MBC아트의 요구를 확인했으며, 이에 대한 답변은 28일 오전 다시 MBC아트 측과 만나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추락사고 상황에 대해서는 MBC아트 측과 JS픽쳐스의 주장이 엇갈린다. 우선 MBC아트 측이 주장하는 사고 경위는 이렇다.

A씨는 <화유기> 소도구 용역을 맡은 MBC아트 소속의 현장 팀장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 23일 새벽 1시 50분경, 퇴근을 준비하던 A씨는 JS픽쳐스 소속 미술감독 이아무개씨로부터 세트 천장에 샹들리에를 설치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미 늦은 시간이니 내일 아침에 설치하겠다'는 A씨의 답변에도 이 감독은 '지금 설치'를 지시했다. 해당 세트 촬영은 이튿날 오후부터 시작돼 굳이 새벽 작업을 할 이유가 없었지만, 이 감독의 지시에 따라 MBC아트 소속 직원 두 명은 사다리를 이용해 샹들리에를 설치했고, A씨는 샹들리에 라인 연결을 위해 세트 천장부에 올라갔다. 작업을 위해 3~5분가량 세트 천장부에 걸터앉아있던 A씨는 세트장이 무너지면서 3m 높이에서 V자 형태로 바닥에 추락,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MBC아트 "제작사, 비용 절감 위해 부실 소재 사용했다"

MBC아트 측은 사건 원인으로 부실 소재로 시공된 세트장을 꼽았다. MBC아트는 "스프러스 소재는 무게가 적게 나가고 가격이 저렴해 사람의 무게를 버틸 수 없는 소재"라면서 "JS픽쳐스와 세트 시공업체가 제작비 절감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될 소재로 세트장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세트 시공도 하는 MBC아트는 "우리 세트팀에서는 스프러스 목재는 보조적인 용도의 인테리어 자재로만, 매우 제한적인 용도에 한해 사용한다. 절대 저런 자재를 사람의 무게를 받는 구조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목재 절단면에 옹이(빨간 원)가 보인다. 옹이가 박힌 목재는 쉽게 부러질 수 있어 구조물에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목재 절단면에 옹이(빨간 원)가 보인다. 옹이가 박힌 목재는 쉽게 부러질 수 있어 구조물에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 MBC아트


또 MBC아트 측에서 제공한 사고 현장 사진을 보면 목재의 부러진 부분에 박힌 옹이가 보이는데, MBC아트는 "옹이 박힌 나무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목재"라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부실 목재를 사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옹이 박힌 목재는 옹이를 잘라내고 나머지 부분만 그 크기에 맞게 사용하거나, 사용처가 마땅치 않으면 폐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통상 이런 목재가 입고되면 검수자들이 반품, 교환, 또는 이를 납품한 목재 회사에 비용 삭감 처리를 요구한다. 옹이가 박혀있지 않더라도 스프러스 각재는 구조목으로 적합하지 않고, 스프러스가 아니더라도 옹이 박힌 목재는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추락 사고가 발생한 부분은 옹이 박힌 스프러스 각재였다. MBC아트가 "비용 절감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목재가 사용됐고,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고 보는 이유다.

MBC아트 측은 "이런 목재가 무거운 샹들리에를 제대로 버텼을 리 만무하다"면서 "만약 A 스태프가 무사히 샹들리에를 설치하고 내려왔다 해도, 연기 중인 배우들 혹은 다른 스태프 위로 샹들리에가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문 세트팀의 경우, 세트 천장에 전등이나 조명기구를 설치하기 전에 반드시 보강 공사를 하게 되어 있다"면서, "우리 직원들은 당연히 보강된 세트일 거라고 생각하고 샹들리에 설치 작업을 했다. 저렇게 타카못으로 스프러스 각재와 합판 몇 개를 붙여 만든 천장일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나"라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세트 천장부. 사람의 무게를 버틸 수 없는 스프러스 각재로 지어졌다. 구조물에는 절대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각재다.

사고가 발생한 세트 천장부. 사람의 무게를 버틸 수 없는 스프러스 각재로 지어졌다. 구조물에는 절대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각재다. 또, 단단한 나왕 각재를 사용했다 해도, 이런 구조에 조명을 달기 위해선 보강 작업이 필수적이지만, 어떤 보강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 MBC아트


<화유기> 세트 제작은 MBC아트가 아닌, 방송용 세트 경험이 적은 소형 인테리어 업체인 R 업체가 맡았다. 한 세트장에 여러 업체의 계약이 얽히게 되면 책임 관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에 지상파 제작 프로그램에선 이런 방식의 '쪼개기' 계약이 흔치 않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이유로 최근 대형 드라마 제작사들을 중심으로 이런 계약이 늘고 있다. MBC아트 측은 "세트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은 산업안전관리팀장과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가가 고용돼 있다. (비전문업체에 세트 제작을 맡기는 일은) 지상파 프로그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MBC아트는 "누구도 세트장 설계와 도면, 제작 사양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고, 세트 제작 업체에 대한 안전 점검도 이뤄지지 못했다. A는 20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업계에서는 '에이스 중 에이스'로 불리는 사람이다. 스프러스 각재가 사용된 것을 알았다면 절대 샹들리에 설치 업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JS픽쳐스는 세트 제작 시 구조 안전성을 확인하고, 설계도면에 따른 시공이 이뤄졌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 해당 사고의 책임은 세트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JS픽쳐스와 미술감독, 세트 제작 업체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화유기> 세트 책임자인 JS픽쳐스 소속 미술감독 이아무개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다만 이씨는 27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MBC아트 측이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당시) 오후 12시쯤에 일을 정리하고 들어가자고 말을 했고, 새벽 1시에 조명을 달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현장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여러 명이니 확인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오히려 MBC아트 측에서 조명 전문가를 보내지 않는 등 내부 문제가 많은 것 같다. (MBC아트와는) 협업하는 입장이지, 일방적으로 내가 지시하는 입장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 "그 천장은 사람이 올라갈 수 있을 만한 천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A씨가 자신이 판단해서 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견된 방송 사고... 안전 사고 언제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화유기' 이승기, 나라지키기 이어 안방지키기 배우 이승기가 15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 새 토일드라마 <화유기> 제작발표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화유기>는 고대소설 서유기를 모티브 삼아 퇴폐적 악동요괴 손오공과 고상한 젠틀요괴 우마왕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절대낭만 퇴마극이다. 23일 토요일 오후 9시 첫 방송.

tvN 새 토일드라마 <화유기>에서 주인공 손오공 역을 맡은 배우 이승기. ⓒ 이정민


한편, 방송 2회 만에 방송이 중단될 정도로 제작 속도가 더디다는 점을 볼 때, 급박한 제작 일정에 쫓긴 스태프들이 안전에 꼼꼼하게 대비할 충분한 여유와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첫 방송을 앞두고도 1~2회 제작이 완료되지 않았던 23일 새벽 2시께였다.

<화유기>는 10월 초 촬영을 시작했고, 현재 6회 분량을 촬영 중이라고 알려졌다. 방송 1~2달 전에 촬영을 시작하는 드라마도 있긴 하지만, 판타지 장르인 <화유기>는 후반 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여기에 주인공 손오공 역을 맡은 이승기는 지난 10월 31일 전역했다. 주인공임에도 최소 한 달가량 늦게 촬영 현장에 합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후반 작업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판타지 장르에, 주연 배우가 '군대'라는 조정할 수 없는 일정으로 뒤늦게 합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tvN와 JS픽쳐스는 방영 시기와 주연 배우, 둘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이는 스태프들을 밤샘 작업 등의 강행군으로 내몰았다. 언제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었던 셈이다.

tvN은 지난해 드라마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 PD가 장시간 노동과 불합리한 제작 환경 등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방송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적정 근무 시간 및 휴식시간 개선, 합리적 표준 근로계약서 마련 권고를 약속했다. 방송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법인 설립 기금 후원은 물론, 정규직 직원 외에도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외부 인력의 노동 처우 개선을 위해서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통해 여전히 '생방 촬영', '밤샘 촬영'이라는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병폐를 벗어던지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현장 스태프 낙상 사고에 이은 방송 중단이라는 비극을 자초한 셈이다.

tvN, 이한빛 PD 죽음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 김윤정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미디어카페 후에서 고 이한빛 PD 유가족과 대책위원회, CJ E&M 대표이사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약속하는 공식 간담회를 진행했다.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미디어카페 후에서 고 이한빛 PD 유가족과 대책위원회, CJ E&M 대표이사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약속하는 공식 간담회를 진행했다. ⓒ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


이번 사건에 대해 전국언론노조는 방통위와 관계 당국에 "tvN <화유기> 미술 노동자 추락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노조는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JS픽쳐스 이OO 미술 감독과 사고 현장인 세트를 부실 시공한 업체의 대표, 현장 총감독의 책임을 맡은 박홍균 PD의 사고 직후 대응과 책임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면서, "CJ E&M 역시 외주제작을 맡기고 편성을 책임진 사업자로서 이 사건을 인지하고도 무리한 제작 일정, 후반 작업 및 본방 강행을 요구한 것은 아닌지 밝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아무리 좋은 드라마라도 시청률과 매출액, 그리고 한류로 포장될 수 없다. 인권과 노동에 대한 존중이 없는 제작 현장은 어떤 성과로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용노동부는 즉시 <화유기>의 제작 중단을 명령하고 원인과 책임 규명에 나서야 한다. 시청자들이 이런 사고를 잊고 <화유기>에 열광할 리 만무하다"고 주장했다.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 김윤정



화유기 방송 사고 JS픽쳐스 스태프 낙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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