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역전골을 넣은 정우영이 동점골을 넣었던 김신욱과 환호하고 있다.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역전골을 넣은 정우영이 동점골을 넣었던 김신욱과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4일 일본의 축구매체 <사커킹>은 16일에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챔피언십 한일전을 앞두고 "김신욱이 한국의 에이스다. 그를 가상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로 생각하고 막아야 한다"고 전망했다. 레반도프스키는 독일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일본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상대할 폴란드 대표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이기도 하다.

축구에서 경기를 앞두고 상대팀의 주요 선수를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언론 기사는 매우 흔한 편이다. 하지만 김신욱과 레반도프스키는 1988년에 태어난 동갑내기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그런 김신욱을 '가상의 레반도프스키'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한국 대표팀에 경계할 만한 선수가 없다는 걸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EAFF 챔피언십 한일전이 한국의 4-1 대승으로 끝난 현재 <사커킹>의 분석은 매우 정확했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날 일본 대표팀에게 김신욱은 레반도프스키만큼 위협적인 스트라이커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박지성이 골 넣고 산책하던 시절'인 2010년 5월 24일 이후 무려 7년7개월 만에 일본과의 A매치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하며 멀티골을 기록한 '한반도프스키' 김신욱이 있었다.

K리그 MVP와 득점왕 출신, 대표팀만 오면 부진의 연속

2009년 울산 현대에 입단할 때만 해도 김신욱의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 겸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하지만 당시 울산을 이끌던 김호곤 감독은 김신욱을 공격수로 전향시켰고 이는 197.5cm의 '장신 폭격기' 김신욱을 탄생시킨 신의 한 수가 됐다. 김신욱은 데뷔 첫 시즌에 7골을 넣으며 가능성을 보였고 2011년에는 컵대회 득점왕과 우승, 정규리그 준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공격수 변신 3년 만에 K리그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것이다.

2012년 리그에서 13골,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6골을 기록하며 울산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한 김신욱은 2013년 득점2위(19골), 공격 포인트1위(25개)를 기록하며 K리그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울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5년에는 18골을 터트리며 FC서울의 아드리아노(15골)를 제치고 득점왕의 한을 풀었다. 김신욱은 K리그 데뷔 후 9년 동안 리그 경기에서만 96골을 기록하며 K리그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던 김신욱도 대표팀에만 오면 유난히 기를 펴지 못했다. 김신욱은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던 시절부터 꾸준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지만 대표팀 사령탑이 조광래 감독에서 최강희 감독으로 바뀔 때까지 주전 스트라이커로 중용되지 못했다. 일부 축구팬들로부터는 '국내용'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김신욱은 2013년 홍명보 감독 부임 후 본격적으로 대표팀의 주력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축구 인생 최대의 기회였던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대표팀의 부진과는 별개로 김신욱의 활약은 썩 나쁘지 않았다. 교체 선수로 들어온 알제리전에서는 큰 신장을 이용해 12개의 공중볼을 따냈고 선발 출전한 벨기에전에서는 스테번 드푸르의 퇴장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스트라이커 본연의 임무였던 득점에는 기여하지 못해 월드컵 참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김신욱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에도 대표팀에 꾸준히 포함됐지만 A매치에서 한 골도 추가하지 못하며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실패했다. 김신욱은 울산 시절부터 투톱으로 활약하는 데 익숙한 선수였는데 대표팀에서는 언제나 최전방 원톱 스트라이커로서의 역할을 강요 받았다. 그렇게 김신욱은 월드컵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자신을 향한 불신의 시선을 씻어내지 못했다.

아시안컵 3골1도움 몰아치며 러시아행 티켓 예약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한국의 김신욱이 멀티골을 넣고 있다.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한국의 김신욱이 멀티골을 넣고 있다. ⓒ 연합뉴스


김신욱은 신태용 감독 부임 후 월드컵 출전 티켓이 걸려 있는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도 대표팀에 선발됐지만 이란전에서만 교체 선수로 20분을 뛰었을 뿐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급기야 10월 러시아, 모로코를 상대했던 유럽 원정 평가전과 11월 국내에서 열린 콜롬비아, 세르비아전에서는 대표팀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손흥민, 기성용, 구자철, 권창훈 등 유럽파들이 대거 소집되면서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김신욱이 이번 EAFF 챔피언십에서 대표팀에 재발탁된 것도 유럽파들이 모두 제외된 채 엔트리 대부분이 국내파로 이뤄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김신욱은 아시아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는 성격이 강했던 이번 대회에서 3경기 3골1도움을 몰아치며 신태용 감독과 축구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김신욱은 9일 중국과의 첫 경기부터 동점골을 터트리고 이재성의 역전골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후반 30분 중국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김신욱의 활약은 빛이 바랬다. 북한의 자책골로 가까스로 승리한 12일 북한전에서는 교체 선수로 들어오면서 딱히 활약을 펼칠 만한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북한전까지 김신욱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돋보이지 않았던 것은 일본전에서 영웅이 되기 위함이었다.

김신욱은 지난 16일 일본과의 최종전에서 0-1로 뒤진 전반 12분 김진수의 크로스를 정확한 헤더로 연결시키며 동점골을 만들다. 전반 18분에도 강력한 오른발 유효슛으로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김신욱은 2-1로 역전한 전반 34분 이재성의 패스를 받아 가벼운 왼발슈팅으로 3-1로 달아나는 골을 터트렸다. 한국은 김신욱의 멀티골을 포함해 전반23분 정우영의 그림 같은 프리킥 결승골, 후반23분 염기훈의 쐐기골을 더해 일본에게 4-1의 대승을 거뒀다.

스포츠에서 축구 한일전만큼 국민들을 뜨겁게 하는 승리는 없다. 비록 유럽파들이 대거 제외된 '비정예' 멤버들끼리의 경기였지만 축구팬들이 느낀 통쾌함은 그 어떤 한일전 승리 못지 않게 컸다. 한국이 일본을 4-1로 꺾은 것은 한국에 유신 독재시대가 끝나지 않았던 1979년 6월 6일 이후 무려 38년6개월 만이다. 한국 축구팬들에게 적어도 16일 밤은 한일전 대승의 기쁨에 마음껏 취해도 좋은 하루였고 그 주역은 단연 '2017 아시안컵 득점왕' 김신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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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AFF 챔피언십 한일전 신태용 감독 김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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