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행> 관련 사진.

영화 <초행> 관련 사진. ⓒ 봄내필름


1년 전 이맘 때 서울 광화문은 시민들의 촛불로 뒤덮였다. 이유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겠지만 이들의 메시지는 분명 지난 정권을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초행>은 그 200만 시민 틈에 촛불을 들고 헤매던 두 청춘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는 수현(조현철)과 종합편성채널 계약직인 지영(김새벽)은 7년 차 커플이다. 한 집에서 동거하며 한껏 장난도 치는 일상의 연속에 어느덧 임신과 부모님의 결혼 강요라는 현실이 찾아온다. 어머니의 닦달로 잔뜩 스트레스를 받던 지영은 불안한 가정사로 날카로워진 수현과 다투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기도 한다.

대사의 묘미

아마 지난 7년이 그랬을 것이다. 사소한 다툼과 화해의 반복. 그리고 영화에 나오듯 소소한 행복과 작은 웃음들로 채워졌을 이들에게 현실의 무게는 딱 감당하기 벅찰 것 같지만 어떻게 해서든 살아지는 그 정도였을 것이다.

<철원기행>에 이어 김대환 감독은 이 연인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김 감독은 "<철원기행>을 편집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라며 "당시 7년 정도 연애를 하던 때고 결혼 자체가 벽으로 느껴졌는데 또래 친구들과도 그 불안을 공유하던 때였다"고 고백했다. <초행>은 그런 의미에서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어느 정도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두 배우의 대사가 서로 입에 잘 붙는다. 짜인 대본이 아닌 마치 일상 대화를 하는 느낌. 11월 30일 언론시사회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감독은 큰 틀과 상황만 제시하고 나머지 세세한 지점은 배우들이 직접 대사를 던지며 만들어 갔다. 배우 입장에선 불안했을 촬영이지만 영화엔 그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들의 역할에 잘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감 높은 대사들과 이들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기에 카메라 또한 삼각대에 고정시킨 게 아닌 헨드헬즈다. 지영과 수현의 뒷모습을 보다가도 삼척 선착장에선 배위 흔들거리는 물살을 그대로 반영하며 두 사람의 앞모습을 잡기도 한다. 미묘하게 때로는 거칠게 떨리는 카메라는 관객으로 하여금 늘 불안에 노출된 이 커플의 심리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현실의 반영

 영화 <초행> 관련 사진.

지영(김새벽)과 수현(조현철)은 저마다 고민을 안고 가면서 서로를 보듬을 줄 아는 이들이다. ⓒ 인디플러그


화면에서 알 수 있듯 <초행>은 1년 전 이맘 때 촬영한 결과물이다. 애초에 대사까지 담긴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김대환 감독은 "결혼의 의미를 잘 모르면서 답을 내는 게 힘들었다"며 "그것보단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순서대로 장면을 촬영하되 감정대로 대사를 내뱉는 걸로 바꿔서 연출했다"고 밝혔다.

"그 과정이 쉽지 만은 않았다. 앞에 어떤 장면이 생기면 그 다음이 조금씩 바뀌고, 매번 조금씩 다듬으면서 찍었다. 같이 변화 만들어 가며 하는 게 막막하기도 하다. 책임감도 들고. 제가 의견을 냈을 때 이게 저만의 의견인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건지 불안해하면서도 끝까지 한 결과물이다. 그런 과정이 좀 무섭기도 했다." (김새벽)

"영화에 나온 대사는 거의 애드리브다. 감독님이 던진 상황에서 연기를 했기에 시나리오를 해석할 여지는 없었고, 다만 수현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나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조현철)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이 청춘들의 다툼이나 어떤 극적 사건이 아니다. 경차를 몰고 지영 부모님 댁으로 가거나 수현 부모님 댁으로 가는 여정,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 그리고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가 길에서 촛불 전등을 산 뒤 광장을 걷는 모습을 주목해야 한다.

집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가는 방향을 의심한다. "이 길이 맞아?", "아니야 아까 저쪽으로 빠졌어야 하는데" 등의 대사를 종종 주고받는다. 거대 인파가 몰린 틈에서 한 방향으로 가던 두 사람은 "왜 사람들이 다 반대로 가지? 여기가 아닌가?" 물으며 방향을 바꾼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니 이번엔 또 사람들이 원래 자신들이 가던 쪽으로 다 몰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초행> 관련 사진.

ⓒ 인디플러그


이러한 혼란은 이들의 대부분 여정이 '초행'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우리의 삶을 상징한다. 우리 인생 역시 한 번 살고 가는 여행으로 많이 비유하지 않나. "지금 시대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던 김대환 감독의 말과 "어차피 인간은 다 풋내기고 (인생 길은) 초행이니 너무 불안해 말고 즐겁게 사시길 바란다"던 조현철 배우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가 마냥 진지하거나 심각한 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풉'하고 튀어나올 만한 재밌는 순간도 날것처럼 담겼다. 조현철, 김새벽 두 배우와 함께 화면 곳곳을 채우고 있는 익숙한 기성 배우들의 호흡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 <초행>은 18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후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최근엔 32회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한 줄 평: 놓치기 쉽던 일상의 작은 부분으로 뭉클한 감동을 준다
평점 : ★★★★(4/5)

영화 <초행> 관련 정보

감독: 김대환
출연: 김새벽, 조현철
제공: 전주영화제
제작: 봄내필름
공동제공 및 배급: 인디플러그
러닝타임: 99분
상영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17년 12월 7일


초행 김새벽 조현철 촛불집회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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