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빛나는> 포스터

일본 영화 <빛나는>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를 본다. 누군가는 영상을 보고 이해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상상한다. 시각장애인들이 그렇다. 그들은 앞을 볼 수는 없지만 도움을 받아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최근 개봉한 일본 영화 <빛나는>에는 "영화는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되는 매체거든. 영화를 보여주는 일이, 볼 수 없는 사람들과 연결해 주는 걸지도 몰라"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이 작품은 겉으로 보기에는 시각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제작되는 영화 음성 가이드 제작 과정을 다룬 것처럼 보인다. 음성 가이드 모니터위원회가 열려 토론이 펼쳐지고 시각장애인들이 영화를 볼 때 참고해야 할 현실적인 대사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 시각장애인의 "영화는 거대한 세계를 경험하는 거다. 그 거대한 세계를 말로 축소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다"라는 대사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더욱 진지하게 담아낸 것은 그 속에서 나오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위로다. 영화 음성 가이드 제작자 미사코(미사키 아야메)와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시각장애인 사진가 나카모리(나가세 마사토시)는 처음엔 서로 반감을 갖는다. 나카모리가 미사코의 해설에 "본인 주관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게 아니냐"고 핀잔을 준다. 투덜거렸던 미사코가 나카모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있다. 나카모리 사진집에 실린 석양 사진을 보면서다. 미사코의 마음 한 켠에는 가족의 부재에서 오는 그리움이 있다.

나카모리는 시력을 잃는 것이 두렵다. 공교롭게도 그의 직업은 사진가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담을 수 있는 카메라는 나카모리의 눈이자 심장이다. 빛이 있어야 선명하게 나오는 사진의 원리 때문일까. 나카모리의 집은 '가능한 한 볕이 많이 드는' 곳이다. 그러나 점점 시력이 떨어지고 사진을 찍지 못하는 상황까지 온다.

그럼에도 나카모리가 가장 환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상상을 할 때다. '래디언스(Radiance)라는 제목의 잡지가 등장할 때다. 나카모리는 이 잡지의 표지를 찍었다는 동료에게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지 느낌을 말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상상해 보려고"라고 덧붙인다. 래디언스는 따뜻한 빛이라는 의미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 <빛나는>의 한 장면.

영화 <빛나는>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시력을 잃어 좌절한 나카모리의 모습을 본 미사코는 함께 석양을 보러가자고 한다. 빛을 볼 수 있는 미사코와 사람과 빛을 점점 볼 수 없는 나카모리, 이 대조적 인물간이 같은 한 곳에서 석양을 바라본다. 미사코가 말한다. 빛을 만지고 싶어 태양을 쫓아다닌 적이 있다고. 나카모리가 말한다. 나도 그랬다고. 이 때 나카모리가 카메라를 던진다. 좌절 속에도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모습처럼 보인다. 석양의 따뜻한 빛이 둘을 감싼다.

미사코는 나카모리가 지적했던 부분을 수정하기로 결심한다.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두 주인공이 연결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순간이다.

가와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 자신의 전작인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의 음성 가이드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에 감탄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영화 음성 가이드 제작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를 그려내기로 결심했다.

가와세 감독은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모니터위원회에 배우가 아닌 실제 시각장애인 한 명을 등장시킬 정도로 영화에 공을 들였다. 배우 나가세는 영화 크랭크인 전에 약 2주간 극 중 자신의 집에 머물며 약시와 같은 시야가 되는 고글을 쓰고 생활하는 등 나카모리 역을 위해 힘썼다.

빛나는 가와세 나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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