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SBS에서 방송된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 사회자 김혜수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5일 SBS에서 방송된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 사회자 김혜수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SBS


진행자 김혜수의 눈물은 뜨거웠다. 먼저 떠난 선배들을 추모하기 위해 무대에 선 차태현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범죄도시>의 진선규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된 직후부터 펑펑 흘린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물만이 아니었다. 이외에도 눈여겨볼 만한 장면은 여럿이었다.

<곡성>의 쿠니무라 준과 <옥자>의 스티븐 연은 각각 남우조연상과 감독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일본어와 영어로 시상을 했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과 김수안은 주최 측에서 준비한 대본을 '연기톤'으로 읽는 재치로 박수를 받았다. 올해엔 <군함도>에 출연한 그 아역배우 김수안과 <아이 캔 스피크>의 나문희는 각각 최연소와 최고령 인기스타상의 주인공이 됐다. 

25일 SBS가 생중계를 하고 서울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38회 '청룡영화상'은 그렇게 여러 풍경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그 중 5개의 눈여겨 볼만한 장면을 꼽아 봤다. 가슴 아프거나 혹은 감격적이거나. 이 다섯 순간은 올 한 해 영화계의 흐름도 살짝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기도 했다.

김혜수의 눈물, 차태현의 먹먹함

 25일 SBS에서 방송된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 한 장면.

25일 SBS에서 방송된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 한 장면. ⓒ SBS


"우리에게 소중한 분들을 떠나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네 분의 평안을 기원하도록 하겠습니다."

20년 넘게 청룡상을 진행한 김혜수는 드물게 눈물을 훔쳤다. 가까스로 멘트를 이어나가며 "죄송합니다"라고 사과까지 했다. 그렇게 올해 청룡상은 2017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배우들에 대한 추모 무대를 마련했다. 예능 <1박 2일>에서 고 김주혁과 동고동락한 차태현은 "2017년은 안타깝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가슴 아픈 한 해로 우리 모두에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라며 추모의 운을 뗐다.

지난 10월 30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주혁, 2월 19일 폐암으로 별세한 고 김지영, 6월 16일 패혈증으로 별세한 고 윤소정, 4월 9일 췌장암으로 사망한 김영애. 그들은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했던 '현역'이었기에 이날 추모 무대는 더욱 가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이날 평소 예능과는 달리 그 어느 때보다 촉촉했던 차태현의 목소리가 많은 이들의 슬픔을 대변하고 있었다.

"소중한, 그리고 존경하는 선배님, 그리고 우리 동료를 떠나보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겠죠? 저는 아직 그 미소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따뜻하게 배려해주셨던 그 인자함 또한 잊혀지지 않습니다. 미처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그러한 큰 이별에, 사실 지금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동안 선배님들의 수고에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정말 행복했던 추억들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훌륭한 영화인이었던 것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하늘에서 부디 아프지 마시고 평안하시길 빌겠습니다. 정말, 많이많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형."

신인감독상 이현주 

 이현주 감독이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다.

이현주 감독이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다. ⓒ SBS


작년 11월 개봉한 <연애담>은 2만 3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저예산 독립영화이자 '레즈비언' 퀴어 멜로 영화로서는 드문 숫자였다. 이날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 이현주 감독과 주연 배우 이상희, 류선영은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독립영화전용관을 찾은 관객들을 직접 만났다.

이현주 감독이 "같이 참석한 이상희 배우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진짜의 사랑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며 공을 돌린 이상희와 함께 한국영화 아카데미, 배급사 인디플러그, 그리고 지방 독립영화 전용관을 언급한 것도 그 같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연애담>은 최다 관객상을 수상한 <택시운전사>와 비교해 정말 소수의 분들이 봐주셨는데요. 저를 비롯해서 PD님, 촬영감독님 이하 많은 스태프분들이 처음 장편을 만들었습니다. 함께 해 준 스태프 분들  부족한 부분을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회를 준 한국영화 아카데미, 이 작은 영화를 개봉해 준 인디플러그, 독립영화가 극장에서 걸리기가 어려운데 꿋꿋이 독립영화를 걸어준 각 지역의 독립영화 전용관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올해 청룡상은 <연애담> 이외에도 적지 않은 독립예술영화를 주목했다. 이현주 감독과 함께 <꿈의 제인>의 조현훈 감독이 신인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꿈의 제인>의 구교환 역시 <분장>의 남연우와 함께 신인남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다. 신인여우상에는 <꿈의 제인> 이민지, <연애담>의 이상희, <용순>의 이수경이 후보에 올랐다. 이들은 모두 독립예술영화계에서 주목받은 연기자들이다. 편집상에는 <공범자들>의 윤석민 기사가 후보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청룡상이 이들을 주목한 것을 한국 상업영화의 침체라거나 독립영화의 약진이란 표현으로 침소봉대하거나 과대 포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다 관객상'이란 부문까지 만들 정도로 '상업성'과 '흥행'이 기본 잣대인 주류 영화상에서 독립예술영화들과 그 작품들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라 할 만 하다.

남우조연상 진선규

 25일 SBS에서 방송된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 한 장면.

25일 SBS에서 방송된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 한 장면. ⓒ SBS


아마도 역대급 수상 소감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범죄도시>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진선규의 소감 말이다. 25일 저녁 시상식이 방송된 직후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진선규의 진심 어린 그의 4분여의 수상 소감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감동과 웃음의 연속이었다. 

<범죄도시> 무시무시한 조폭으로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 진선규는 이날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부문 중 하나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기쁨과 함께 눈물로 범벅이 된 그는 연신 눈가를 훔쳤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잘 생긴 건 아닌데... 저 조선족 아니고, 중국에서 넘어 온 거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저 여기 오는 것만으로도 너무 떨려서 청심환 먹고 왔는데, 이거 받을 줄 알았으면 하나 더 먹었어야 하는데. 제가 40년 동안 도움만 받으면서 살아서, 감사할 사람이 많은데, 빨리 얘기할 게요."

특히나 진선규가 "여기 어디서 보고 있을", "같은 배우이면서 애 둘 키우느라고 고생 많은" 아내이자 배우 박보경에게 눈물을 훔치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은 보는 이들까지 감동케 했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에선 진선규의 아내인 배우 박보경에 대한 궁금증을 토로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또 "제 코가 낮아서 안 된다고 코수술을 해 주려고 계까지 하고 있다"며 자신의 고향 친구들을 소개할 땐 객석이 웃음바다가 됐다.

진선규는 2016년부터 올해까지 <범죄도시> 외에도 <사냥>,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특별시민>, <남한산성> 등에 출연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연극계에서 20년 넘게 연기생활을 했던 진선규는 영화계로 넘어와 빛을 발했던 여러 선후배들의 궤적과 닮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그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판 연기자들의 귀감이 되는 동시에 또 하나의 '새로운 얼굴'을 대중들과 관객들에게 알리는 계기라 평가할 만 하다. 진선규야말로 그간 주로 여우주연상에서 파격적인 선택으로 화제를 모았던 청룡상의 '올해의 선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 안 했지?"라며 감사인사를 개별적으로 하겠다던 진선규가 수상의 기쁨을 아주 오래오래 만끽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여우주연상 나문희

 25일 SBS에서 방송된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 한 장면.

25일 SBS에서 방송된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 한 장면. ⓒ SBS


"동료들도 많이 가고, 저만 남아서 이렇게 좋은 상을 받는데, 이렇게 늙은 나문희에게 청룡영화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남아서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중략)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요, 나의 친구 할머니들. 제가 이렇게 상받았어요. 여러분도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해서 모두 상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인기스타상이 더 예외였을까. 올 한해 연기상을 휩쓸고 있는 <아이 캔 스피크>의 나문희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파격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연기 57년차이자 76세의 나문희가 '최고령' 여우주연상 수상은 1990년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제시카 탠디의 81세의 최고령 수상과 견줄 만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수상이 값진 이유는 비단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문희는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지만 그 장점을 과시하지 않는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이 영화를 본 300만이 넘는 관객들 중 나문희의 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영화 또한 소재주의에 함몰되지 않는 균형 감각을 자랑했다. 이날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은 감독상을 수상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렇게 소재와 캐릭터의 확장과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평가를 받은 작품인 동시에 70대 배우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케 해 준 작품이다.

그 중심엔 물론 나문희가 자리한다. 이 최고령 수상 기록은 좀처럼 깨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 배우 나문희가 '나의 친구 할머니들'과 오래오래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청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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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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