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UFC 역대 최강의 챔피언이라 추앙 받던 '스파이더' 앤더슨 실바는 크리스 와이드먼에게 챔피언 벨트를 빼앗긴 후 2015년 약물 검사에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검출돼 1년의 자격 정지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평소 사용하던 성 기능 촉진제에 금지약물 성분이 들어 있었을 뿐 고의로 금지약물을 사용할 의도는 결코 없었다"던 실바의 변명을 믿는 격투팬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실바는 지난 11일 UFC 중국대회 출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약물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40세를 훌쩍 넘긴 나이와 그에 따른 체력과 기량저하, 그리고 두 번째 약물적발로 인한 징계기간까지 고려하면 실바의 선수생명은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실바는 두 번의 약물 적발로 인해 그 동안 쌓아온 명성에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흠집이 생기고 말았다.

실바의 이탈로 UFC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중국대회의 메인이벤트에서 켈빈 가스텔럼과 맞붙을 상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초 위기에 놓여 있던 중국 대회를 구해낸 파이터가 나타났다. 불과 3주 전 피 튀기는 타이틀전을 치른 후 곧바로 중국대회 출전을 자처한 UFC의 대표적인 '밉상 캐릭터'이자 미들급 전 챔피언 마이클 비스핑이 그 주인공이다.

2% 부족했던 비스핑, 우연히 찾아온 기회 잡고 챔피언 등극

 비스핑(왼쪽)은 UFC 미들급에서 활동했던 한국계 파이터 데이스강과 추성훈을 모두 꺾은 유일한 파이터이기도 하다.

비스핑(왼쪽)은 UFC 미들급에서 활동했던 한국계 파이터 데이스강과 추성훈을 모두 꺾은 유일한 파이터이기도 하다. ⓒ UFC.com


2004년 영국의 작은 단체를 통해 종합격투기에 데뷔한 비스핑은 2006년 UFC의 선수육성 프로그램 TUF 시즌3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북미무대에 등장했다. 당시 UFC는  많은 격투팬을 보유해 시장성이 큰 영국 출신 미남 파이터의 등장에 커다란 기대를 걸었다. 데뷔 초기 라이트 헤비급에서 활동하던 비스핑은 2007년11월 라샤드 에반스에게 데뷔 첫 패배를 당한 후 미들급으로 체급을 내렸다.

비스핑은 미들급 전향 후 찰스 맥카시와 제이슨 데이, 크리스 리벤을 차례로 꺾고 역사적인 UFC 100 대회에서 전 프라이드 미들급 챔피언 '댄 헨더슨을 상대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비스핑은 헨더슨의 강력한 오른손 펀치에 맞고 다운된 후 이어진 플라잉 엘보우 파운딩까지 허용하며 그대로 실신을 당했다(당시 헨더슨에게 KO 당하는 장면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비스핑의 흑역사가 됐다).

이후 데니스강과 추성훈, 댄 밀러, 호르헤 리베라, 제이슨 밀러 등을 차례로 꺾고 다시 타이틀 전선에 다가간 비스핑은 2012년 1월 차엘 소넨과의 도전자 결정전에서 판정으로 패했다. 2013년 1월에는 비토 벨포트에게 헤드킥에 이은 펀치 파운딩을 허용하며 KO로 무너지기도 했다. 비스핑은 미들급 상위권에 도전하는 선수들을 번번이 좌절시키는 강자임에 분명하지만 정작 자신도 타이틀에 다가가기엔 2% 부족한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던 중 실바가 장기집권하던 미들급 타이틀의 주인은 크리스 와이드먼에서 루크 락홀드로 옮겨갔고 2016년6월 락홀드와 와이드먼의 재대결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와이드먼은 대회를 2주 남기고 부상으로 이탈했고 그 자리에 비스핑이 대타로 합류했다. 그리고 비스핑은 락홀드를 3분36초 만에 KO로 제압하고 새 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락홀드가 무릎부상을 안고 출전을 강행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모든 격투팬들을 놀라게 한 '언더독의 대반란'이었다.

그 동안 타이틀전의 고지에서 번번이 좌절했던 한을 풀려고 작정했기 때문일까. 상대 선수와 잦은 신경전을 벌이긴 해도 꾸준하게 옥타곤에 오르며 성실한 선수로 인정 받았던 비스핑은 벨트를 허리에 두른 후 본격적으로 '코너 맥그리거 놀이'를 시작했다. 락홀드를 비롯해 와이드먼, 자카레 소우자, 요엘 로메로 같은 체급 내 강자들을 놔두고 은퇴를 앞둔 댄 헨더슨을 1차 방어전 상대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생 피에르에게 타이틀 빼앗긴 후 3주 만에 중국대회 출전 결정

 타이틀을 빼앗긴 지 3주 만에 대회 출전을 결정한 비스핑은 은퇴 무대를 위한 전초전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

타이틀을 빼앗긴 지 3주 만에 대회 출전을 결정한 비스핑은 은퇴 무대를 위한 전초전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 ⓒ UFC.com


헨더슨과의 1차 방어전에서 얼굴에 많은 상처를 입고도 간신히 판정으로 승리한 비스핑은 무릎 수술과 재활, 그리고 도전자들의 자격(?)을 들먹이며 다시 '2차 방어전 상대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고심 끝에 고른 상대가 바로 4년의 공백이 있는 UFC 전 웰터급 챔피언 조르주 생 피에르였다. 생 피에르가 아무리 뛰어난 경기운영을 자랑하는 웰터급의 지배자였다지만 라이트 헤비급 출신의 비스핑과는 기본 골격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계산 착오를 한 쪽은 비스핑이었다. 비스핑은 꾸준한 증량으로 근육량을 키운 생 피에르에와의 타격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3라운드에서 생 피에르의 초크에 당해 그대로 실신을 당하고 말았다. 나름대로 편한 상대를 골랐는데 오히려 실신 패배를 당했으니 그 충격은 더욱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스핑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비스핑은 실바의 약물 적발로 공석이 된 중국대회 메인이벤트 출전을 자처했다. UFC 입장에서도 실바가 빠진 자리에 전 챔피언이 들어온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내년 3월로 예정된 영국대회를 은퇴무대로 삼고 싶다는 끗을 밝힌 비스핑은 가스텔럼과의 경기를 통해 자신의 건재를 알린 후 홀가분하게 은퇴전을 준비하려는 계획이다.

하지만 비스핑이 이번에 맞붙게 될 가스텔럼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비록 웰터급에서는 여러 차례 체중을 맞추지 못해 강제로 체급을 올리게 됐지만 미들급에서는 네이트 마쿼트, 팀 케네디, 비토 벨포트(마리화나 복용 적발로 무효처리) 등을 KO로 제압했을 만큼 강력한 타격을 자랑하는 파이터다. 가스텔럼 입장에서도 전 챔피언 비스핑을 꺾으면 단숨에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비스핑전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것이다.

격투기에서는 대회를 앞둔 선수들이 훈련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도핑에 적발돼 중도 하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015년에 열린 UFC 한국 대회에서도 미르코 크로캅, 티아고 알베스 등이 이탈하면서 대회 규모가 작아진 바 있다. 이번 중국 대회도 실바의 갑작스런 이탈로 '반쪽 짜리 대회'가 될 위기였지만 3주 만에 경기 출전 강행을 결정한 비스핑의 헌신 덕분에 UFC는 큰 위기를 넘기게 됐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UFC UFN 122 마이클 비스핑 켈빈 가스텔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