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사롭지 않은 이름을 지닌 미드필더 '여름'이 가장 뜨거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뛰었다. 다른 군인 동료들보다 결연한 의지가 돋보였다. 1부리그 K리그 클래식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보였다. 지난 토요일(18일)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 FC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전반전 종료 직전에 자신이 퇴장당하는 바람에 팀이 여기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밀려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태완 감독이 이끌고 있는 상주 상무가 22일 오후 7시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벌어진 2017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부산 아이파크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주장 여름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내며 귀중한 1-0 승리를 거두고 K리그 클래식 잔류 희망을 보았다.
여름의 외나무다리
▲ 지난 22일 오후 부산 구덕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부산 아이파크와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상주 상무 여름이 선취골을 터트린 후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역 군인 프로축구 팀의 특성상 핵심 선수들이 전역한 뒤에는 경기력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들은 준 국가대표 축구팀이라는 별명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각 팀에서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인 것이니 변명은 소용 없다. 잇몸으로 버텨야 할 상황까지 왔다.
상주 상무는 지난 18일 오후 3시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2017 K리그 클래식 38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후반전에만 두 골을 내주며 0-2로 패하는 바람에 11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기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밀려왔는데, 바로 그 경기 전반전 종료 직전에 주장 완장을 찬 여름이 인천의 주장 한석종에게 거친 태클을 거는 바람에 퇴장당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상주 상무로서는 불행 중 다행인 것이 승강 플레이오프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대회 규정상 정규리그의 퇴장이 연계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름의 주장 완장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아산 무궁화(경찰청)와의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3-0으로 시원하게 이기고 올라온 부산 아이파크의 승격 기세가 좀처럼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기에 그 완장의 무게는 더 크고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비겨서 승점 1점이라도 따냈다면 전남 드래곤즈를 승강 플레이오프로 밀어내고 잔류 턱걸이를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시즌 막바지 초겨울 외나무다리 앞에 선 주장 여름의 부담감은 다른 선수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여름에게 기막힌 승리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경기 시작 후 8분만에 측면 프리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흘러나온 공을 오른발 슛으로 마무리했다.
부산 아이파크 고경민이 걷어낸 공을 향해 달려든 여름은 강한 발리 슛보다 정확한 바운드 슛을 노렸고 그 공은 골문 앞 선수들 틈을 비집고 부산 아이파크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기에 여름의 이 골이 결승골이 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부산의 '골대 불운'과 상주 GK 유상훈의 '슈퍼 세이브'
▲ 지난 22일 오후 부산 구덕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부산 아이파크와 상주 상무와의 경기. 부산 고경민이 슈팅한 공을 두고 양팀 선수들이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뜻밖에 선취골을 내준 홈 팀 부산 아이파크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선수들은 물론 추운 날 저녁 경기장을 찾아온 홈팬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반전 후반부부터 부산 아이파크의 공격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반전 추가 시간인 45+2분에 부산 아이파크 선수들은 골대 불운에 치를 떨어야 했다. 미드필더 호물로의 좋은 패스를 받은 고경민이 상주 상무 골키퍼 유상훈과 1:1로 맞서는 절호의 동점 기회를 잡았지만 고경민의 1차 슛이 유상훈의 슈퍼 세이브에 막혔고 넘어졌다가 일어나면서 오른발로 찬 이정협의 2차 슛마저 수비수 윤영선의 몸에 맞고 왼쪽 기둥을 때렸다.
부산 아이파크로서는 그래도 후반전이 있기 때문에 이 골대 불운을 잊으려고 했다. 하지만 57분에 또 나온 골대 불운에 허탈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상대의 위험 지역에서 얻은 직접 프리킥 기회에서 호물로가 왼발로 감아찬 공이 구석으로 빨려들어갈 듯하다가 오른쪽 기둥을 아슬아슬하게 때리고 나간 것이다.
부산 하늘의 별이 된 조진호 감독을 대신하고 있는 이승엽 감독 대행은 61분에 고경민을 빼고 슈퍼 서브 이동준을 들여보내며 동점골을 노렸다. 이동준은 거짓말처럼 3분 뒤 기막힌 전진 패스로 동료 한지호를 빛냈다. 다시 상대 골키퍼와 1:1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한지호의 오른발 슛은 상주 상무 골키퍼 유상훈의 슈퍼 세이브에 또 막혔다.
77분에도 이정협이 내준 공을 호물로가 받아 왼발로 바운드 슛을 노렸지만 상주 상무 골키퍼 유상훈은 침착하게 왼쪽으로 날아올라 그 공을 기막히게 쳐냈다. 부산 아이파크에게 '정말 안 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입대 전 소속 팀인 광주 FC가 이번 시즌 K리그 클래식 12위에 머물러 곧바로 2부리그로 강등되었으니 상주 상무의 주장 여름은 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더 이기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원 소속 팀과 나란히 추락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름은 선취골 활약도 모자라 82분에는 실점 위기의 팀을 직접 구해냈다. 부산 아이파크의 골잡이 이정협이 회심의 오른발 슛을 날렸을 때 여름이 왼쪽 기둥 바로 앞에서 그 공을 왼발로 막아낸 것이다. 골문 구석으로 빨려들어갈 정도로 위력적인 슛은 아니었지만 기둥에 맞을지, 밖으로 벗어날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주장 여름은 최고였다.
▲ 지난 22일 오후 부산 구덕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부산 아이파크와 상주 상무와의 경기. 1대0으로 승리를 거둔 상주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 덕분에 상주 상무는 다시 일어나 K리그 클래식 잔류의 꿈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두 팀은 오는 일요일(26일) 오후 3시 장소를 상주시민운동장으로 옮겨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마지막 승부를 펼치기 때문에 어웨이 경기에서 1-0으로 이긴 상주 상무가 분명히 유리한 상황이다.
반면에 부산 아이파크는 11월 29일(수)과 12월 3일 홈&어웨이 방식으로 열리는 울산 현대와의 FA(축구협회) 컵 결승전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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