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는 1990년대 초·중반 국내 최고의 스포츠였다. 이상민과 서장훈, 문경은 등이 이끌던 연세대학교와 현주엽과 전희철 등이 버틴 고려대학교의 맞대결은 축구의 월드컵 못지않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실력과 곱상한 외모를 겸비했던 이상민과 우지원 등의 인기는 당대 최고의 연예인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과거는 휘황찬란했지만, 2017년 한국 농구는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농구는 야구와 축구는 물론, 배구보다도 관심이 떨어진다. 농구 대잔치 세대를 뛰어넘는 스타의 부재, 충격을 안긴 승부 조작 사건, 끊이지 않는 판정 논란, 밥 먹듯이 바뀌는 외국인 선수 규정 등 인기 몰락 원인에는 많은 것이 존재한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칭호를 떨쳐내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농구는 예나 지금이나 국제무대와 거리가 멀다. '전설' 신동파와 이충희 등이 주름잡던 시절부터 농구 대잔치 세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남의 이야기다. 지난 2014년, 무려 16년 만에 FIBA(국제농구연맹)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데는 성공했지만, 5전 전패를 기록하며 세계와 격차만 확인했다.

한국 농구는 아시아에서도 강자가 아니다. 2002년(부산)과 2014년(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기적'에 가까웠다. 과거에는 맹크 바티어, 왕즈즈, 야오밍 등이 버틴 중국, 최근에는 NBA 출신 하다디가 버틴 이란, 귀화 선수로 대표팀을 구성하는 중동 등에 밀려 성과를 내지 못한 적이 훨씬 많다.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0일 오후 인천시 중구 네스트호텔에서 열린 '2019 중국 농구월드컵 국가대표 출정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0일 오후 인천시 중구 네스트호텔에서 열린 '2019 중국 농구월드컵 국가대표 출정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뉴질랜드전 앞둔 허재호, 농구 인기 살릴 절호의 기회

FIBA는 올해 11월부터 농구 인기 부흥을 위해 A매치 홈&어웨이 제도를 도입했다. 한 장소에서 열리는 단기 대회에서 국제무대 출전 티켓을 따오는 시대와 결별이다. 2019 중국 FIBA 월드컵과 2020 도쿄 올림픽 등 앞으로 모든 국제 대회 출전권은 홈&어웨이 성과에 따라 차지하게 된다.

농구 인기를 되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농구팬들은 국내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을 제외하면, 축구의 월드컵 예선과 같은 A매치를 접해본 기억이 없다. 1988 서울 올림픽이 있었지만, 너무 오래 전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6년 미국 대표팀을 초청해 화제가 됐던 WBC나 2014년 뉴질랜드와 평가전 등 특별한 이벤트 경기만 열렸었다.

허재호가 지난 8월 레바논에서 열린 '2017 FIBA 아시아컵'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3위를 차지한 터라 기대도 크다. 이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다면, 농구 인기를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프로 야구가 침체기를 겪던 시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처럼 말이다.

대표팀은 23일 오후 3시 10분 뉴질랜드 웰링턴의 TSB뱅크 아레나에서 뉴질랜드와 예선 첫 경기를 치른다.

낯설지 않다. 우리 대표팀은 2014 스페인 FIBA 월드컵을 앞두고 뉴질랜드와 홈&어웨이 방식으로 5차례(2승 3패)나 평가전을 치른 경험이 있다. '2017 FIBA 아시아컵' 조별리그와 3-4위전에서는 모두 승리를 따낸 기억도 있다.

하지만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2019 중국 FIBA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놓고 맞붙는 만큼, 경기에 임하는 자세부터 다르다.

뉴질랜드는 지난 8월 맞붙었던 멤버와 7명이나 바뀌었다. 뉴질랜드 최고의 스타이자 NBA 오클라호마시티에서 활약하는 스티븐 아담스(센터, 213cm)는 합류하지 않았지만, 유럽에서 활약하는 코리 웹스터와 타이 웹스터, 아이작 포투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216cm의 장신 알렉스 플레저, 210cm의 로버트 로, 208cm의 마이클 카레나 등 최정예 멤버들이 우리와 맞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허재호는 주전 포인트가드 김선형이 부상으로 빠졌고, 골밑의 중심인 오세근이 198cm로 비교적 단신인 만큼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이종현과 김종규, 2m 가드 시대를 연 최준용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절실하다. 특히 이들은, 코뼈 복합골절로 수술까지 받았지만 대표팀에 합류한 양희종의 투혼을 헛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주장인 양희종이 지난 20일 오후 인천시 중구 네스트호텔에서 열린 '2019 중국 농구월드컵 국가대표 출정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주장인 양희종이 지난 20일 오후 인천시 중구 네스트호텔에서 열린 '2019 중국 농구월드컵 국가대표 출정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해외 사이트를 뒤적이는 시대는 지나갔다. 대표팀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고, 미디어와 대중의 큰 관심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허재호는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A매치를 통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고, 더 많은 이들이 농구장으로 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국 농구가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책임감이 요구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허재호 농구대표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