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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계열사인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이하 롯데캐논)의 사내하청기업 유천산업 소속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뒤, 그 내용을 편지글로 재구성했습니다. 편지글에 이어 캐논과 유천산업의 입장도 함께 소개합니다. - 기자 말

롯데캐논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번 추석 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보낸 과일 선물을 받았다.
 롯데캐논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번 추석 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보낸 과일 선물을 받았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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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캐논 안산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이곳에서 캐논 복합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전 세계로 수출되는 캐논 복합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신동빈 회장님께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저희의 간절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동빈 회장님은 지난 2005년부터 롯데캐논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저희 이야기에 큰 관심이 있겠지요. 이번 추석 때는 저희에게 롯데 가족이라면서 선물도 보내셨지요.

사실 저희는 롯데캐논 공장에 다니지만, 소속은 유천산업입니다. 유천은 롯데캐논 공장 내에 있는 사내하청 업체로 캐논 복합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을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이라 부른다지요. 최저임금보다 몇십 원 많은 시급을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롯데캐논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본급의 800%를 상여금으로 받을 때, 저희는 100%만 받았습니다.

열악한 처우보다 더 힘든 건 고용불안입니다. 그래서 회장님의 정규직 전환 대책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회장님은 3년 이내에 1만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그 뒤로도 차질 없이 계획을 이행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지요.

그런데요, 저희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롯데캐논 통근버스로 출근하고, 롯데캐논 출퇴근카드 리더기에 출근카드를 찍은 뒤 일했습니다. 롯데캐논 체육대회에 참가했고 롯데캐논 창립기념일에 선물을 받고 쉬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올해 1월부터는 바뀌었지만, 그 전에는 롯데캐논 정규직과 같은 색과 같은 디자인의 작업복을 입었습니다. 일하는 공간도 같았습니다. 바닥에 그어진 노란색 선만이 정규직과 저희의 작업 공간을 가를 뿐이었습니다. 1월에 플라스틱 벽을 설치했지만, 여전히 일부 작업 공간은 함께 사용합니다.

불법파견으로 위장한 건 아닐까요

감정적으로 정규직 시켜달라는 게 아닙니다. 법대로 하자는 겁니다. 문상흠 안산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노무사님은 저희의 이야기를 듣고, 롯데캐논과 사내하청의 관계가 불법파견을 숨기려는 위장 도급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기업들은 노동자를 언제든지 쉽게 채용하거나 자를 방법을 찾습니다. 파견노동자를 이용하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르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는 파견노동자를 투입할 수 없습니다. 법을 무시하고 불법으로 파견노동자를 쓰는 제조업체들도 있지만, 이름이 알려진 제조업체들은 다른 방법을 씁니다.

바로 사내하청을 활용한 위장 도급입니다. 불법파견을 감추면서도 저임금 파견노동자를 쓰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조업체는 사내하청과 계약을 맺고, 사내하청으로 하여금 소속 노동자를 자르고 채용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는 상시적인 업무에는 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입니다. 법원은 잇따라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 상태에 있고, 이들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불법 파견으로 판정되면, 원청은 파견법에 따라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도급은 불법이 아닙니다. 사내하청이 독립적인 기술을 지니고 있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원청의 지시를 받지 않고 독립적인 업무를 한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롯데캐논의 작업 전 점검기준표·작업 표준서에 따라 일했습니다. 저희의 업무 시간, 연장·휴일근로, 휴가도 롯데캐논이 결정했습니다. 저희는 또한 롯데캐논 직원의 업무 지시와 공정·청소·복장 점검을 받았습니다.

지난 1월부터 작업복 색상이 바뀌고, 작업장이 구분되고, 각종 문서에 유천의 이름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문상흠 노무사는 불법 파견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머잖아 노동청에 롯데캐논의 불법 파견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진정을 넣으려고 합니다.

롯데캐논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가을이 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매년 10월 1년 단위로 맺는 롯데캐논과 유천의 사내하청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내년에도 계약이 이어진다고 하는데, 하지만 롯데캐논이 생산 물량을 줄이면서 어느 때보다 고용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벌써 유천 사장님의 입에서 권고사직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2년 전에도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고용불안도 힘들지만, 퇴직했을 때 퇴직금을 거의 받을 수 없다는 점도 저희를 힘들게 합니다. 사장님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 퇴직금을 거의 적립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롯데캐논은 매년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100억 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사내하청과 저희 노동자들은 왜 열악한 상황에 놓이는 걸까요?

신동빈 회장님, 부디 저희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회장님께서 지난 5월 롯데 가족경영·상생경영 및 창조적 노사문화 선포 2주년 기념식에서 "고용이 최고의 복지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도 성장에 따른 고용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앞으로 3년 동안 롯데의 정규직화 전환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당연히 롯데 계열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희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롯데캐논은 저희의 이 절박한 사정을 잘 알고 있겠지요. 그분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은데, 롯데캐논에서는 아직 답이 없습니다. 회장님은 기업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첫 순서는 저희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말을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8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2차 주요기업인과의 간담회 겸 만찬에 앞서 열린 '칵테일 타임'에서 황창규 KT 회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허창수 GS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황창규 KT 회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8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2차 주요기업인과의 간담회 겸 만찬에 앞서 열린 '칵테일 타임'에서 황창규 KT 회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허창수 GS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황창규 KT 회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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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캐논 "직접 고용 어렵다"


롯데캐논은 유천 노동자 직접 고용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롯데캐논 인사담당 관계자는 17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통화에서 "롯데캐논은 생산 물량 감소로 6개월 사이에 직원 50여 명을 떠나보냈다. 유천 노동자를 직접 고용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불법 파견 의혹과 관련해서는 "관계 기관이 판단할 문제"라면서 말을 아꼈다.

이 관계자는 "롯데캐논은 롯데와 일본 캐논 본사가 절반씩 지분을 갖고 있고, 일본 캐논이 생산 물량을 정한다. 올해 생산 물량이 3000억 원인데, 내년에는 800억 원어치의 물량이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으로 롯데캐논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캐논과 만나 대화를 하고 싶다는 유천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내부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신동빈 회장의 비정규직 전환 정책과 관련해, "그룹에서 아직 지침이 내려온 것 없다. 롯데캐논은 롯데 계열사이기도 하지만 일본 캐논과의 합작사이기 때문에, 그룹 지침이 내려온다 해도 일본 캐논과 협의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유천 쪽도 "회사가 존재하는 한, 롯데캐논 직접 고용은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유천 심모 대표는 노동자들의 불법 파견 의혹 제기에 "불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올해 1월부터 불법파견 흔적을 지우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칸막이 등이 없으면 법적인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올해 1월 롯데캐논과 유천 작업장을 나누는 칸막이를 쳤다. 업무 시간이나 근무 인원과 관련해선 식당 이용 인원 때문에 캐논에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퇴직금과 관련해, "퇴직하는 직원이 있으면, 어떻게든 퇴직금을 마련하겠다. 지금까지 퇴직금을 주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태그:#롯데캐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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