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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들에게 인사하는 김윤정 작가
▲ <흔적> 방문객들에게 인사하는 김윤정 작가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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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빈 페트병을 봤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병이 예쁘게 사용이 되었다가 버려진 거잖아요. 그러면서 저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저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외형적인 것이 사라지더라도 영혼은 남는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빈 페트병에 예쁘게 옷을 입혀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김윤정(49) 작가의 개인전이 <흔적>이라는 제목으로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갤러리 앨리스(Alice)'에서 지난 11일부터 열리고 있다. 30평 남짓한 갤러리에 들어서면 긴 공간을 먼저 만나게 된다. 거기에는 페트병을 재해석한 작은 작품 40개를 모아서 만든 커다란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작가는 버려진 물병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떠올렸고,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이 공존하는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회 오프닝 전에 갤러리에서 김 작가를 만나보았다.

'흔적'을 주제로 열리는 전시회

<흔적>
 <흔적>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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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페트병하고 인간인 저하고 저는 동급으로 봐요. 본질이 사라지고 나면 껍데기만 남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예쁘게 만들어주고 관람객들이 그것을 보고 '힐링'이 될 수 있다면, 그 페트병은 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여기에 서있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한 작가와 대화 도중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페트병이 옷을 입고 싶은지. 페트병이 정말 원해서 옷을 입혀주는지. 혹시 김 작가가 이기적인 생각으로 옷을 입혀준 것은 아닌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 병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 그냥 화려하게 옷을 입혀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굉장히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김 작가는 이런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었다고 한다. 누군가와 언쟁을 벌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과의 좋았던 기억만 떠오른다고 한다. 그것도 그 사람과 만나왔던 흔적이 될 수 있으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굉장한 흔적인 거예요.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부모님한테 저는 대단한 흔적인 거죠. 부모님한테 받는 사랑, 친구들과의 우정, 배우자와는 만남 등 전부 흔적인 거죠."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

<흔적>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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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작은 네모 아크릴 상자 안에 알약이 들어있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노란색 바탕 위로 물감의 흐름들이 지나는 이 작품 역시 흔적과 관련된 모티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몇 해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생전에 아버지가 드시던 약을 보게 된 거죠. 그런데 그 약의 색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왜 색이 예쁠까. 아픈 환자들에게 예쁜 색으로 위로해주기 위한 의도라고 생각했어요. 그 약들을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작품에 넣게 된 거죠."

몇 해 전 작고하신 작가의 부친은 생전에 매우 강인한 분이셨다. 하지만 통증을 못 이겨 약에 희망을 두는 모습에서 알약에 대한 삶과 죽음의 담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색채의 뒷면에 남겨진 삶과 죽음의 그림자. 이것 역시 하나의 '흔적'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계속될 흔적에 관한 이야기

<흔적>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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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 맞은편에는 이 주제에 맞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들 역시 '흔적' 임을 나타낸다. 물감은 캔버스에 흘러 내려가며 흔적을 남기고 무엇인가 형상화하기도 한다. 또는 그냥 흘러 내려가기도 한다.

"앞으로도 이런 주제로 작품할동을 하게 될 것 같아요. 폐기물이나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내용으로 갈 거예요. 대신에 분야는 달라질 수 있겠죠. 설치작품이 될 수도 있고, 행위만으로도 가능할 테고요. 그래서 공부도 많이 하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보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번 전시회는 20일까지 열린다. 김 작가는 관객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어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유일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얘기하고 싶어요. 제 작품을 보면서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김윤정 작가의 작업실
 김윤정 작가의 작업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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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윤정 작가, #흔적, #갤러리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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