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극적인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시즌 첫 승을 따냈다.

이환우 감독이 이끄는 KEB하나은행은 8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신한은행 2017-2018 WKBL 1라운드 신한은행 에스버드와의 원정경기에서 68-64로 역전승을 거뒀다. 시즌 개막 후 3경기 만에 첫 승을 거둔 하나은행은 단숨에 공동 3위로 뛰어 올랐고 개막전 승리 후 내리 3연패를 당한 신한은행은 최하위로 추락했다.

하나은행의 외국인 선수 이사벨 해리슨은 16득점 1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밑을 완벽히 사수했다. 식스맨으로 출전한 '지염둥이' 김지영도 3점슛 2방을 포함해 7득점을 올리며 슛감이 좋지 않았던 주포 강이슬(6득점)을 보좌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2-23의 열세를 딛고 대역전극을 이끌어낸 하나은행 승리의 일등공신은 3쿼터에만 12득점을 몰아친 하나은행의 비밀병기 김단비였다.

수련 선수로 입단해 절대강자 우리은행의 핵심 식스맨으로 성장

 김단비는 무명의 수련 선수가 챔피언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성장하는 모범적인
 과정을 보여줬다.

김단비는 무명의 수련 선수가 챔피언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성장하는 모범적인 과정을 보여줬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지난 2009년 11월 2009-2010 WKBL 신인 드래프트는 파행 속에 강행됐다. 당시 우리은행과 신세계는 샐러리캡을 어긴 구단에 대해 징계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드래프트 불참을 선언했고 한국여자농구연맹은 4개 구단 만으로 드래프트를 진행했다. 6개 구단 중 2개 구단이 빠진 상태에서 드래프트가 진행됐으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프로 진출을 위해 열심히 기량을 연마했던 어린 선수들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청주여고의 김단비 역시 그 해 '졸속 드래프트'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김단비는 고교 시절 골밑과 외곽을 두루 오갈 수 있는 괜찮은 포워드 자원으로 꼽혔음에도 정작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3라운드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결국 김단비는 광주대로 진학해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대학에서 1년 반을 보냈을 때 김단비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2011년 당시 팀을 리빌딩하던 우리은행에 수련 선수로 입단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김단비는 입단 첫 시즌 단 한 경기에 출전해 1분47초만을 소화했다. 그해 우리은행은 7승33패로 6개 구단 중 최하위에 머물렀는데 한마디로 김단비는 꼴찌팀에서도 거의 뛰지 못하는 '후보 중의 후보'에 불과했던 셈이다. 마침 신한은행에 이름이 같은 '레알 신한의 마지막 기수' 김단비가 있었는데 WKBL에서 두 선수의 존재감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지만 김단비는 좌절하지 않고 착실히 기량을 연마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김단비의 통산 기록을 살펴 보면 대기만성형의 수련 선수가 어떻게 성장하며 팀에 녹아 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위성우 감독이 부임한 2012-2013 시즌 6경기에 출전한 김단비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출전 경기 수를 6경기에서 9경기, 23경기, 33경기, 35경기로 점점 늘려 갔다. 출전 시간 역시 시즌마다 꾸준히 늘어나면서 2016-2017 시즌에는 최강 우리은행에서 평균 17분17초를 활약하는 '핵심 식스맨'으로 성장했다.

사실 김단비는 득점이나 리바운드, 어시스트, 외곽슛 등 어느 하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힘들기로 소문난 위성우 감독의 지옥 훈련을 모두 견뎌내며 시즌을 치를수록 발전을 거듭해 나갔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비나 몸싸움 등 팀에서 꼭 필요한 궂은 일을 도맡아 해온 김단비는 역대최고승률 기록을 세운 우리은행에서 반드시 필요한 퍼즐조각으로 성장했다.

이적 후 세 번째 경기에서 대역전승 이끌며 존재감 확인

 3쿼터 김단비(가운데)의 대폭발이 없었다면 하나은행의 역전승도 없었을 것이다.

3쿼터 김단비(가운데)의 대폭발이 없었다면 하나은행의 역전승도 없었을 것이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김단비는 지난 시즌 전경기에 출전해 3.4득점2.2리바운드로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우리은행의 통합 5연패에 기여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2016-2017 시즌이 끝난 후 주전 센터 양지희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전력약화가 불가피해졌다. FA시장을 살피던 우리은행은 국가대표 포워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정은을 영입하며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역시 보상선수 출혈. FA 영입 선수 김정은을 포함한 5명의 보호 선수 명단에서 김단비의 이름은 제외됐고 하나은행은 챔피언 우리은행의 핵심 식스맨 김단비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결국 김단비는 프로 입단 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이적을 경험하게 됐다. 김단비의 오늘을 있게 한 위성우 감독도 많은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사실 김단비 입장에서는 경쟁이 치열한 우리은행보다는 하나은행에서 더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우리은행에서 등번호 17번을 달았던 김단비는 하나은행 이적 후 김정은이 사용하던 13번으로 등번호를 교체했다. 공교롭게도 신한은행의 김단비와 같은 번호. 이름에 등번호까지 같은 WKBL의 두 김단비는 이제 더욱 자주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나은행에서 첫 시즌을 맞은 김단비는 개막 후 두 경기에서 평균2득점 2.5리바운드1어시스트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나은행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거라는 기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하지만 김단비가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김단비는 시즌 3번째 경기였던 8일 신한은행전에서 26분50초를 소화하며 17득점 4리바운드3어시스트2스틸로 맹활약했다. 특히 경기의 향방을 뒤집은 3쿼터에만 3점슛 2방을 포함해 무려 12득점을 몰아치며 대역전극을 주도했다. 개인 득점은 신한은행의 김단비(21점)가 더 많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활짝 웃으며 동료들과 기쁨을 나눈 선수는 하나은행의 김단비였다.

김단비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던 2009-2010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총 12명의 선수가 프로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7년이 흐른 지금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는 선수는 단 2명(박소영, 이수연) 뿐이다. 물론 이들 중에도 김단비만큼 많은 출전시간을 가지며 뛰어난 활약을 하는 선수는 없다. 수련선수로 입단해 6년 만에 하나은행의 비밀병기로 떠오른 김단비는 좋은 스타트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는 스포츠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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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2017-2018 시즌 KEB하나은행 김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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