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OO이 운영했던 치킨 가게에서 일한 바 있는 손미라씨(가명)는 <그알> 취재진에게 "그가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OO이 운영했던 치킨 가게에서 일한 바 있는 손미라씨(가명)는 <그알> 취재진에게 "그가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다. ⓒ SBS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어금니 아빠'의 과거 행적 때문이다. 26일 방송된 JTBC 탐사 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긴급추적! 이OO 인간가면' 편(아래 <스포트라이트>), 28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악마를 보았다: 이OO의 두 얼굴' 편(아래 <그알>)에서는 잇달아 '어금니 아빠'의 범죄행각을 고발했다. 두 편 중 하나만 보아도 이OO의 행각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방송을 통해 드러난 이OO의 행적을 정리해보자. 먼저 이OO은 딸의 친구를 유인해 성추행한 뒤 살해했다. 이에 앞서 이OO는 2005년부터 자신의 딸이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려 엄청난 액수의 후원금을 거둬들였다. 경찰 조사 결과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이OO이 챙긴 후원금이 12억 원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 돈 중 딸의 불치병 수술에 들어간 돈은 1억, 나머지는 외제차, 고가 가전제품 등을 사는 데 썼다. 뿐만 아니라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는 전신 문신을 하는데 후원금을 사용한 정황도 불거졌다.

'어금니 아빠'가 아내 최아무개씨에게 성매매를 강요했고, 지난 9월 최씨가 숨진 건 자살이 아닌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는다. 이OO은 최씨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와 <그알> 제작진들은 최씨가 떨어진 각도를 근거로 이OO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스포트라이트> 취재진은 최씨가 일직선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아내의 주검 앞에서 태연히 전화통화를 하는 이OO의 모습, 소방관들이 엄마의 주검을 수습하는 장면을 찍는 딸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도 공개했다. <그알>은 더 나아가 이OO의 집과 욕실을 실물크기로 재현해 이OO의 주장에 문제점이 있음을 꼬집었다.

최씨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은 이제 수사당국의 몫이다. <스포트라이트>와 <그알>이 사고 당시의 CCTV화면과 법의학자들의 분석을 인용해 이OO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린만큼, 수사당국은 수사력을 집중해 그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이OO이 던진 '떡밥' 덥석 문 언론

두 방송을 통해 이OO의 행적을 보면서 언론과 사법당국이 현 사태에 엄중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OO은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3년 동안 꾸준히 언론에 노출됐다. 그가 출연한 방송 영상만 보면 도무지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 같지 않아 보인다. 공중파나 종편의 '게이트 키핑' 시스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OO은 십년 넘는 시간 동안 어떤 식으로든 언론에 노출되고자 '떡밥'을 던졌고, 언론은 이를 물었다.

사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가족 중 누군가, 특히 어린 자녀가 난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연은 언론이 좋아할 떡밥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OO은 영악했고, 각 언론은 그에게 놀아난 셈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열어 이OO에게 후원금을 쾌척했다.

문제는 검증이다. 이OO은 한 번은 방송의 도움으로 치킨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 가게에서 일한 바 있는 손미라씨(가명)는 <그알>에 출연해 이OO이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학창시절부터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OO이 다녔던 중학교 교사는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해 사뭇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이 교사의 말이다.

"여학생을 강제로 (성폭행) 했는지, 그 여학생의 피를 묻히고 와서 애들한테 떠벌린 거에요. 자랑을 한거죠."

물론 사람이 성장 과정에서 극적으로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10년 넘게 언론에 노출이 됐다면 그의 사람됨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경우에 따라선 그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가 드러날 법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OO이란 사람의 본바탕을 문제시하는 목소리는 없었고, 이는 결국 한 여중생의 죽음으로 귀결됐다. 참 영악했지만, 그 어떤 검증 없이 앞다퉈 이OO을 미담의 주인공으로 포장한 언론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제 사법당국의 책임을 언급할 차례다. <스포트라이트>와 <그알>의 취재 결과, 이OO은 중학생 시절부터 성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 이OO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당시 이OO의 가정은 부유했다. 이OO의 지인과 동창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아버지는 레미콘 업체를 운영하며 부를 쌓았고, 어머니는 이 재력으로 학교 운영위원회를 뒤흔든 것으로 보인다. 이OO의 어머니는 학교는 물론 사법당국 마저 돈으로 매수했다. 이OO의 중학교 당시 이웃에 살았던 한 주민은 <스포트라이트>와 인터뷰에서 이OO에 대해 "'엄마가 매번 돈을 뺐다'고 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이OO은 중학교 시절부터 문제적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다녔던 중학교 교사는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해 그가 저지른 성폭행 사실을 증언했다.

이OO은 중학교 시절부터 문제적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다녔던 중학교 교사는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해 그가 저지른 성폭행 사실을 증언했다. ⓒ JTBC


지금 시점에서 만약이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만약'이라고 가정해보자. 만약 수사당국이 공평무사하게 법을 집행해 소년 이OO을 단죄했다면, 이OO이 성인이 되어 이토록 괴이한 행각을 벌일 수 있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은 예측하기 어려워 확답을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법당국이 이OO의 어머니가 내미는 돈다발에 약해지지만 않았어도, 우리사회가 이토록 충격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 언론은 정신을 못 차린 모양새다. 이OO의 살인 행각이 만천하에 알려진 이후 사태의 본질을 짚기 보다는 선정적인 제목을 단 기사를 쏟아내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스포트라이트>와 <그알>이 되짚지 않았다면, 사건은 대중들에게 '이OO 전신문신'이나 '아내 사망 뒤 성인사이트 채팅' 등의 3류 범죄로만 기억될 뻔 했다.

공권력은 어떤지 지켜봐야겠다. 일단 경찰은 관할 경찰서인 중랑경찰서 서장 이하 관계자들에 대해 초동대처 부실에 따른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사후 약방문식 대처만으로 경찰의 책임이 비켜가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가 제안했듯 아동 유괴나 실종 사건의 경우 지역 경찰과 연방수사국(FBI)이 공조하는 미국은 좋은 참고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선 경찰서와 상위 기관이 공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방안을 적극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이번 주만 지나면 11월이다. 이즈음만 되면 어김없이 신문과 방송에서는 후원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사연이 넘쳐난다. 그런데 올해엔 유독 언론이 소개하는 미담 중에 이OO 같은 사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이OO에 대한 엄정한 단죄는 필요하다. 소중한 생명을 빼앗은 데 더해 사회적 신뢰마저 금가게 했으니 말이다.

이OO의 행각과 그 행각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파장을 명확히 알려준 <스포트라이트>와 <그알> 취재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그것이 알고싶다 이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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