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컷.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컷. ⓒ 콘텐츠판다

 
변두리에 고시촌(어디서 이렇게 누추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장소를 섭외했는지 장소 섭외팀의 노고에 경외를 표하고 싶어질 정도다)에서 무려 120만 원의 수도세 고지서가 발부된다. 이 고지서를 받아든 고시생은 당연히 그 돈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당연히 자신을 뒷바라지해주는 엄마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 미장원과 더불어 불법 미용시술(어쩌면 주수입이라 할 수 있는)을 통해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억척스런 엄마는 도무지 120만 원이라는 수도세를 곧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직접 상경하여 고시 공부에 여념이 없는 아들을 대신해 수도세의 비밀을 직접 파헤치려고 한다.

수도세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박지영의 고군분투

영화 <범죄의 여왕>은 억척스런 엄마(박지영)가 아들이 거주하는 원룸 연립주택으로 향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배고프다 못해 몸과 정신이 점점 피폐해지는 고시생들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고시생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서 한 몫 챙기려는 불한당 무리들(영화가 뻔하게 전개되었다면 이 불한당 무리들과 엄마의 한 판 사투가 펼쳐졌을 텐데 영화는 결코 뻔한 전개를 허락하지 않는다)을 적나라하면서도 위트를 곁들여 묘사한다.

아들을 위해 수도세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엄마의 고군분투가 영화의 핵심 스토리이다. 그런데 이 엄마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피폐한 삶을 지내던 88만 원 세대들이 하나둘 팔을 걷어 엄마를 돕기 시작한다. 3류 건달 같은 삶을 살던 개태(조복래)는 엄마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되어 수도세 비밀을 파헤치는데 결정적인 조력자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시종일관 허무맹랑하게 보이던 고시생 301호 오덕구(백수장)과 402호 경진숙(이숙)은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귀여운(?) 반전을 선보이며 엄마의 또 다른 조력자 역할을 맡는다.

억척스럽게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던 엄마의 모성애와 더불어 섹시한 매력이 한꺼번에 묻어나는 사건 해결 장면은 아주 참신하지는 않더라도 배우 박지영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게 한다.

소박한 제작비로도 충분히 위트 넘치는 영화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컷.

영화 <범죄의 여왕> 스틸 컷. ⓒ 콘텐츠판다

 
스토리가 다소 뻔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전개과정이 촘촘하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게 한다. 제작사 '광화문 시네마'는 소박한 제작비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했다.

또 다른 아쉬움은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박지영이 영화제에서 별다른 수상을 하지 못한 부분이다.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한국영화의 여배우 중에 이처럼 자신만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한 배우도 보기 드문데, 중년배우의 열정에 별다른 찬사가 없었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다. 소위 영화 평론한다는 이들의 평가도 생각보다 인색해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런 영화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국영화의 질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동안 문화계는 시대에 역행하는 정부의 블랙리스트 정책으로 인해 위축되다 못해 쪼그라들고 '배달의 기수'를 연상하는 정책영화들이 블록버스터라는 가면을 쓰고 대중들을 현혹하였다. 그러나 이제 비상식을 청산하려는 새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한국영화의 다양성 확대가 기대된다. 역대 한국영화 최고의 호우시절이라 할 수 있는 2003년에 개봉되었던 영화들을 떠올려보면 자연스레 이해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형진 시민기자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영화 범죄의여왕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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