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위안부 기림의 날'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다. 이 날은 8월 14일이다. 왜 8월 14일인가. 1991년 8월 14일은, 故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거주자로는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세상에 알린 날이다. 이를 기념하여 8월 14일은 '세계위안부 기림의 날'이 됐다.

당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 '최초의 증언'이 1991년에야 나왔다는 것이다. 해방을 맞이한 지 46년 뒤에서야 말이다. 46년 동안 왜 우리는 이 진실을 접할 수 없었을까? 수백 수천이 아닌, 수만 수십만이 당했던 이 거대한 사실이 어떻게 그렇게 꽁꽁 숨겨져 있을 수 있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실마리는 '피해자' 혹은 '약자'를 대했던 우리의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극 중 옥분(나문희 분)은 어머니의 묘 앞을 찾아가서 말한다. "엄마가 아들 생각해서 (앞길에 방해가 될까봐)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난 약속을 못 지키겠다. 해야겠다. 내가 더 중요하니까."

한국 사회가 약자를 대했던 방식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하나 있다.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가혹하다'는 점이다. 거대한 진실이 은폐될 수 있었던 이유다. 참혹한 역사의 처절한 피해자가 오히려 '손가락질' 당할까봐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러니.

<아이 캔 스피크> 영화에서도 옥분의 과거는 영화 중반부에서나 밝혀지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민재(이제훈 분)는 옥분을 찾아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위안부'의 실체를 46년이 지나서야 확인하게 된 한국 사회가 할머니들에게 드려야 할 말을, 영화 속에서나마 던진 것은 아닐까.

 족발집을 운영하는 혜정(이상희 역). '재개발'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를 맞는다.

족발집을 운영하는 혜정(이상희 역). '재개발'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를 맞는다. ⓒ 리틀빅픽쳐스


영화에는 또 다른 '약자'가 등장하는데, 그 인물이 바로 족발집을 운영하는 혜정(이상희 분)이다. 혜정은 '재개발' 때문에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찰도, 구청도 그의 편이 아니다.

영화는 이러한 아픔과 비극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희망'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제 우리사회가 이들과 '연대'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함을 갖추었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가장 극적인 장면이 바로 옥분과 그의 절친 '진주댁'(염혜란 분)이 화해하는 장면이다.

진주댁은 "그 아픔을 어떻게 나에게 한 번도 이야기해주지 않을 수 있었는지, 너무 서운하다"고 옥분에게 토로하고, 옥분이 오히려 그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넨다. 진주댁은 옥분의 '부끄러운' 과거가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그의 아픔을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위안부 증언을 위해 미국행을 결심한 옥분에게 보내지는 관심들.

 옥분의 절친 진주댁(염혜란 분). 자신의 과거를 숨긴 옥분을 향해 서러움을 토로한다.

옥분의 절친 진주댁(염혜란 분). 자신의 과거를 숨긴 옥분을 향해 서러움을 토로한다. ⓒ 리틀빅픽쳐스


이러한 변화는 영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 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일본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과거사 문제를 덮어두었던, 즉 '피해자'들의 아픔을 외면했던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해 5월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옥바라지골목에서 용역직원들을 향해 "서울시의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이 공사는 없다. 내가 손해배상 당해도 좋다"고 말했던 동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는 좋은 쪽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 영화가 더욱 흥행할수록 그 확신은 더 강해질 것만 같다. 더 많은 사람이 '피해자의 아픔'에 함께하고 싶다는 것일테니까. <아이 캔 스피크>의 흥행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양흔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이캔스피크 위안부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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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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