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개막한 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다큐초이스' 부문에 상영한 김미례 감독의 <외박>(2009)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지속한 홈에버(현 홈플러스)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9년 공개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 유수 영화제 및 야마카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영화를 8년 만에, 투쟁 이후 딱 10년 만에 극장에서 본 소감은 그야말로 묘하다. 말로만 들었지, <외박>을 DMZ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서 처음 보게 된 필자에게 영화에서 다뤄지는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10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현실이다.

10년 전 이야기, 8년 만에 다시 보다

 2007년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파업 투쟁기를 다룬 김미례 감독의 <외박>(2009) 한 장면.

2007년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파업 투쟁기를 다룬 김미례 감독의 <외박>(2009) 한 장면. ⓒ 김미례


2007년 당시, 수백 명이 넘는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은 왜 파업을 했을까. 그녀들이 상암 월드컵 홈에버 매장 계산대를 점거한 2007년 6월 30일은 노무현 정부가 기간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시행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만든 법이라고 하나, 이 법안을 회피하기 위한 사측의 꼼수에 분노한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하던 일터를 점령했고, 사측을 상대로 기약 없는 투쟁을 이어간다.

당시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회전역으로 큰 관심을 받았고, 그때만 해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던 필자도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굉장했다는 것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하지만 필자는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똑똑히 기억해준 것은 2014년 개봉한 부지영 감독의 <카트>였다.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모티브를 얻은 <카트>는 극영화임에도 비정규직 마트 노동자들의 현실을 리얼하게 담아내며 당시 홈에버 투쟁을 환기하는 동시에 이명박근혜 집권 이후 더욱 열악해진 노동조건을 꼬집었다.

<카트>보다 훨씬 이전에, 실제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생생히 담아낸 <외박>은 당시 파업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들의 설렘과 용기 좌절과 극복이 고스란히 담긴다. 총 510일간의 긴 파업으로 이어지는 동안 상당수는 생계, 집안일 등을 이유로 일터에 조기 복귀하기도 하고 외적인 이유로 투쟁 전선이 흔들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측을 상대로 끈질기게 투쟁을 이어나간 여성 노동자들은 비록 파업 참여자 전원 복귀는 이루지 못했지만, 복직을 포기한 노조 간부들의 결단으로 대다수 노동자가 일터로 돌아가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홈에버 파업 투쟁 이전에도, 노동조건 개선, 해고자 복직 등을 이유로 진행된 파업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홈에버 파업은 그 투쟁의 주체성이 여성 노동자에 있었고, 기존의 남성 중심 투쟁문화에서 벗어난 그녀들의 투쟁은 '아줌마'로 통용되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위치를 제고하는데 기여하였다. 진보진영과 노동 운동계 내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던 남성 중심적 세계관을 은연중에 드러냈다는 평도 받았다. 여성 감독(김미례)의 시선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연대를 바라보고, 투쟁을 통해 자신을 여성 노동자로 정체화하는 과정을 담아낸 점에 있어서 여성주의(페미니즘) 다큐멘터리로 평가할 수도 있다.

여성 그리고 노동

 2007년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기를 다룬 김미례 감독의 <외박>(2009) 한 장면.

2007년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기를 다룬 김미례 감독의 <외박>(2009) 한 장면. ⓒ 김미례


<외박>을 온전히 여성주의적 영화로 바라볼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서울독립영화제 40주년 기념 책자 <21세기의 독립영화>에 '공/사의 관계를 해체하기: 한국 여성 다큐멘터리와 '개인적인 것'이라는 글을 기고한 영화평론가 황미요조는 <외박>을 두고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정치적' 투쟁은 모두 젠더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민주노총 간부들에게 조차 '아줌마'라고 불릴 정도로 차별받고 있지만 이와 같은 다층적인 젠더적 모순을 형상화할 (영화) 언어를 찾지 못하고 기존의 남성 중심 투쟁 서사에 기댄 다큐멘터리로 분류한다.

실제 <외박>에 등장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마트 일과 가사를 병행하고 있고 마트 점거 투쟁 덕분에 잠시나마 집안일에서 해방된 즐거움을 만끽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이내 자신들의 부재로 제대로 굴려 가지 않는 집안을 걱정한다. 이들에게는 파업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다짐 외에도 자신이 파업 때문에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가족들의 안위가 눈에 밟힌다. 장기간 파업에 돌입하는 남성 노동자들 또한 오매불망 가족 걱정을 하지만, (홈에버의) 여성 노동자들 처럼 가사를 내팽개쳤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진 않는다. 이와 달리 홈에버의 여성 노동자들은 파업 투쟁을 하면서도 틈틈이 소홀히 했던 집안일을 챙겨야 한다.

여기서, 여성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인정받고자 했던 홈에버 파업 투쟁의 의의가 드러난다. 홈에버 파업 투쟁 이전만 해도, 마트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애들 학원비, 반찬값을 벌기 위해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아줌마'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영화 <카트>에서 싱글맘으로 혼자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혜미(문정희 분)처럼 생계 전선에 뛰어든 여성 마트 노동자도 많았고, 그런 걸 떠나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및 노동 분위기 또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대상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2017년을 사는 비정규직과 여성의 삶은 그때보다 더 나아졌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근혜' 시대에 더욱 악화한 비정규직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10년 전에 있었던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그 이후에도 이어진 수많은 고용 안정 투쟁을 기억했으면 한다. 8년 만에 영화제를 통해 스크린에서 관객과 만난 <외박>은 2017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할 우리에게 수많은 물음과 생각을 안겨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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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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