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루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지난 13년간 붉은 유니폼을 입고 253골(559경기)을 터뜨리며 보비 찰턴이 보유했던 개인 최다 득점 기록(249골)을 뛰어넘었다.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등 수많은 우승 트로피도 수집했다. 그랬던 루니가 붉은색이 아닌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올드 트래퍼드를 방문했다.

루니가 선발 출전한 에버턴이 18일 새벽 0시(한국 시각) 영국 맨체스터에 위치한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2017·2018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맨유와 맞대결에서 0-4로 완패했다. 이로써 에버턴은 강등권 추락 직전인 17위를 유지했고, 맨유는 승점 13점을 획득하며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푸른 루니와 붉은 루카쿠

루니의 올드 트래퍼드 방문 못지않게 로멜루 루카쿠와 에버턴의 만남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루카쿠는 2013·2014시즌(임대)을 시작으로 무려 4시즌 동안 에버턴 유니폼을 입었다. 득점 기록도 루니가 맨유 유니폼을 입고 쌓아 올린 것 못지않다. 루카쿠는 리그 141경기를 뛰며 68골을 터뜨렸다. 지난 시즌에는 해리 케인과 리그 득점왕 경쟁을 벌이며 최정상급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우연찮게 유니폼을 갈아입은 루니와 루카쿠. 그들의 만남으로 이날 경기는 뜨거웠고, 세계 축구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두 남자의 맞대결은 객관적인 팀 전력에서 압도한 맨유의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맨유가 전반 3분 만에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환상적인 중거리포로 선제골을 뽑았다. 전반 25분에는 루카쿠가 기회를 잡았다. 마이클 킨의 패스 실수로 시작된 맨유의 빠른 역습이 루카쿠와 조단 픽포드 골키퍼의 일대일 기회로 이어졌고, 슈팅까지 연결됐다. 아쉽게도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루카쿠의 존재감을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루니도 가만있지 않았다. 전반 20분, 루니의 원터치 패스로 에버턴의 빠른 역습이 시작됐고, 쿠코 마르티나의 낮고 빠른 크로스를 루니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며 친정팀의 골문을 위협했다. 후반 1분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루니가 톰 데이비스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박스 안쪽에서 기회를 잡았고, 골문 바로 앞에서 슈팅을 시도했다. 그러나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의 슈퍼세이브가 루니의 슈팅을 가로막으며 아쉬움을 삼켰다.

루니는 13년간 동고동락한 동료들과 팬들 앞에서 최선을 다해 뛰었다. 저돌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전진을 멈추지 않았고, 골문 앞에서는 슈팅을 아끼지 않았다. 중앙선 아래 부근까지 내려와 팀 공격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었고, 좌우 측면과 중앙을 쉼 없이 오가며 득점 기회를 만들려 했다. 

그러나 에버턴은 득점에 실패했다. 우측 윙백 마르티나를 제외하면, 루니의 결정력을 돋보이게 해줄 조력자가 보이지 않았다. 루니의 뒤를 받친 데이비스와 질피 시구르드손은 이날도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루니가 공격 전개는 물론 득점까지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맨유 원정에서도 이어졌다.

루니는 후반 36분, 아쉬움 가득한 표정과 함께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그가 케빈 미랄라스와 교체되며 그라운드 밖으로 걸어 나오자 맨유 팬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상대팀이지만, '영웅'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에버턴에게 희망이 남아있던 0-1 스코어도 루니에 대한 예우였을까. 루니가 그라운드를 떠나자 맨유의 화력이 폭발했다. 후반 38분, 에버턴 중앙 수비수 애쉴리 윌리엄스가 결정적인 패스 실수를 범했고, 루카쿠의 발을 거친 볼이 헨리크 미키타리안의 슈팅으로 이어지며 추가골이 터졌다.

후반 43분과 추가 시간에도 잇달아 득점이 나왔다. 루카쿠가 골문 바로 앞에서 처리한 프리킥이 수비벽 맞고 흐른 것을 마티치가 잡아 슈팅으로 연결했다. 이것이 에버턴 수비수와 제시 린가드의 머리를 거쳐 루카쿠의 슈팅으로 이어지며 골망이 갈렸다. 친정팀과 첫 만남에서 1골 1도움. 유니폼을 갈아입은 두 남자의 맞대결은 루카쿠의 승리가 확실했다.

마무리는 교체 투입된 앤서니 마샬이 지었다. 에버턴의 코너킥 이후 진행된 맨유의 빠른 역습 상황에서 마샬이 박스 안쪽에 있던 수비수 2명 사이를 뚫어냈고, 3번째 수비수를 제치는 도중 핸드볼 반칙을 얻어내며 페널티킥을 만들었다. 이를 자신이 직접 득점으로 연결하면서, 4-0 완승을 마무리했다.

최선 다한 루니, 씁쓸함 가득했던 OT 방문기
 
루니는 최선을 다했지만, 양 팀의 전력 차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실제로 리그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맨유와 달리, 에버턴의 올 시즌 흐름은 너무나도 좋지 않다. 에버턴은 루니의 화려한 복귀골로 새 시즌 개막전에서 승리를 따냈지만, 이후에는 승리가 없다. 2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도 루니가 동점골을 터뜨리며 승점을 따냈지만, 거기까지였다.

루니가 개막전과 2라운드에서 기록한 2골 외에는 팀 득점이 없다. 유로파리그를 포함해 4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골도 넣지 못했고, 무려 12골을 실점했다. 이날처럼 루니를 제외한 공격 자원의 활약이 너무나도 저조하다. 2017 U-20 월드컵 우승 주역 도미닉 칼버트-르윈의 활약이 나쁘지 않지만, 주전으로 나서기에는 경험과 확신이 서질 않는다.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섰던 루니에게 어울리지 않는 흐름이다. 특히 이날은 올드 트래퍼드 방문이었던 만큼 아쉬움이 짙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든든했던 데 헤아가 야속하게 느껴지고, 8년여를 함께 보낸 발렌시아가 얄밉게 보였을 터다. 루카쿠의 합류로 불을 뿜는 화력, 마티치로 인해 단단해진 중원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씁쓸함의 감정이 밀려왔을지 모른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맨유 팬들은 루니를 잊지 않고 박수를 보냈지만, 그뿐이다. 그들은 팀이 터뜨린 4골과 승리에 환호했고, 슬픔은 패자인 루니와 에버턴만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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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VS에버턴 웨인 루니 로멜루 루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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