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 1998 SUNRISE INC.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작품이 1998년에 방영되었으니 올해를 기준으로 19년 전의 작품이다. 내년이면 벌써 20주년을 맞이하니 흔히 말하는 "고전"의 반열에 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그 애니메이션의 이름은 <카우보이 비밥>이다.

안타깝게도 애니메이션의 명성에 비해 감독의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카우보이 비밥> 이후로 크게 히트한 작품이 나오지 않아서인 듯하다. 물론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과 작품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달리 보아야 하지만, 당시의 제작사 선라이즈가 여전히 잘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선라이즈는 건담 시리즈, 이누야샤, 러브 라이브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히트작을 만들어낸 회사다. 이후 비밥의 제작진들이 퇴사해 설립한 회사 본즈는 액션의 명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의 후기작들이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단지 비밥이 너무 잘 만들어져 그 명성의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 트릴로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워쇼스키 역시 <매트릭스>(1999) 이후로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으니 말이다. (여담으로,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은 매트릭스의 중간 부분 이야기를 담은 <애니 매트릭스>(2003)에서 꼬마 이야기와 탐정 이야기라는 단편을 선보이기도 했다. 워쇼스키 자매와 함께!)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작품 철학에 관한 일화가 있는데, 그가 2004년에 감독을 맡은 <사무라이 참프루>의 제작이 끝나고 작품 활동을 접은 적이 있다. 이유는 "오타쿠 애니만을 만드는 업계에 신물이 나서"였다. 그 후 오랫동안 타 작품들의 연출과 음악 프로듀싱을 담당했다. 그리고 8년 만에 감독으로 돌아온 작품 역시 재즈가 주가 된 <언덕길의 아폴론>이라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으로써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고와 음악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카우보이 비밥>의 각 화의 제목을 세션으로 표기하는 것과 제목에 음악 용어를 하나씩 넣는 것 또한 감독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각별한지 보여준다. 일단 제목부터가 비밥이다.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전체적으로 재즈와 블루스 같은 흑인 음악과, 역동적이면서도 가벼운 느낌의 액션이 주된 작품들이 많다. 예를 들면 그의 대표작 <카우보이 비밥>(1998)에서 <사무라이 참프루>(2004) 그리고 최근작 <잔향의 테러>(2014)가 그렇다. 다만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예외적으로 액션이 첨가되지 않은 작품이 있기도 하다. <언덕길의 아폴론, 2012>이 그것인데, 60년대를 바탕으로 한 학교 청춘물이니 여태까지 하드보일드나 느와르와 같은 액션을 주로 선보이던 것과는 이질감이 있다. 물론 재즈를 연주하는 청춘들의 이야기이니 결국은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성향에서 벗어났다고는 볼 수 없다. 신이치로 감독이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기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삽입곡들의 OST는 얼마나 완성도가 높은지 여러 매체에서 가져다 쓸 정도이다. 비밥의 오프닝 곡이 대표적이다.

비밥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 1998 SUNRISE INC.


비밥의 장르는 얘매하다. 서부극이 되기도 하고, 느와르가 되기도 하며, 코믹한 유머가 돋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고요한 재즈가 흐르는 공허한 우주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뭐라고 콕 짚어 말하기 애매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일반적인 작품의 구성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작품 자체가 하나의 장르이며 반대로 말하면 정통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작품의 혼합성은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작품의 주제의식이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취해야 할 미래와 과거의 자세"이고, 이에 따라 여러 사연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스파이크는 작품의 주인공이다. 동시에 작품의 주된 주제의식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주제의식은 그의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과거에 "레드 드래곤"이라는 조직에 몸을 담고 있던 스파이크는 자신의 가장 친한 동료였던 "비셔스"의 연인 "줄리아"와 사랑에 빠져 조직을 탈퇴하게 되고, 비셔스와는 견원지간이 된다.

자세히 보면 스파이크의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른데, 이를 설명하는 인물의 대사가 있다. 과거에 부상을 입고 오른쪽 눈을 이식받았는데, 그때를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과거를 오른쪽으로는 현재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이를 반영하듯 스파이크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왼쪽 눈이 클로즈업되고, 총기 또한 오른손으로만 사용하게 된다. (반대로 비셔스는 총기를 쓰던 것과는 달리 검을 휘두르게 된다)

그가 하는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난 단지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이야." 그의 대사처럼 그의 의식은 과거에 갇혀 있다. 그래서인지 작중에서 내내 현실감각이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스파이크의 의식이 말끔하게 돌아오는 때는 과거의 기억이 연상될 때뿐이다. 줄리아라는 이름을 들을 때라던가, 그녀를 연상시키는 꽃송이를 볼 때라던가. 결국, 스파이크는 과거에 사는 인물이다. 다른 인물들이 분재, 부모, 돈 이런 것에 집착하는 것과는 달리 스파이크 본인은 매우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과거에 묶여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현상금 사냥꾼인 "카우보이"의 스파이크가 사실은 현상금 대신 과거를 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현실감각이 없는 스파이크를 보조하는 인물이 "제트"이다. 제트는 전직 경찰인데, 믿었던 동료에게서 배신당하고 경찰을 그만두었다. 제트의 왼쪽 팔은 이 과정에서 잃은 것이다. 팔을 새로 이식받을 수 있음에도 굳이 기계 팔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의 일환처럼 보인다. 과거를 받아들이지 않고 꿈을 꾸는 것처럼 방랑하는 스파이크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스파이크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 "페이 발렌타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파이크가 과거에 사는 인물이라면 페이는 현재를 사는 인물이다. 불치병으로 냉동인간이 되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깨어났는데, 치료의 부작용으로 과거의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페이는 작중에서 내내 자신의 과거를 찾아 헤멘다. 그리고 결말부에서 과거를 모두 알게 되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냉동되기 전에 동급생이었던 친구는 이미 할머니가 되어있었고, 자신이 살았던 집은 이미 폐허로 변해 있었다. 이 부분은 밑에서 다시 설명해야 할 듯하다. 스파이크와 더불어 작품의 주제의식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미국 애니메이션 <퓨처라마>의 프라이를 떠올리게 한다)

비밥호에 함께 있다 중반부에 아버지를 찾아 나가게 되는 어린 소녀 "에드"는 페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지닌 것 같다. (스파이크와는 다르다.) 에드는 아버지의 실수로 7년 동안 사실상의 고아 상태로 지니게 되는데, 그럼에도 아무런 고민과 상념없이 비밥호에서 생활한다. 결국에는 아버지를 찾아 비밥호를 떠나게 되지만 말이다. 에드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그 모습이 부모님에 대한 단서를 찾아간 "과거의 집"에서 슬프게 우는 페이의 모습과 대비된다. 에드는 지나간 과거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아버지를 다시 만난 현재에만 집중해 환하게 웃었고, 페이는 이미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과거로 사라져버렸음을 알고서도 계속해서 과거를 쫓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작품에 특징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한가지라고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액션"은 "음악"과는 떼려야 땔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음악 위에 모든 액션이 상존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비밥의 1화에서 가게 앞에서 격투하는 장면이 있다. 허공에 울리는 총성과 함께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은 등장인물들의 싸움을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재즈의 리듬을 따라 피하고 내지르는 주먹이나, 간간히 비추는 두 인물의 발, 합을 맞추는 남녀의 댄스처럼 보이는 추격의 동선이 그렇다.

부가적으로 덧붙이자면, 신이치로 감독의 액션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일반적인 액션 장면처럼 두 인물을 따라 카메라를 비추거나 멀리서 화면을 잡아 전체적인 전투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카메라 앞으로 바로 큰 사물을 들이대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인물의 발이 뻗어지는 것을 카메라 앞으로 오는 형식으로 촬영해 눈앞에 부딪힐 것처럼 보이는 카메라 액션이다. 또한, 인물과 인물 간의 액션 장면에서는 액션의 리듬을 따라서 카메라가 함께 세밀하게 흔들리는 듯한 효과를 준다. 마치 관객 자신이 등장인물이 되어 전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른바 "영화적 연출"이다. 실사 영화와 같은 연출 기법을 적용하여 애니메이션 특유의 이질감을 최소화한다. 이러한 연출 기법은 아마 <공각기동대>(1995)에서 많이 차용한듯 하다.

물리적인 차단을 음악으로써 잇는 연출 또한 돋보인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추격하는 쪽과 추격당하는 쪽은 물리적으로 차단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우주를 활공하는 만큼 기체는 외부와 폐쇄되어있고, 기체와 기체 사이의 거리가 멀 것이 아닌가? 재즈의 마법은 이 거리감에서 시작된다. 소통되지 않는 두 인물, 추격자와 추격되는 자 사이의 액션은 긴박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재즈의 유대감에서 이루어진다.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재즈의 리듬이 반복되는 재즈의 인용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예를 들면 우주로 나가는 기체의 추격 장면에서는 고요하고 늘어진 리듬의 재즈를, 긴박한 거리의 자동차 추격 신에서는 빠르고 흥겨운 리듬의 재즈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비밥 이후로의 작품들에서도 여러 좋은 음악들이 사운드 트랙으로 있지만, 유독 비밥이 가장 유명한 것은 이런 특징 때문이다. 음악성도 훌륭하지만, 그 훌륭함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우주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다른 장소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보다 훨씬 마음속에 와닿는 무언가가 있다. 그게 우리에게 보이는 우주의 넓고 공허한 검은 화면 때문인지, 혹은 차가운 행성의 메아리가 울려 퍼질 것만 같은 이미지 때문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주와 음악은 매우 잘 어울린다. 나는 그 이유가 우주의 공허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텅 빈 방에 갑자기 침대가 들어왔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일상은 공허하지 않다.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당연히 소음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의 경적소리, 지나가던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심지어 조용하다고 느껴도 결국은 소음이 있기 마련이다. 20데시벨 정도가 우리가 느끼는 조용한 정도라고 하고, 0데시벨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미쳐간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공허는 없다. 특수한 목적으로 만든 무음실이 아니면 모를까. 하지만 이러한 무음이 일상인 장소가 있다. 바다, 그리고 우주다. 바다와 우주는 둘 다 넓고 광대하며 미지의 무언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리고 공허하기도 하다. 이러한 공허함은 어떠한 음악을 가져다 써도 그것을 아름답게 만든다. 무에서 유가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본디 없던 것에서 무언가 있게 된다면 그것이 유난히 튈 것은 당연하다.

여러 영화에서 이러한 음악적 효과를 적용한다. 최근의 영화들로 예를 들자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에서처럼 모든 소리를 죽이고 스크린에 영상만을 비추다가, 그 위로 순수한 음악만을 흘려보내 감정의 폭발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이다. 혹은 <라 붐>(1980)에서 소피 마르소처럼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낭만적으로 표현하거나. 그중에서도 비밥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느끼는 것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카우보이 비밥은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의 유사성, 여러 캐릭터로 구성된 하나의 팀, 음악이 주가 된 연출이 비슷하다. 비밥이 1998년에 사용했던 "심각한 상황을 풀어 헤쳐 나가는 유머와 캐릭터에 사연을 부여하고 그 목적성이 하나 되어 유사 가족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2014년에도 여전히 먹혀들어 가는 것을 보면 시대를 뛰어넘는 B의 흥행 코드는 존재하는 것 같다. 

비밥의 주요 장면에 대하여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 1998 SUNRISE INC.


위에서 잠깐 언급한 1화 후반부의 액션 장면 말고도 인상 깊게 느껴지는 여러 장면이 있다. 그러나 작품을 전체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단 하나의 장면이면 충분하다. 5화의 후반 부분에 'Rain'이라는 삽입곡과 함께 시작되는 액션 장면이 있다. 이 장면 하나로 작품의 시작부터 완결까지 전부 설명할 수 있다. 편집이나 OST의 활용, 연출에서 가히 작품의 정수라고 불릴 만 하다. 

비셔스와의 전투 후에 창밖으로 떨어지며 스파이크의 회상이 시작된다. 떨어지기 전에 안으로 던져넣는 수류탄은 그 구도가 마치 아래에서 위로 던지는 듯하고, 반대로 그것을 던진 스파이크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이어서 카메라는 스파이크의 시점 쇼트로 전환되며 자신과 함께 낙하하는 깨어진 유리 조각을 비추는데, 그다음 장면이 스파이크의 "과거를 보는 왼쪽 눈"이다. 감탄스러운 것은 이후의 회상장면이 복합적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떨어지는 스파이크가 회상하고, 그 회상은 다시 대과거와 소과거를 교차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설명에 있어 상당히 난해한 점이 있으니 양해 바란다. 앞으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유리의 파편 시점과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스파이크의 시점을 묶어서 A라고 칭하겠다. 그리고 이것이 첫 번째 A다.

회상의 가장 첫 장면은 얼굴이 커튼에 가려진 한 여성의 실루엣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스파이크의 왼쪽 눈이 비치고, 그 다음 장면이 집 안의 모습인 것으로 보아 실루엣의 여성은 아마 서로 친한 사이였던 것처럼 보인다. 장면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하늘에서부터 낙하하는 조각과 스파이크가 떨어지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서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 장미꽃다발을 들고 어딘가로 향하는 스파이크의 모습이 비쳐 보인다.

이후 순간의 쇼트들은 각각 꽃다발 속에 숨긴 총구의 발포, 쓰러지는 조직원들, 스파이크의 왼쪽 눈 그리고 낙하하는 유리 조각을 비춘다. 다음 장면에는 아까 바닥에 고여있던 물웅덩이에 장미꽃 한 송이가 있다. 이어서 무색의 조각과 장미꽃이 꽂힌 물병, 그리고 아래에 엎질러진 빨간 액체를 쇼트로 보여준다. 스파이크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A의 구성을 생각해보면 위의 두 쇼트는 이어지는 하나의 쇼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두 번째 A다.

꽃다발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가족이라던가 연인한테 말이다. 그런 꽃다발을 들고 조직에 대항하는 스파이크의 모습은 조직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실루엣의 여성이 연인인지 가족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의 집안에 놓인 오브제들(무색의 조각과 장미꽃이 꽃힌 물병)을 볼 때 스파이크와 관계가 있는 누군가임에는 분명하다.

바닥에 엎질러진 빨간 액체와 무색의 조각은, 마치 무색을 그 액체로 빨간색으로 물들여놓을 것만 같으며, 이것은 옆의 빨간 장미꽃의 이미지와 대비되어 자신을 사랑으로 물들인 여성임을 암시한다. (덧붙여서, 그 빨간 액체는 1화부터 언급되는 마약 "레드아이"이다. 작품이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레드 아이"가 태양계에서 유명한 범죄 조직 "레드 드래곤"에서 유통하는 것을 중간중간에 언급하고, 이런 마약이 그 여인의 집에 있다는 것은 여인이 범죄 조직과 연관된 누군가라는 사실에 대한 언급이다. 결국, 스파이크의 과거와 더불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암묵적인 암시가 된다)

다음 장면에서는 쓰러지는 조직원과 그를 향해 발포하는 스파이크의 모습, 그리고 스파이크를 향한 총기의 발포를 보여준다. 이어서 낙하하는 유리 파편이 보인다. 스파이크의 눈이 클로즈업된다. 다음은 성당의 내부를 보여주는데, 거대한 십자가를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듯한 구도다. 다음은 아까 물웅덩이로만 보이던 비가 내리는 도시의 마천루를 위에서 아래로 보여주며, 창가에서 찢어진 종잇조각을 뿌리는 손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다시 카메라는 아까의 마천루 장면을 반복한다. 이어지는 장면은 조금 전에 클로즈업된 손이 맨 처음 장면에서 실루엣으로 보이던 여성의 손이라는 것을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구도로 전체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는 도시의 아래쪽을 위에서 아래로 비추며 다시 시점은 조금 전의 창문의 여성이 뿌리는 종잇조각이 흩뿌려 내려오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다시 스파이크의 눈이다. 그리고 낙하하는 유리 파편이 보인다.

이번에는 떨어지는 유리 파편과 스파이크의 모습이 교차하지 않고 떨어지는 유리 파편의 모습이 2번 반복된다. 마천루의 모습 또한 같은 장면이 2번 반복되므로 이것은 떨어지고 상승하는 시간의 유기적인 흐름이 아닌, 과거 속에 있는 또 다른 과거인 소과거의 전제를 뜻한다. 이 장면을 본 우리는 이제 가장 처음에 얼굴이 반쯤 가려져 실루엣으로 나오는 여인이 종잇조각을 흩뿌린다는 사실을 안다. 후반의 장면이 앞부분의 빈 부분을 채운 것이다.

이 종이 파편이 떨어지는 장면은 그 느낌만으로도 유리 파편의 하얀 질감과 굉장히 유사한데, 두 장면이 붙어있으니 느낌이 더욱 비슷하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의도된 것인데, 우리는 스파이크가 떨어지는 현재의 시점에 보이는 유리 파편이 마치 여인이 뿌리던 하얀 종이 파편처럼 보이고, 그로 인해 스파이크가 비셔스와의 전투 후에 이렇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 그 여인이 뿌린(여인으로 인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위의 두 번째 A에서 나타난 여성과 스파이크의 깊은 관계를 뒷받침하고, 스파이크와 비셔스 사이에 이 여인으로 인해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또한, 여인이 종이조각을 흩뿌리고 있는 과거의 시점(이미 깊은 사이인)이 조직원과의 전투를 촉발하게 된 과거의 시점(여인으로 인해 전투하게 된)보다 전에 있다는 소과거로의 위치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깊은 사이에 빠져 조직과 전투를 하게 되었다는 점을 다시 설명한다. 상당히 복잡한 연출이다. (덧붙여서, 십자가의 묘사로 과거에도 현재 시점처럼 성당에서의 전투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이것은 현재와 대비된다. 유리 파편과 종잇조각이 겹쳐지는 것처럼 말이다. 밑에서 다시 설명함)

이번에는 스파이크와 비셔스가 등을 맞대고 전투를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다시 떨어지는 스파이크의 모습이 보이고, 등 돌린 스파이크와 한 여인, 그 여인이 뒤를 돌아보며 그다음 장면에 바닥에 고여있는 물웅덩이에 놓인 꽃 한 송이를 클로즈업한다. 이로써 스파이크가 추락하는 계기가 그 여성임을, 그 여성이 가장 친한 동료였고 지금은 적이 된 "비셔스"의 연인 "줄리아"라는 점을, 바닥에 떨어진 꽃송이로 그녀와 스파이크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확정 짓는다. 이것이 세 번째 A다.

이어서 스파이크의 눈을 비추고, 담배를 버리는 스파이크의 실루엣, 머리에 총구가 놓인 여성의 실루엣,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와 스파이크의 신발, 꽃다발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스파이크의 모습을 아래에서 위로 보여준다. 다시 떨어지는 스파이크의 모습을 보여주고, 위에서 스파이크를 향해 발포하던 조직원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면에서 발사되는 총기, 다른 여인과 잠자리에 든 침대에서 일어나 있는 비셔스의 모습, 그리고 다시 스파이크의 눈을 비춘다. 배에 총을 맞은 놀란 표정, 복부, 발포하는 총구, 떨어지는 유리 파편을 교차한다.

그리고 성당의 유리창을 배경으로 수류탄의 안전장치를 제거하는 스파이크의 손, 피를 흘리며 웃는 표정을 입 부분에서 허리의 중반까지만, 다시 웅덩이에 놓인 꽃송이를, 스파이크의 눈과 아까 던진 수류탄이 폭파되어 유리창 밖으로 화염이 솟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주 짧게 떨어지는 장면이 이어졌다가 다시 폭발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그다음 장면에서는 부상을 입고 휘청이는 스파이크의 시점 쇼트를 보여주고 자신을 발견하는 줄리아의 모습과 쓰러지는 자신의 모습을 비춘다.

화면이 암전되었다가 돌아온 화면에는 누워있는 스파이크의 시점으로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줄리아의 모습이 보이며, 전신에 붕대가 감긴 자신의 모습을 한번, 자신을 바라보는 줄리아의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한번, 이어지는 화면은 잠깐 암전되었다가 현재 자신의 우주선의 천장을 보여주고, 아까와 동일하게 전신에 붕대가 감긴 자신의 모습을 한번, 그리고 줄리아가 아닌 페이 발렌타인의 모습을 줄리아와 같은 구도로 보여준다.

다른 여인을 품은 잠자리에서 홀로 깨어 일어나 있는 비셔스의 모습은, 비셔스가 지금은 스파이크의 연인이 되어버린 줄리아를 잊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과거 시점의 전투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현재 시점을 겹쳐 떠올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 성당에서 창문 밖으로 떨어지며 수류탄을 던진다는 점이 그렇다. 과거와 현재의 부상의 정도와 부상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처음으로 보이는 인물의 구도 또한 비슷하다. 스파이크는 현재의 페이에게서 과거 줄리아의 모습을 겹쳐 떠올리는 것이다. 작품의 결말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이것이 네 번째 A다.

이 낙하 시퀀스가 어려운 이유는 시점과 시점을 이리저리 꼬아놨기 때문이다. 대과거 속의 소과거의 이미지가 서로 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마치 <메멘토>(2000)처럼 말이다. (사실 메멘토보다 더 어렵다. 그나마 5분도 되지 않아 다행이다. 메멘토는 2시간이니)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스파이크의 눈 쇼트는 시점이 변화되는 일종의 분기점과 같은 역할을 한다. 특정 과거에서 특정 과거로의 전환점이다. 이 연출이 대단한 점은 섣불리 장면을 섞는다면 그저 엉망진창일 뿐이지만, 유기적이지 않은 여러 장면들을 섞어 순차적으로 넘어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퀀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미리 A라는 구분점을 지어놓았다. 총 네 가지의 A로 구분된 과거의 시점들이 포커를 셔플하듯 섞여 있다. 첫 번째는 대과거로, 비셔스와 스파이크의 우정부터 줄리아와 사랑에 빠지는 스파이크의 모습이다. 두 번째는 스파이크와 연인이 된 줄리아가 집에서 비셔스로부터 협박을 당하는 장면이며, 세 번째는 조직과의 싸움에서 상처를 입고 줄리아에게 향하는 장면이고, 네 번째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줄리아를 기다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들 사이의 빈 부분은 각화의 부분부분에서 채워진다. 줄리아를 상징하는 붉은 장미꽃이 작품 곳곳에서 쇼트로 삽입되어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 1998 SUNRISE INC.


옴니버스 형식이기에 그 조각이 더욱 파편화되어있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파편화는 관객들에게 앞으로의 이야기 진행을 미리 알려주고, 또한 빈 부분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일종의 서스펜스다.)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흥미)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위험성도 있다. 옛날에는 이런 연출이 작품의 결말을 미리 알려주어 관객이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고 비난했다. 연출 기법들이 많이 연구되고 발전한 지금도 위험성은 있다.

그러나 영화와 같이 하나의 긴 러닝타임을 가진 작품에서의 파편화는 자칫하면 이야기의 분쇄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애니메이션의 옴니버스 형식은 이미 이야기가 분쇄되어 있고, 그 이야기가 뭉쳐져 하나가 되기 때문에 그 부담이 덜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밥은 이미지의 파편화에 성공했다.

이 장면을 제외하고도,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이 놀란 감독의 <메멘토>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두 작품의 남자 주인공이 과거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진행 과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이야기의 서사구조는 현재에서 미래로 진행된다. 혹은 과거에 갇힌 인물이 현재를 찾아가거나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메멘토와 카우보이 비밥의 서사는 특이하게도 미래가 과거를 쫓는다. 이를테면 메멘토에서의 "셸비"는 과거의 한 사건을 기점으로 사건 이후로의 기억을 계속해서 잃는 인물인데(선행성 기억상실증), 몸에 있는 문신과 다른 단서들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해간다. 이것이 타인에게는 과거에 갇힌 셸비가 현재의 자신을 찾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셸비 본인에게는 지금 반복되는 매 순간이 현재고, 미래의 내가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지에 대한 탐구인 것이다. 즉, 우리가 타인의 관점에서 셸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때 사실은 셸비가 미래를 취함으로써 과거를 얻고자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파이크 또한 셸비처럼 "기억을 잃은 것과 같은 유사 망각"의 상태에 있다. 스파이크의 현실은 과거에 있었던 "연인의 실종" 이후로 그때 당시에 계속해서 머물게 되는데, 이것은 셸비의 선행성 기억상실증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스파이크 또한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상태로 현재에 머물고 있고, 과거의 기억 자체를 미래의 목표로 치환하며 계속해서 미래를 좇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이유로 스파이크의 과거에 갇힌 기억은 미래가 과거를 쫓는 형국이 된다. 그래서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줄리아가 죽고 적진에 돌진하는 비밥의 모습이 이해가 간다. 스파이크에게 줄리아는 과거이자 미래였고, 과거와 미래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스파이크에게는 오로지 현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것이 잘 드러나는 대사가 있다.

성당에서 비셔스가 스파이크를 유리창 밖으로 던지기 전에 스파이크가 하는 "난 단지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이야."라는 대사는, 후반부에 "죽을 것을 알면서도" 전투를 하러 가는 스파이크를 말리는 페이에게 스파이크가 하는 대사와 정반대가 된다.

스파이크가 "깨어나지 않는 꿈을 꿀 작정이었는데, 어느새 그만 깨고 말았어…"라고 말하고, 이에 페이가 "기억이 돌아왔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파이크가 말한다.

"죽으러 가는 게 아니야. 내가 정말 살아있는지 어떤지 확인하러 가는 거야…."

작품 내내 무언가에 사로잡힌 것처럼 멍하고 무기력하던 스파이크의 태도는 이 대사를 통해 완결된다. 스파이크에게 있어 현실은 조직에 몸을 담고 있던 그 시절의 것이었는데, 줄리아를 만나고서부터 평소에는 생각도 못 했던 꿈만 같던 일들, 이를테면 조직을 배신하고 어딘가로 도망가서 함께 살자고 약속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줄리아는 스파이크와 길이 엇갈려 서로 도주한 상태로 만나지 못하게 된다.

서로 약속을 한 상태에서 사이가 나빠져 헤어지거나, 혹은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거나 하는 형태의 "완결"을 보지 못하고 줄리아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으니 스파이크는 계속해서 꿈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오래도록 꿈속에 있었기에 꿈이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상태다. 이른바 가사(유사 죽음)의 상태이다. 꿈속에서 살던 스파이크의 이야기가 "카우보이 비밥"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이 추구하던 줄리아(꿈)의 가치가 깨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멍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설명하자면, 꿈을 꾸고 있었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꿈에서 깨어버린 상태다. 그래서 스파이크는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줄리아의 죽음으로 그에 대한 복수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 과연 현실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반대로 페이의 대사는 스파이크의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페이는 과거에서 온 냉동인간인 상태로 혼란을 겪었고, 작중에서 과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기억이 돌아온 상태에서도 떠오른 과거를 믿지 못하고 굳이 폐허가 된 집터로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이 알던 모든 것은 이미 사라져 버린 게 확실함에도 말이다.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 1998 SUNRISE INC.


완결을 보고 나면, 이제 우리는 작품 내내 보기 불편할 정도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그녀의 모습이 자아를 찾기 위한 방랑이었다는 것을 안다. 스파이크가 현재를 사는 의미를 잃고 무기력하게 있었다면, 페이는 과거를 사는 의미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활발하게 움직인 것이다. 그러나 결말부에 스파이크를 과거에 묶어두던 "줄리아"라는 존재가 사라지자 그가 앞으로 나아간 것과는 달리, 페이를 과거에 묶어두던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사라지자 그녀는 방향을 잃고 제자리에 주저앉게 된다. 두 인물 모두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 제1의 목표가 사라졌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애타게 쫓던 것이 신기루처럼 증발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선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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