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전 2002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14일 낮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 전 2002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14일 낮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4일 오후에는 양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검색어가 있었다. 바로 '히딩크 기자회견'이다.

신태용 감독 신뢰 결정 이후 잠잠했던 히딩크 감독의 복귀논란은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진 긴급 기자회견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게다가 이 날 오전부터 조중연 전 회장과 이회택 등 축구협회 간부들의 비리 논란으로 떠들썩했던 대한축구협회는 히딩크 감독의 기자회견과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접촉 사실을 부정하며, 히딩크 감독 측의 의견과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채 하루가 되지 않아 김호곤 위원장이 먼저 의견을 전달 받은 것에 대해 인정하며 김 위원장을 비롯해 축구협회에 대한 질타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런 대한축구협회의 자책골에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지금 이 글에서는 그 문제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불신의 아이콘' 되어버린 대한축구협회

가장 먼저 문제의 시발점은 대한축구협회다. 히딩크 감독의 기자회견이 있던 날 같이 터진 이슈는 조중연 전 회장 등 대한축구협회 간부들의 비리였다. 기사가 터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그러면 그렇지'였다. 이 반응만으로도 대한축구협회가 국민들에게 어떤 이미지인지를 알 수 있다.

협회의 이미지는 '부정부패하고 신뢰할 수 없는 단체'다. 적어도 지금 국민들이 생각하는 모습은 그렇다. 하지만 협회 자체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이미 협회는 일반 국민들과 축구팬과의 소통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 국민과 축구팬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월드컵 본선진출 기념 파티를 열 계획을 했던 일과 우즈벡전이 끝난 이후 헹가레 등의 모습이다. 협회는 기쁘고 즐거울 수 있다.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는 팀들만 이뤄낸 업적이고, 축구협회 재정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답답한 경기력을 보는 국민과 축구팬은 흔히 말해 '1'도 즐겁지 않았다. 기분 나쁜 사람 앞에서 축제를 벌이는 일은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불신의 아이콘인 협회가 결정하는 일에 의심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협회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모두 믿음직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종예선 중국 원정 이후 슈틸리케 감독이 불안한 경기력을 보임에도 경기력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유임했지만 결과는 카타르전까지 패배한 후 경질되었다. 슈틸리케 감독 경질만 이런 일이었을까? 2014년에는 브라질 월드컵을 아무 성과 없이 마치고, 오히려 국민 분노만 들끓게 한 홍명보 감독을 유임시키는 결정을 했다가 술자리 논란이 생기자 급하게 경질한 일도 있다.

이런 어이없고 멍청한 사건은 훨씬 더 많다.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니 국민들과 축구팬이 믿음을 주려 해도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의 복귀 논란이 생겼고, 축구협회는 또 이해가 되지 않는 변명만 하다가 사태를 키웠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키우기만 하는 협회를 국민과 축구팬이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왜 신태용을 '자리에서 비키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가

축구협회 자책골의 1번 피해자가 국민과 축구팬이라면, 2번 피해자는 신태용 감독이다. 최근 최종예선에서 이란과 우즈벡과 비기며, 대표팀에서 여러 선수들이 질타를 받았다. 신태용 감독 역시 이들과 비슷하게 혹은 더 많이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경기와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가 최근에는 더 많다.

히딩크 감독이 와야 내년 월드컵에 답이 생기는데 신태용 감독을 '그 자리에서 비키지 않는 사람'처럼 매도하는 비난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근 유행하는 VR게임처럼 가상현실을 적용시켜주고 싶다.

당신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회사에 대한 애정도 아주 크다. 그런데 회사에 갑작스레 중요인원들이 빠지면서 공백이 생겼다. 임원진에서는 당신을 그 역할에 대신 투입했다. 평소 회사에 대한 애정이 큰 당신은 당연히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고, 최고의 성과는 아니지만 큰 불은 끄면서 주위의 칭찬도 들었다.

문제가 또 생겼다. 회사가 부도 위기까지 몰렸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다른 사람을 찾아봤는데 아무도 이 불을 끄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회사는 당신에게 부탁했고, 당신은 회사를 위해 다시 한 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당신은 손해를 조금 남겼지만 회사의 부도를 막았다. 부도를 막기 위해 투입할 때부터 회사는 당신에게 회사의 부도를 막는다면 그 자리에서 안정적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이끌 권한을 주겠다고 약속한 상태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회사가 부도위기로 휘청거리기 전 부도를 막는다면 입사를 원한다던 대기업의 능력있는 사람이 당신의 자리에 이제 본인이 와서 회사를 발전시키겠다고 나타났다. 당신은 당연히 회사가 당신에게 신뢰를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회사가 당신에게 회사의 발전을 위해 당신이 비키고 대기업의 그 사원을 앉혀야 하지 않겠냐며 당신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과연 당신은 회사에 한마디 없이 해고를 받아들일 것인가?

 5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신태용 감독이 물을 마시고 있다.

5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신태용 감독이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을 내쫓고 히딩크 감독을 모셔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 번만 자신의 상황이라 가정하고 말했으면 좋겠다. 축구가 스포츠인 것은 맞지만 축구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직장이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당신의 회사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당신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킬 것인가?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히딩크 감독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신태용 감독이 2번 피해자라면 히딩크 감독은 3번 피해자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에 애정이 있는 감독이다. 본인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축구에서 소수인 여자축구나 장애인축구에도 투자를 하고 있고, 장애인을 위한 경기장을 만드는 등 한국 축구인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만큼 자신과 함께 월드컵에서 성공을 이룬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고 한국 축구가 더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히딩크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한국 축구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하고 싶다는 발언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히딩크 감독의 이런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협회를 가지지 못했다.

협회는 최종예선이 끝난 이후 불거진 히딩크 감독의 복귀 논란 때부터 히딩크 감독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연봉을 맞출 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핑계로 넘어가려 했고, 히딩크 감독 측이 연봉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자, 갑작스레 어떤 협상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답한 태도만 유지했다. 그러는 사이에 일은 사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넘어가기식' 대처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결국 그런 안일한 대응이 히딩크 감독의 기자회견을 만들었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였지만 협회는 닫힌 사고로 접촉도 하지 않으려 했다.

물론 히딩크 감독이 감독직을 원한다면 협회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될 수 있다. 신태용 감독과 본선까지 계약기간을 정했는데 이를 바로 뒤집어 버리기에는 협회 입장에서도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를 돕기 위해 일을 하고 싶다는데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는 것은 신태용 감독에 대한 신뢰와 별도로 히딩크 감독에 대한 실례다. 만약 히딩크 감독이 오로지 원하는 것이 감독이라면 이야기를 나누고, 신태용 감독에 대한 신뢰를 통해 거절할 수 있다.

물론 히딩크 감독 대신 신태용 감독을 선택한 것에 대한 질타가 나올 수 있겠지만 신태용 감독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경기력으로 월드컵을 치른다면 해결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이 원하는 것이 반드시 감독직이 아니라면 히딩크 감독과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축구에 발전을 가지고 올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의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협회는 정확한 히딩크 감독의 의사도 듣지 않고, 연봉을 맞출 수 없다거나 협상은 없다는 태도만 취하고 있다. 그럴 때가 아니다. 적어도 히딩크 감독과 대화를 통해 무엇을 원하고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같이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해야 한다. 그게 대한축구협회 스스로가 정한 축구인 헌장 6조에 있는 '축구의 발전과 권익을 위해 노력한다'에 부합하는 일이다.

신태용도, 히딩크도 믿지 못하게 한 장본인은 협회다

결국 문제가 이렇게 커지게 된 것은 다 협회의 대처에 있다. 히딩크 감독 복귀는 전적으로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논란을 만든 것과 다름이 없다. 본인은 기술위원장 취임 전에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내용을 인지했다고 주장(6월 19일 메시지 도착)하지만, 김 위원장이 취임한 것은 한 달 뒤도 아니고 일주일 뒤(6월 26일)였다. 물론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이 사퇴한 시점이 6월 15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일 뒤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후보군에는 이미 김 위원장의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의 사퇴와 함께 다음 기술위원장을 인선하는 것은 축구협회의 당면 과제였기 때문이다. 기술위원장 후보군에 있었으면서 자신이 선임되기 전의 문제라고 빠져나가려는 태도는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넘어가려는 생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김 위원장은 처음에는 히딩크 감독의 복귀논란에 대해 "기가 찬다. 들은 적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가 차는 건 김 위원장이 아니라 국민과 축구팬이다.

무엇보다 이 사태가 불쾌한 것은 다름 아닌 기술위원회의 위원장이 논란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기술위원회는 대한축구협회 이사회의 산하기관이다. 주역할은 대표팀에 대한 관리와 지원이다. 그런데 이런 위원회의 위원장이 대표팀을 지원하는 방식이 이런 것인가? 대표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히딩크 감독과의 대화는 닫아버리고, 이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은 물론이고, 신태용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선임과 관련된 화살을 대표로 맞고 있다.

이미 인지하고 있는 내용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변명하는 것이 대표팀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일인지는 김호곤 위원장이 깊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적어도 지원이라는 단어는 도움을 줄 때 쓰는 단어다. 물론 히딩크 감독의 의견이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라는 점은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의 의지가 서면으로 이루어지고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전해졌다면 감독직이나 대표팀에 도움이 될만한 일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관심이 사실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지도 않은 것은 김호곤 위원장이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대로라면 러시아월드컵에서 누구도 웃지 못한다

히딩크 감독의 복귀 논란이 커지는 이유는 하나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좋은 경기력으로 내년에 있을 월드컵을 잘 치르길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이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론이 생기고 이를 반박하는 이들도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문제는 협회가 일으키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대표팀 감독 한 명이 모두 진다면 러시아월드컵에서 누구도 웃지 못하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미 신태용 감독은 화살을 맞고 있다. 국민이 100% 신뢰를 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 위기를 극복했지만 이에 대한 칭찬보다는 경기력 외에 불필요한 비난을 더 많이 받고 있다.

그렇다면 히딩크 감독은 다를까? 그렇지 않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를 돕고자 하는 마음에 나섰지만 새치기를 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진심은 사라지고 이득만 챙기려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정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대로 내년 월드컵까지 간다면 '누구도 웃지 못하는 월드컵이 다시 한 번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신태용 감독은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히딩크 감독의 그림자에 갇힐 것이고, 성적이 나쁘다면 지난 월드컵과 같이 축구인생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것이다. 적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협회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히딩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신태용 감독에 대해 신뢰한다면 감독직으로 영입할 수 없더라도 히딩크 감독이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한축구협회는 본인들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고 남에게 미루기 바빴다. 듣기 싫은 소리는 듣지 않으려 귀를 닫았다. 이런 태도가 계속 된다면 변화는 없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 하지 말고 화살을 직접 맞아야 한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바른 소리라면 귀 기울여야 한다. 신태용 감독과 히딩크 감독에 대한 국민들의 100% 신뢰를 만들지 못한 것은 협회의 책임이다.

문제를 일으켰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이상 2018년의 6월에 누구도 웃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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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 easteminence의 잔디에서 관중석까지에도 연재 되었습니다.
히딩크 신태용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히딩크 감독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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