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농구대표팀은 최근 레바논에서 열린 2017 FIBA 아시아컵에서 3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대표팀은 약체라는 저평가를 딛고 4강진출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한데 이어 이란, 필리핀, 뉴질랜드 등 아시아의 강호들을 상대로 내용 면에서도 상당한 선전을 펼치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특히 짜임새있는 공격농구와 조직적인 패싱게임으로 성적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모습은, 한동안 국제무대에서 나갈 때마다 한국농구의 경쟁력에 불안감을 드러냈던 농구팬들로부터도 박수와 환호를 받기에 충분했다. 세대교체와 전임감독제의 장점과 함께, 오랜만에 한국농구만의 색깔을 찾아냈다는 긍정적인 소득이 많았던 대회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얻은 성과가 단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숙제 또한 남긴 시간이기도 했다. 대표팀은 지난 22일 인천공항을 통하여 귀국하며 팬들의 환영을 받았다. 약 3주 전에 대중의 무관심 속에 텅빈 출국장을 빠져나갔을 때와는 달라진 위상이었다.

그런데 대표팀의 귀국 과정에서 '비행기 좌석 논란'이 불거지며 아시아컵 성공을 자화자찬하던 농구계의 축제 분위기에 돌연 찬물을 끼얹었다. 일부 매체들은 농구대표팀 선수들이 귀국 과정에서 전체 12명중 3명만 비즈니스 좌석을 배정받았다고 폭로했다.

농구선수에게 비행기 이코노미석은 고문에 가깝다

한국에서 레바논을 오고가려면 카타르를 경유하여 순수 비행시간만 13시간에 이른다. 일반인도 장거리 비행을 하면 피로를 느끼기 십상인데 거구의 농구선수들, 그것도 나라를 대표하여 국제대회 출전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최상의 몸관리를 해도 모자랄 판에, 불편한 이코노미석을 이용하여 장거리 이동을 감수하라는 것은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

대한민국 농구협회가 밝힌 비즈니스 좌석의 이용 기준은 신장 2m5 이상이다.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비상구 앞 좌석 정도를 제외하면 덩치가 큰 사람들은 190cm 내외만 해도 발을 뻗을 공간조차 부족한게 현실이다. 참고로 이번 대표팀의 평균 신장은 196cm에 이르고 2미터가 넘는 선수만 5명에 이르렀다. 여기에 국내 스포츠 문화의 특성상 선후배 관계도 좌석 배치에 어느 정도 감안하지 않을수 없다.

결국 공식적으로 비즈니스석을 배정받은 것은 대표팀 최장신 김종규(206cm)를 비롯하여 최고참 동갑내기인 오세근(2m)과 이정현(191cm) 뿐이었다. 이종현(206cm)처럼 비즈니스석 기준에 부합하고도 어쩔수 없이 이코노미석을 이용해야했던 경우도 있다. 그나마 선수들간에 서로를 배려하여 장거리 비행동안 돌아가며 자리를 바꾸면서 불편을 최소화했다고하지만, 나라를 대표하여 출전할 국가대표팀의 위상을 감안하면 한심스러운 촌극일 수밖에 없다.

대표팀이 비행기 좌석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협회는 2년 전 창사 아시아선수권 대회 당시에도 일부 선수들을 이코노미 좌석에 배정하여 물의를 일으킨바 있다. 당시는 지금보다 비즈니스 이용기준이 더 낮은 '200cm 이상'이었지만, 맨발 신장만 이미 2미터가 넘는 최준용과 강상재같은 선수들을 199cm로 표기하여 이코노미로 배정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꼼수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더구나 당시 방열 회장과 최명룡 대학농구연맹회장, 박소흠 부회장, 최부영 이사 등 협회 임원들은 대표팀 지원을 명목으로 중국 출장 당시 전원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한 사실이 알려져 '자기들 편의만 챙기고 선수들의 고단함은 외면하는 꼰대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팬들의 엄청난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결과적으로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협회는 지난해까지 2미터 이상인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제공한다던 비즈니스석 기준을 올해부터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2m5로 더 높였다. 몇장되지도 않은 비즈니스 좌석 배정은 코칭스태프가 결정하도록 떠넘겼다. 나라를 대표하여 국제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에게 자부심과 격려는 못해줄망정, 시작부터 맥이 빠지게 만드는 순간이다.

한국 농구계의 현주소 보여준 비행기 좌석 문제

비행기 좌석 문제는 단순히 해프닝을 떠나 한국 농구계의 열악한 현 주소와 구조적인 병폐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동안 대표팀의 열악한 지원이 도마에 오른 것은 비행기 문제만이 아니다. 창사 대회에서는 경기에 나서는 선수단이 현지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스스로 손빨래까지 해야했던 사실이 연이어 폭로되며 엄청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대표팀 성적도 대회 6위로 매우 좋지 않았기에 협회의 무능을 바라보는 여론은 더욱 악회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번 대회에는 성적과 내용 모두 지난 대회보다 좋아졌기에 묻힌 감도 있지만 대표팀을 둘러싼 제반 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전임감독으로 대표팀을 이끈 허재 감독 역시 최대한 말을 아꼈지만 대표팀을 향한 지원에 대해서는 "한두가지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 심각한 것은 협회 수뇌부의 한심한 문제인식이다. 방열 회장은 2년전 창사 논란 때도 대표팀 운영과 지원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불만을 내비치며 "팬들은 선수들이 손빨래를 하느라 슛감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본질을 비껴난 황당한 동문서답으로 팬들을 경악시킨 바 있다. 이번 비행기 좌석 논란에 대해서도 "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산하 남녀 대표팀이 10개에 이르는데 특정팀에만 다른 기준을 적용할수 없다"며 일축했다.

팬들이나 선수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상황이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문제점을 인식하고 조금이라도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와 노력이다. 그런 것을 고민하고 해결하라고 행정기구와 회장이라는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돈이 없으니 못한다', '다른 이들도 고생하는 것은 마찬가지다'같은 말은 누구나 할수 있다. 감독이나 학자 시절만 해도 '선진적이고 과학적인' 선수단관리와 농구 행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열렬히 떠들어대던 방열이라는 인물의 과거 행적을 생각하면, 지금은 대부분의 농구팬들 사이에서 '무능한 최악의 협회장'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현재의 상황이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번 대회의 일시적인 호성적으로 '이렇게 잘하는데...' '앞으로도 문제없다'는 식의 안이한 인식이 만연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홈에서 열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한국농구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잠깐 넘쳐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잠깐의 성공에 도취된 이후 그 다음의 국제대회에서 '역대급 참사'를 경험하며 뒤늦게 반성을 운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곤 했다.

이번 대회의 성공도 협회의 지원이나 장기적인 기획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투혼으로 일궈낸 잠깐의 성공에 가깝다. 어차피 이번 아시아컵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본선같은 굵직한 국제대회 출전권이 걸린 것도 아니었고 1진을 보내지 않은 국가들도 많았다. 진짜 시험대는 11월부터 열리는 농구월드컵 홈앤 어웨이 아시아 예선이다. 한국의 전력은 지난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것이 거의 최대치였다고 했을 때 홈앤 어웨이에서는 더욱 쉽지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아시아컵에서 반짝 잘했다고 방심하다가는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농구계의 양대축을 이루는 KBL과 협회가 함께 힘을 모아 대표팀 지원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는데, 협회는 무능하고 KBL은 무관심하여 서로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비행기 좌석 문제만 해도 대표선수들이 소속된 프로 구단들의 협조만 얻었어도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지 않았을 사안이라는 평가다.

언제까지 선수들에게 태극마크에 대한 막연한 애국심과 희생을 강요하던 시대는 지났다. 몸값만 수억을 받는 프로 선수들이 정작 국가대표에서는 아마추어만도 못한 지원을 받으며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과 의욕이 생겨날 리가 없다. 농구대표팀의 밝은 미래를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바로 내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농구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