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김재환이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김재환은 8일 서울 잠실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한화전에서 팀이 0-1로 끌려가던 1회 말 2사 2루, 한화 선발투수 안영명을 상대로 역전 2점 홈런을 터뜨렸다.

이 홈런으로 김재환은 지난달 26일 수원 kt전부터 시작한 연속 경기 타점 기록을 12경기로 늘리며 새 역사를 썼다. KBO 종전 연속 타점 최다 기록은 1991년 빙그레 장종훈, 1999년 삼성 이승엽, 2015년 삼성 야마이코 나바로, 그리고 올시즌 기아 최형우가 타이를 기록한 11경기 연속이었다. 김재환이 한국프로야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대형 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이 부문 세계 기록은 한국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프로야구가 13경기 연속, 미국 메이저리그도 17경기 연속에 불과하다. 김재환의 기록이 아직 현재진행형이기에 충분히 도전해볼만하다.

또한 이날 홈런으로 김재환은 올 시즌 잠실구장에서만 18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다. 이 역시 1999년 심정수(두산), 지난해 김재환 자신이 세운 17개 기록를 넘는 KBO 신기록이다. 외국인 선수까지 포함하면 역대 잠실구장 최다홈런은 역시 두산 소속이던 1998년 타이론 우즈(두산)가 세운 24개로 올시즌 김재환이 이마저 경신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김재환의 소속팀 두산은 한화를 8-1로 꺾고 올 시즌 최다 연승인 8연승을 달렸다. 이날 인천에서 2위 NC가 SK에 0-4로 패해 NC와 3위 두산의 승차가 0.5경기로 줄었다. 김재환은 두산의 후반기 폭발적인 상승세에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최근 MVP급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팀도 이기고 본인도 대기록의 주인공이 된 영광스러운 하루였음에도 정작 김재환은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최근 김재환은 팬들 앞에서 인터뷰를 할때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김재환은 "대기록이지만 마냥 기쁘진 않다. 만감이 교차한다"고 밝히며 "야구팬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최근의 눈부신 활약만 놓고보면 영 어울리지않는 장면이다.

김재환의 사죄는 '금지약물 복용' 논란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사건은 김재환의 야구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주홍글씨로 남은 흑역사다. 김재환은 2011년 10월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성분이 검출되며 이듬해 10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에도 유야무야되었지만 이때만 해도 김재환이 아직 그리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기에 팬들 사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않고 넘어간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김재환이 지난 2016년부터 일약 기량이 급성장해 두산의 중심타자로 거듭나면서 부메랑처럼 덩달아 이 사건도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비록 수년의 시간이 흐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김재환이 어떤 활약을 보이든 당시 사건과 관련하여 의구심을 갖고 지켜보는 팬들도 적지 않다. 설사 김재환의 최근 활약이 더 이상 과거 사건과는 무관하다 할지라도, 이미 프로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잃은 김재환을 앞으로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팬들도 있다.

오히려 김재환이 좋은 성적을 올리면 올릴수록 비난의 수위가 더 강해지는 기현상도 나오고 있다. 물론 '지나간 과오 때문에 선수의 현재나 그간의 노력마저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일부 있지만 아직은 부정적인 여론이 훨씬 강한게 엄연한 사실이다.

당연히 김재환도 이런 여론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김재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아무리 좋은 성적을 올려도 결국은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는 프로 선수로서는 어쨌든 비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김재환 본인의 입으로 '약물'이나 '도핑'같은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우회적으로나마 비판적인 팬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구팬들에게 죄송하다"는 언급 속에는 물론 팬들도 팬들이지만, 야구를 아무리 잘해도 스스로 자초한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녹아있는 듯 하다.

앞으로도 김재환을 프로 선수로서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는 결국  팬들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날 타점 신기록처럼 앞으로 김재환이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선수가 되어갈수록 논란은 계속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당장 '국가대표 발탁' 가능성이 거론된다거나, '잠실구장 홈런 신기록' 같은 이슈가 현실화되었을 때, 김재환을 과연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는 단순히 선수 개인이 아닌 한국야구의 이미지나 신뢰도 차원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모두 실제로 조만간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나리오들이다.

김재환이 언젠가 은퇴한다거나 아니면 꾸준히 야구 내외적으로 진심어린 모습을 보여 팬들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도 있지만, 어차피 둘다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는 힘든 해결책들이다. 훗날 시간이 흘러서 한국야구에서 김재환은 과연 어떤 선수로 기억될지, 과연 역사의 평가만이 유일한 해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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