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에서 한국 허재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2016.8.29

2016년 8월 2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에서 한국 허재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레바논에서 열리는 2017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8월 8일-20일)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4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결단식을 가진 대표팀은 오는 6일 결전지 레바논 베이루트로 이동한다. 한국은 개최국이자 중동의 강호 레바논을 비롯하여 카자흐스탄- 뉴질랜드와 한 조에 편성되어 어려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FIBA 아시아컵의 전신은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ABC)다. 2년 주기로 개최되며 과거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예선을 겸하던 ABC가 올해부터 아시아컵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농구도 지역예선이 기존의 토너먼트 대회 형식에서 별도의 홈 앤 어웨이 제도로 개편되면서 아시아컵은 순수하게 대륙별 대항전의 기능만을 맡게되며 아시아 각국의 농구 수준과 자존심을 겨루는 무대가 됐다.

이런 변화로 인하여 이번 대회에서는 정예멤버를 보내지 않는 국가들도 일부 있지만, 아시아 농구의 전통 강자인 중국과 중동팀(이란-레바논 등)들을 비롯하여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참가하면서 오히려 경쟁의 벽은 더 높아졌다는 평가다. 한국은 본격적인 전임감독제 도입 이후 지휘봉을 맡게 된 허재 감독이 도전하는 첫 메이저대회로 오세근-이정현-김종규 등 프로 최정예 선수들을 이끌고 출전한다. 한국 남자농구로서는 이번 대회를 도쿄올림픽 본선행을 대비한 전초전으로서 의미를 두고 있다.

FIBA 아시아컵은 1960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1회 ABC 대회를 시작으로 올해도 29번째를 맞이한다. 대회 최다우승팀은 역시 '만리장성' 중국으로 1975년 방콕 대회를 시작으로 자국에서 열린 지난 2015년 창사 대회를 포함하여 40년간 총 16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이는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모든 우승횟수(12회)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다.

중국농구가 아시아무대에 본격적인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였음을 감안하면 중국의 우승 기록은 더 늘어날수도 있었다. 각각 두 차례의 5연패와 한 차례의 4연패를 달성한 것도 중국이 유일하다.

최다우승국 2위는 필리핀으로 초대 대회 개최국이자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총 5번이나 정상에 오르며 대회 초창기의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마지막 우승은 1985년 콸라룸푸르 대회로 무려 32년전이다. 3위는 이란으로 2000년대 이후 중동농구의 약진을 반영하는 대표 주자답게, 최근 10년 사이에만 무려 3번의 정상(2007- 2009년, 2013년)에 오르며 중국의 독주체제를 흔들어놓았다.

한국은 2회 정상에 올라 중국-필리핀-이란에 이어 일본과 공동 4위를 기록 중이다. 현재까지 아시아컵에서 우승을 맛본 국가는 모두 5팀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농구는 유독 이 대회에 한이 많았는데, 바로 최다 준우승(11회)이라는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3위(11회) 역시 참가국 최다 기록이다. 한국이 결승전에서 가장 자주 만난 상대는 역시 중국으로 9번이나 대결했으나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반면 한국이 우승을 차지했던 1969년 방콕 대회(김영기 감독)와 1997년 리야드 대회(고 정광석 감독)에서는 모두 결승전에서 일본을 만나서 승리하고 정상에 올랐다.

1997년은 한국에 프로농구(KBL)가 처음 출범한 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농구는 공교롭게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1997년 사우디 리야드 아시아선수권을 끝으로 프로  출범 이후로는 지난 20년간 한번도 올림픽 본선진출이나 아시아컵 우승 기록이 없다. 그나마 아시안게임에서 2002년-2014년 두 번 정상에 올랐지만 모두 홈에서 열린 대회로 안방에서만 강했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농구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시아 무대에서 비록 우승 횟수는 적었지만 꾸준히 3위 이내의 성적을 유지하며 중국과 함께 아시아농구의 강호 지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2005년 카타르 도하 대회(전창진 감독)에서 처음으로 4위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 텐진 대회에서는 7위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텐진 참사' 당시 대표팀 사령탑이 바로 허재 감독이었다.

2011년 우한 대회(허재 감독)와 2013년 마닐라 대회(유재학 감독)에서는 3위를 기록하며 어느 정도 자존심을 지켰지만 바로 지난 2015년 창사 대회(김동광 감독)에서는 6위에 그치며 텐진 참사 이후 불과 6년만에 두 번째로 안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농구협회의 무능하고 부실한 행정과 비행기 좌석 논란 등 경기외적으로도 텐진 참사 이상으로 많은 구설수를 초래했던 대회이기도 했다. 비록 이번 대회에 올림픽이나 월드컵 티켓이 걸린 것은 아니지만 지난 대회의 수모를 어느 정도 만회하고 한국농구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레바논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16개국이 4개팀씩 4개조로 나뉘어 리그전을 치른 뒤 8강 토너먼트 진출팀을 가리는데 조 1위는 8강에 직행하고 2, 3위팀은 상대조 2, 3위팀과 크로스 매치를 치러 8강행을 결정한다.

이번 대회에 나서는 한국농구의 현실적인 목표는 4강이다. 이제 아시아무대에서도 확실한 우승후보라고 장담할수 없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쉬운 목표는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이란과 함께 항상 한국농구의 발목을 잡아오던 개최국 레바논과 첫 경기를 치러야 하고 장신의 카자흐스탄이나 아시아무대에 새롭게 편입된 뉴질랜드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참가국 중 대부분이 귀화선수까지 보강하여 전력을 끌어올린 터라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프로화 이후 한국농구의 인기와 국제 경쟁력이 오히려 퇴보했다는 조롱을 받는 상황에서 이번에도 조직력과 '양궁농구'로만 승부를 걸어야 하는 허재호의 앞길은 순탄하지 않은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2007년-2009년에 이어 세 번째로 대표팀 사령탑으로 아시아무대에 도전하는 허재 감독이 이번에는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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