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남 대한배구협회 신임 회장이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표팀의 출국에 앞서 격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한남 대한배구협회 신임 회장이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표팀의 출국에 앞서 격려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대한배구협회


1년의 2/3나 자리를 비운 수장이 조직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27일 한 매체는 배구협회 오한남 제39대 신임 회장이 '1년에 6개월도 협회를 지킬 수 없는 반쪽 미만의 회장'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박승수 전 배구협회 회장은 27일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내가 배구협회 회장을 하고 있을 때 오 회장은 대학배구연맹 회장을 맡고 있었다"면서 "오 회장은 1년에 거의 2/3는 해외에 나가 있었다"고 말했다.

박승수 전 회장은 지난 2015년 4월부터 배구협회 제37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회장 시절 1년 내내 상근을 하디시피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기를 대과 없이 마친 이유이기도 하다.

박 전 회장은 "이전에 정치인이나 기업인 회장들도 자기 일 때문에 빠지는 경우는 있지만 길어야 1~2달이었다"며 "오 회장처럼 1년에 반 이상을 해외에 머무는 경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느 조직이든 수장이 너무 장기간 자리를 비울 경우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건 상식"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회장은 "특히 배구는 국제대회가 굉장히 많아 수시로 국가대표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아무래도 주인(회장 지칭)이 있을 때하고 없을 때하고 관심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어 "배구협회의 조직이나 행정도 회장이 없으면 이완될 수밖에 없다. 수장이 관여와 지시를 하느냐, 안 하느냐는 차이가 있다"며 "잘못되면 모든 책임은 다 회장이 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고 염려가 된다"고 말했다.

박승수 전 회장 "측근 농단 가능성? 언론 감시 필요"

가장 큰 문제는 회장의 공백이 자주, 장기적으로 발생할 경우 회장 측근 등이 협회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단체나 정권의 사례를 보더라도 충분히 우려할 만한 지점이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최순실 사태도 대통령의 측근이 국정에 관여해 논란이 불거진 사례다.

회장이 배구계 현안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배구 종목도 세계적 흐름이 계속 바뀌고, 새롭게 공부를 해야 알 수 있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중요한 사안이나 이슈가 불거질 때는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장기간 해외에 나가서 자기 사업에 신경을 쓰다 보면, 그런 부분들에 지속적인 관심과 파악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불가피하게 측근이나 비선의 보고서와 전언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시스템 아래에선 비정상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박승수 전 회장은 "언론이 그런 부분을 늘 감시하고 채찍을 가해야 한다"며 "그래야 밑에 있는 사람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한남 회장 "역대 회장들, 국내 상주한다고..."

오한남 회장은 27일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오는 30일 바레인에 간다"며 "이번에 가면 한 달 정도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대학배구연맹 회장 시절 장기간 해외 체류가 일상적으로 이뤄진 데 대해서도 시인했다. 그는 "내가 해외에 있을 때 대학배구연맹의 최천식 전무가 거의 다 일을 처리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실제 최천식 전무는 지난해 서병문 제38대 회장 해임 당시에도 대학배구연맹을 대표해서 해임을 주도했다. 오 회장도 지난 5일 서 회장과 회동 자리에서 "작년 해임안 표결 당시 나는 일 때문에 바레인에 가 있어서 대의원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대학배구연맹은 전무가 위임을 받아 해임안 표결에 대리 참석했다"고 말한 바 있다.

최 전무는 오한남 집행부의 상임이사진 인사에서 남자 경기력향상이사로 발탁됐다. 경기력향상이사는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를 선발·관리하는 핵심 요직이다.

기자는 오한남 회장에게 "이제는 대한배구협회 회장이 됐기 때문에 장기간 해외 체류 패턴으로 가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며 "그렇게 되면 배구계 안팎에서 우려를 많이 할 것 같다"고 물었다.

그러자 오 회장은 "역대 회장들이 꼭 국내에 상주해가지고 저기한 게(특별한 일이) 있느냐"라며 "하여튼 열심히 할 테니까 기자님도 좀 봐달라"고 답변했다.

'오한남 대학배구연맹' 출신들, 배구협회 '핵심 요직' 장악

지난 26일 배구협회가 발표한 상임이사진 인사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상임이사진은 오한남 체제의 배구협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핵심 인사들이다.

그러나 일부 1~2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오한남 회장의 측근이거나 서병문 회장 해임을 주도했던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1명의 상임이사 중 4명이 오 회장이 회장 선거 직전까지 몸담았던 대학배구연맹 출신이다. 류중탁 전무이사, 최천식 남자 경기력향상이사, 유경화 여자 경기력향상이사, 송채훈 경기이사가 그들이다.

이들 4명이 맡은 보직은 배구협회에서 핵심 중의 핵심으로 꼽히는 요직이다. 흡사 대학배구연맹을 배구협회로 옮겨놓은 인상이다. 측근 인사라고 해석될 여지가 존재한다. 대학배구연맹을 제외한 다른 산하단체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오 회장이 당선 후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며 발족시킨 인사위원회도 서병문 회장 해임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대다수였다. 때문에 서 회장과 관련이 있는 인사들은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 배제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일부 대의원 "서병문 회장 때보다 훨씬 문제 많은 인사"

배구협회 대의원총회의 대의원이자 산하단체 회장인 김영석 경북배구협회 회장은 보다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28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이번 상임이사진 인사가 발표되자, 지난해 서병문 회장 해임을 주도했고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했던 대의원들까지 나한테 전화를 해서 실망감과 분노를 쏟아냈다"고 말했다.

이어 "상임이사진 대부분이 오 회장 측근이거나 서 회장 해임을 주도했던 인사들"이라며 "오죽하면 서 회장 해임에 참여했던 산하단체 회장들까지 나한테 전화해서 '일부 상임이사들은 개인 비리에 연루되는 등 자질에 문제가 있다', '서병문 집행부 때보다 훨씬 문제가 많은 인사들'이라고 주장하며 하소연할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대의원들이 최근 배구협회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오한남 체제가 태생적으로 소통·화합과 거리가 멀고, 그럴 의지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류중탁 전무이사의 경우, 지난 3월 발생한 소속 학교 배구단의 폭행 사태에 대해 관리 책임을 물어 최근 대학배구연맹으로부터 6게임 출전 금지라는 징계를 당한 바 있다. 당분간 자중을 해야 하는 인사임에도 중책을 맡아 영전하는 모습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상임이사들 중 세계 배구 대세인 스피드 배구, 장신화 등에 대해 신념이나 일선 현장에서 실천으로 검증된 인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배구협회가 단지 행정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한국 배구 미래를 위한 발전 방향을 세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적들에 대해 오 회장은 "인사위원회 운영에 대해 자세히 보면 안다"며 "전임 집행부 인사를 가급적 배제하고 젊고 참신한 사람으로 인사를 했는데 그걸 자꾸 이상하게 보면 안 된다"고 일축했다.

회장 취임식, '오한남 1000만 원 vs 박승수 0원'

오 회장은 최근 논란이 된 호텔 취임식에 대해서도 해명 했다. 그는 서울 강남구 고급 호텔에서 취임식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이 회장 본인인지 측근의 권유인지를 묻는 질문에 "내가 그 호텔에서 취임식을 하라고는 안 했지만, 우리 (배구협회) 직원들도 알아보고 이게(강남구 청담동 리베라 호텔이) 가장 저렴하다고 하니까 그 정도는 해야 될 거 같아서 그렇게 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그걸(호텔 취임식 문제를) 자꾸 저한테 얘기하지 마세요. 나도 스트레스 받아요 진짜"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오 회장의 호텔 취임식은 배구팬 물론 많은 언론에서도 큰 비판의 대상이 됐다. 배구협회가 예산이 부족하다며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 중 절반만 비즈니스석을 제공하기로 결정해 큰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회장 개인의 취임식을 위해 1000만 원대의 거액을 들여 취임식을 했어야 하느냐는 질타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지상파의 저녁 메인 뉴스조차 "대표팀 절반 비즈니스석 논란으로 협회의 부실한 재정과 무능한 행정이 다시 한번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와중에 신임 회장의 취임식을 호텔에서 성대하게 열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오 회장의 호텔 취임식은 이전 회장들의 검소한 취임식과 비교되면서 더욱 대조를 보였다. 박승수 제37대 회장은 아예 취임식을 열지 않았다. 취임식 비용이 0원이다.

박 전 회장은 "협회 예산이 어려워서 내 취임식에 몇백만 원을 쓰느니 여자배구 대표팀이 중요한 국제대회들을 앞두고 있어서 거기에 총력을 쏟아붓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역대 배구협회 회장 중에서 취임식을 안 한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며 "지나고 보니 개인적으로는 서운한 감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에게는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직 회장들 "협회 어려워... 취임식 비용으로 대표팀 지원"

서병문 제38대 회장도 서울 올림픽파크텔의 작은 강당과 식당을 빌려서 대의원총회와 취임식을 간소하게 치렀다. 특히 외빈을 일체 초청하지 않고 내부 인사들만으로 치렀기 때문에 취임식 비용이 100만 원 안팎에 불과했다.

서 회장도 "회장에 당선되고 업무 파악도 안된 상황에서 리우 올림픽 부실 지원 문제로 언론에 난리가 났다"며 "그런 상황에서 취임식을 안 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아서 그냥 간소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훨씬 더 고급 호텔에서 하고 싶었고 그럴 여건도 됐지만, 당시 분위기가 그런 취임식을 했다가는 배구팬들의 엄청난 질타를 받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라고 회고했다.

오 회장은 절반 비즈니스석, 호화 취임식 문제 등으로 자신을 향한 비난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그는 "나도 배구 기사들과 관련해 보고를 받아서 들었다"며 "그래서 나는 요새 (배구 기사를) 안 본다.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안 본다"고 토로했다.

"185cm 이상만 비즈니스석, 내가 제안" 당당한 회장?

오한남 회장 체제의 출범과 동시에 벌어진 일련의 행보들에 대해 배구계와 배구팬은 물론 일반 네티즌까지 연일 가시 돋친 비난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배구협회가 재정 형편이 어려운 사정을 몰라서가 결코 아니다. 사태의 본질에 어긋나는 판단과 무지에 가까운 언사들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배구협회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오한남 회장이 국가대표팀 지원 및 협회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억 원을 출연했다"고 밝혔다. 최근 비난들이 돈 문제가 본질이 아니었듯이, 사재 출연으로 모든 게 해결되거나 덮어지지 않는다.

여자배구 대표팀의 '절반만 비즈니스석' 논란, 오 회장의 "185cm 이상 선수는 비즈니스석으로 185cm 이하는 이코노미석으로 자르자"는 제안에 대해 팬들이 분노하는 건 '차별'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람에 대한 차별'을 낳기 때문이다.

물론 배구협회가 일부러 차별하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조치를 취할 때는 받아들이는 대상자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질지가 더 중요하다.

그 부분에서 오 회장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지 않았다. 선수와 배구팬을 대하는 사고방식과 태도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월드그랑프리 경기장에서 배구협회 고위 인사들의 '옥황상제석'(귀빈석)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도 오 회장은 자신이 내세운 '키 185cm로 자르자'는 제안에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언론사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발상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는데도,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이다.

그리고 이어진 호화 호텔 취임식, 측근들 요직 발탁 등 배구계와 팬들을 실망시키는 일의 연속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은' 패착이 계속되고 있다.

주변 참모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누구 하나 회장 앞에서 '그건 아니다'고 적극 말리는 사람이 있었다면,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배구협회가 '최순실형 협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그저 기우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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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협회 프로배구 V리그 월드그랑프리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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