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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대형서점 도서분류 코너의 '여성'. 이는 한국십진분류표에는 없는 분류다.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대형서점 도서분류 코너의 '여성'. 이는 한국십진분류표에는 없는 분류다.
ⓒ 윤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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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대형서점 '여성'코너의 하위분류. 임신,출산,육아,요리,이유식,다이어트,메이크업,자녀교육,홈인테리어,손뜨개,자수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대형서점 '여성'코너의 하위분류. 임신,출산,육아,요리,이유식,다이어트,메이크업,자녀교육,홈인테리어,손뜨개,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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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냐?"

요즘 청년들이 많이 사용하는 유행어다. 믿기 어려운 사실을 접했을 때, 주로 감탄을 드러내기 위해 쓴다.

며칠 전, 나는 B 대형서점을 방문했다. 페미니즘 책을 사기 위해서였다. 서가를 살피던 중 '여성' 코너를 본 나는 경악했다. "실화냐?"

'여성' 코너의 하위분류로 임신, 출산, 육아, 이유식, 자녀교육, 요리, 다이어트, 메이크업, 홈인테리어, 손뜨개, 자수가 채워져 있는 것이다. 대통령도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2017년의 일이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당장에 여성 혼자서 아이를 낳은 순 없다. 육아, 이유식, 자녀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같이 낳아서 같이 길러야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이는 비혼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분류다.

요리와 다이어트, 메이크업, 홈인테리어도 그렇다. 방송에 나오는 셰프는 대부분 남성이다. 내 주위에는 여성보다 남성들이 더 다이어트에 골몰한다. 또 방송에 나오는 남자 연예인 중 메이크업 안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홈인테리어? 우리 집은 아버지가 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

손뜨개, 자수에 이르러서는 가히 '화룡점정'이다. 남자에게는 기술을, 여자에게는 가정을 나누어 가르치던 학교교육이, 1992년부터는(제6차 교육과정) 기술가정 과목으로 통합된 지 올해로 25년째다.

이처럼 B 대형서점이 '여성'으로 분류해놓은 것들은 더 이상 여성의 의무가 아닐 뿐더러, 여성의 취미도 아니다. 이는 성역할을 한정함으로써 여성을 옥죄는 것은 물론, 남성의 역할도 한계 짓는다.

페미니즘이 열풍이라는데, 한 편 가득 '잘 팔리는' 페미니즘 책을 모아놓았을 뿐, 정작 서점은 바뀐 게 없었다. 자본주의를 타도했던 '혁명가' 체 게바라와 잘 팔리는 티셔츠 '상품' 체 게바라가 공존하는 모순과 같은 걸까.

페미니즘 책을 사러 왔던 나는 씁쓸함을 안고 갔다. 페미니즘이 페미니스트를, 페미니스트가 실천을 낳지 않는 한, 이는 변함없는 우리의 '실화'다.


태그:#대형서점 도서분류, #여성, #실화냐,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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