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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노동자들.
 "언니, 저 왔어요" 여느 때처럼 가게 문을 열고 인사를 하며 들어가는데 뭔가 예사롭지 않은 공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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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콜센터 X까지 나를 무시하네" 비열한 당신들

"언니, 저 왔어요."

여느 때처럼 가게 문을 열고 인사를 하며 들어가는데 뭔가 예사롭지 않은 공기가 흐른다.

역시나 좋지 않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주방에 있던 사장님이 눈물을 줄줄 흘리고 계신다.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가게를 둘러보는데 누군가 다녀간 듯 테이블 위에 놓여진 맥주 두 병과 소주, 그리고 깨진 소주잔이 보인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구나 싶었지만 울고 있는 그녀에게 어떤 말을 건네기도 어려워 그저 묵묵히 깨진 소주잔을 치우며 그녀가 안정되길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에게 전후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몇 차례 술을 마시고 난동을 피운 적이 있었던 이가 직장 동료들과 또 찾아왔다고 했다. 어디서 마신 건지 이미 술에 취한 상태였다. 사장님은 그냥 가라고 말했지만 막무가내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동료들도 있으니 그나마 낫겠거니 생각하고 술을 내줬단다. 그런데 또 옆에 앉으라고 하더니 여느 때처럼 욕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사장님이 나가라고 말하자, 급기야 들고 있던 소주잔을 던졌다. 그 사람은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말리자 가게를 나갔다고 했다.

사장님에게 "경찰에 신고하지 그러셨냐"고 물었더니 이전에도 신고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인수하는 시점이라 그냥 참으셨단다.

"그래도 너 오기 전에 그래서 얼마나 다행이야. 아마 너 봤으면 또 너한테 시비걸고 그랬을 건데..."

그 상황에서도 나를 걱정하는 그녀, 순간 그녀와 내가 연결됐다는 느낌이 찡하게 전해졌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곧 이별하게 된다.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다른 이에게 가게를 넘기기로 했단다. 원래 가게를 내놓았는데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서 가게가 나가지 않았는데 며칠 전 가게를 보고 가신 분이 계약을 하겠다고 왔다며...

짧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이제 막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있던 참이다. 내심 아쉬웠다. 또 새로 오시게 될 사장님은 어떤 분이실지 걱정도 되고 복잡했다. 그러다 문득, 그녀와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처음엔 악착 같이 일하던 그녀가 미웠다

 사장님은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단골 손님들에게 "우리 가게에 새로 온 아가씨예요"라고 소개했다.
 사장님은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단골 손님들에게 "우리 가게에 새로 온 아가씨예요"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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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단골 손님들에게 "우리 가게에 새로 온 아가씨예요"라고 소개했다. 나를 내 이름이 아닌 '니나'라고 부르는 그녀(물론 그녀가 나를 그렇게 부른 이유를 안다. 술 취한 남성 손님들에게 내 진짜 이름을 가린 채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사장, 여기 앉아봐" 하는 남성 손님들의 테이블에 가서 함께 술 마시던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싫었다. 그 공간에서 나를 접대부처럼 대하는 남성 손님들을 그녀가 그렇게 길들인 것 같았고, 그런 남성 손님들보다 그녀가 더 싫었더랬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곤 얼마 되지 않아 고민했다. '여기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아니 계속 일하는 것이 맞나...'

"사장님과 친한 손님이라고 하더라도 그분들이 주는 술을 마시진 않을 거고, 저는 딱 서빙만 할게요."

일한 지 이틀 만에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흔쾌히 "그래, 그런 원칙을 정했으면 그대로 해"라고 이야기했다. 깔끔하게 답하는 그녀를 믿어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였다. 

"밥은 먹었어?" 내가 투잡을 하고 있다는 사정을 아는 그녀는, 출근할 때면 꼭 이렇게 물었다. "그냥 앉아서 쉬어." 손님 없는 시간이면 혼자 안절부절 서 있는 나에게 그녀는 쉬고 있으라고, 설거지라도 할 참이면 그냥 자기가 할테니 쉬라고 말했다(그래서 손님 없을 때는 가져간 책의 반을 읽었다). 그런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그녀의 가족 이야길 전해 듣고, 그녀의 삶의 이야길 전해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이해하게 됐다. 그런데 이제 곧 이별이라니.

지난 토요일 밤 11시즈음. 손님은 한 테이블만 남았다. 그녀가 주방에서 치킨을 튀기기 시작했다. '아는 분이 오시려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가 좋아하는 맥주 하나 들고 와, 우리 그래도 송별회는 해야지"라며 치킨을 들고 나오셨다. 그녀와 나의 첫 술자리이자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술자리.

"자기는 뭘 너무 안 먹어. 그래서 일할 수 있겠어? 다음 사장님 오면 좀 잘 먹어."

친언니 같은 잔소리로 시작해 "다음 사장님 괜찮은 사람같아 보이니까 마음 잘 맞춰서 해봐. 내가 자기 계속 일하면 좋겠다고 미리 이야기 해뒀어"라는 살뜰한 당부까지. 밤은 깊었고, 대화가 이어졌다.

"언니, 이런 일 하는 거 괜찮으셨어요? 지금이야 좀 나아졌지만 예전엔 더 힘드셨을 거 같아요."

마음에 꼬옥 담아두었던 질문을 꺼냈다. 어쩌면 이런 말들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응, 그냥 했지. 살아야 하니까... 근데 저번처럼 그렇게 진상들 한 번 왔다 가면 정말 다음 날 출근하기 싫었어. 그래도 좋다고 또 웃어야 하고. 요즘은 정말 못하겠다 싶더라고, 몸도 예전같지 않게 자주 아프고..."

그녀는 당분간 쉬고 싶다고 말했다. 이곳저곳 아픈 몸을 보살피며.

치열한 삶을 버텨온 당신, 덕분에 배웠습니다

 그녀의 속내를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녀의 속내를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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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길 동료와 나눈 적이 있었다. 동료는 자신의 친구 이야길 했다. 친구는 자신의 어머니가 술집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주변인에게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아주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살짝 알려주었다고.

그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결혼할 나이가 되니 술집을 그만 두셨단다. 그녀의 남편과 시댁에 괜히 책 잡힐까 싶은 마음이었단다. 다른 물건을 판매하는 것과 다르게 '술'을 판다는 것이 곧 '여성성'을 판매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강력한 편견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동료와 한참 이야길 나눴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은 술집 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상품으로 소비된다. 당장 TV만 봐도 그렇다. 여성 아이돌이 나와서 그들의 '여성성'을 과시해야 하는 구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행동을 '요구' 받는 현실. 애교는 기본, 복스럽게 잘 먹어야 하지만 몸매는 날씬해야 한다. 그녀들이 연애라도 할라치면 온갖 매체들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아이돌의 본분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걸그룹은 예쁜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거죠."
"여러분들이 끝까지 예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제작진이 미안해할 일 없고 아쉬울 것도 없겠죠?"
"코 평수가 넓다."
"하관이 모 남성 개그맨 같다."

KBS2 <본분금메달>에 등장한 말, 말, 말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여성아이돌을 대상으로 여러 상황을 겪게 하고, 끝까지 아름다움이라는 아이돌의 '본분'을 유지하는지 평가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어디 <본분금메달>만 문제일까.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걸그룹에겐 별다른 호칭없이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고, 다짜고짜 춤을 춰보라고 하는 등 무례한 행동을 벌인다. KBS2 <1박 2일>에 걸그룹 AOA가 나왔을 때, 기존 출연자들은 "여자다!"라고 반응했다. 그들을 아이돌 그룹이라는 뮤지션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여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빅뱅이 <1박 2일>에 출현했다고 가정해보자. "빅뱅이다!"가 아니라 "남자다!"라고 반응하는 걸 상상할 수 있나.

"미리씨, 여기 술 좀..."

오늘도 그녀는 손님의 옆자리에 앉아 나를 부른다(그래도, 이제 그녀는 나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다. 나는 그 공간 안에서 '니나'가 아니라 '미리내'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녀가 알아봐준 걸까).

처음엔 그녀가 싫었다. 왜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건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옆에 앉아서 술 좀 따라봐'라는 말에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어찌할 수 없었을, 또 때론 적극적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과시하기도 했을 그녀의 생존 방식에 대해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대기가 어렵다. 성차별적 프레임 안에서 개별 여성들이 예외적 존재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난 이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 그리고 편견 그득했던 그 시절을 치열하게 넘어왔을 '언니'로서 그녀가 좋다. 바라건대, 그녀가 내내 자신을 지치게 했던 것들에서 비껴선 채 안전하고 평안한 공간에서 머물 수 있길.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고마웠어요! 스치듯 지나간 인연일지 모르지만, 당신으로 인해 또 하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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