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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 앉으라고 강요하고, 강제로 악수하려고 하는 사람들. 뭐가 잘못됐는지 정말 모르는가?
 술자리에 앉으라고 강요하고, 강제로 악수하려고 하는 사람들. 뭐가 잘못됐는지 정말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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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계약서 안 써"란 말에 우물쭈물... '그들'이 떠올랐다

풍경 하나. 술에 얼큰하게 취한 이들. 대리운전을 불러달란다. 대리운전업체 콜센터와 통화를 해두긴 했는데 콜이 많이 밀렸는지 계속 오지를 않았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짜증이 났는지 대리운전 콜 번호를 달라더니 콜센터 직원과 통화를 하기 시작한 한 남성. 뭔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는지 계속 투닥투닥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씨X, 인제 콜센터 X까지 나를 무시하네. 내가 내일 여기 가만두나 봐."

밖에서 통화를 이어가던 그는 가게 안으로 들어오며 큰 소리로 욕을 하곤 카운터 위에 놓여 있던 콜번호가 새겨진 대리운전 업체 명함을 들어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그리고 함께 온 지인에게 XX년, XX년 하며 온갖 욕을 쏟아냈다.

풍경 둘. 나이 지긋해 보이는 남성 두 명, 여느 때처럼 새로 보는 얼굴이라며 술을 한 잔 사주겠단다. 그러더니 옆으로 앉으라고... 됐다고 정색을 하곤 그 테이블에는 거의 무표정으로 서빙을 했다. 얼마 지나, 술 자리를 마친 두 사람 중 한 명이 자리를 치우려는 나를 향해 손을 건넨다.

이건 무슨 액션인가. 뜬금없이 웬 악수?! 싫다고 손을 절레 절레 흔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손을 내민 채 나를 따라오는 거다. 거의 테이블 한 바퀴를 돌 정도로 나는 피하고, 그는 쫓아오고... 나중에는 안되겠어서 다른 손님들이 쳐다볼 정도의 큰 목소리로 "아니, 왜 이러세요" 했더니 그제서야 밖으로 나간 그. 사장님을 밖으로 부른 그는 무슨 저런 걸 직원이라고 쓰냐며 일장 훈계를 하곤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단다. 일하는 하루동안 펼쳐진 풍경들. 이런 풍경들을 보거나 겪고 나면 마음이 아찔해지곤 한다.

가정폭력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노라면 그들의 폭력이 일어나기 전 그들이 내뱉는 말은 대부분 "너까짓 게 나를 무시해"였다. 그 말은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고... 앞으로 일어날 무자비한 폭력을 예고하는 신호탄. 작년 5월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강남역 살인사건의 가해자 또한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고.

'모멸감 :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가 쓴 <모멸감>이라는 책에서는 모멸감을 이렇게 규정한다.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 웬만하면 화나는 상황에서 꾸욱 참고 넘어가는 걸 선택하는 나 또한 나와 어떤 관계도 없는 이가 갑자기 보자마자 '반말'을 하거나 나를 낮은 존재로 대할 때는 '욱'하고 만다. 그만큼 무시받는 경험은 그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때 느끼는 모멸감은 그 사람의 내면을 파괴할 만큼 강력하다.

폭력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우리가 진정 화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우리가 진정 화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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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을 온몸으로 겪은 후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던 당사자 분이 세월호 사건 이후 SNS에 분노의 감정을 매일 매일 쏟아냈다고 한다. 그렇게 매일, 독기 어린 글을 올리는 걸 본 그의 지인은 그런 그에게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단다.

"내가 그렇게 당하고 고통받고 있을 때는 나의 고통에 공감해주지도 않던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는 함께 슬퍼하고 공감해준다. 나는 그게 미치도록 화가 난다."

그의 대답. 이 이야길 지인을 통해 듣곤 안타깝고, 조금은 슬퍼졌다. 1980년 5.18은 독재정권이 나서서 군대를 이용해 광주 시민들을 죽이고 짓밟았던 사건이고 2014년 4.16 세월호 침몰은 기업들의 이윤추구, 그를 뒷받침해주는 정부의 규제완화 등 국가 시스템이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이뿐인가... 사건 발생 후 유가족들에게 보였던 국가의 태도는 어떠했나). 이 사건의 당사자들 모두 동일한 국가 폭력의 피해자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분의 분노는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고 있는 그의 '이웃'을 향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무원 고시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새벽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얼굴이 노랗게 뜬 취업 준비생들의 분노는 우리 일자리를 뺏는다며 '이주 노동자'들을 향한다. 86:1의 공무원 시험 경쟁에 놓여 있는 이들의 분노는 가산점을 받는 '5.18 유공자'를 향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는 함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한다.

참고로, 올해 6월 국가보훈처의 발표에 따르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채용시 5~10%의 가산점을 주는 것은 관련법에 따른 것으로 5.18을 포함한 모든 국가유공자에게 해당되며 10%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5.18유공자는 182명에 불과하다. 또 올해 6월 재벌닷컴의 대기업 유보금 발표에 따르면, 삼성그룹 219조 5000억 원, 현대차그룹 121조 7000억 원, SK그룹 70조 6000억 원, LG그룹 38조 9000억 원을 기록했다(3월 기준).

그렇게 무능력한 정부, 곳간에 돈을 쌓아 놓은 재벌 대기업은 교묘하게 모습을 감춘 채 서로를 싸움 붙이고, 우리는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료 시민, 특히 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장애인·노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층을 공격한다.

전 세계적으로 증오, 혐오범죄가 늘어나고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적절한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2010년 이후 혐오 표현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혐오 표현을 접한 후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비중은 장애인이 56.3%로 가장 높았다. 이는 비중이 가장 낮게 나온 '기타남성' 16.3%에 비해 약 세 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이어 성소수자가 43.3%, 이주민은 42.6%, 기타여성은 30.3%인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 특정 소수자, 약자 집단은 남성 집단에 비해 혐오 표현을 접한 후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그들이 그만큼이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진짜' 분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2013년 캐나다 맥길 대학 프랭크 엘가 교수팀이 세계 39개국의 학교폭력과 소득분배 상황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빈부격차가 커질수록 학교 폭력피해율도 늘어난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발표했다.

분노의 감정은 정당하다. 무시받았을 때 '욱'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무시하지 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시시때때로 느끼는 모멸감과 그로 인한 분노는 과연 내 곁에서 함께 아등바등 삶을 버티며 살아가는 나의 '이웃'들에게서 온 것인가?
우리는 이 분노를 언제까지 개인의 인성, 혹은 정신 병력으로 퉁치고 말 것인가?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는 그의 책 <모멸감>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넘어 느끼는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모욕 감수성'을 우리가 함께 가질 것을 제안한다. 개인의 분노 감정을 넘어선 사회적 연대만이 이 분노사회를, 증오사회를 넘어서는 길임을 말하는 것일 터...

자, 이제 우리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똑똑히 직시하자!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우리를 싸움붙인 채 지금도 저 멀리서 우릴 비웃고 있다.


태그:#페미니스트,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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