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라는노래가 있습니다. 1973년 미국 팝 뮤직 그룹인 토니 올랜도 & 다운(Tony Orlando & Dawn)이 불러 크게 히트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에는 이런 사연이 들어 있습니다. 오랜 감옥 생활을 한 남자가 출소 전에 아내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만약 나를 용서하고 받아주겠다면, 우리 집 앞의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두시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리본이 없으면 그냥 떠나겠소." 남자는 만감이 교차한 얼굴로 차창 밖을 바라봅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보입니다. 참나무 전체를 노란 손수건이 온통 뒤덮고 있었다는 이야기.

너무나도 유명한 이 이야기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널리 불렸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야마다 요지 감독은 영화로도 만들었습니다. 1977년에 발표한 '행복의 노란 손수건(The Yellow Handkerchief, 幸福の黄色いハンカチ)'이 바로 그 영화입니다.

행복의 노란 손수건

 장대에 가득 걸린 노란 손수건은 사랑이며 믿음이었습니다.

장대에 가득 걸린 노란 손수건은 사랑이며 믿음이었습니다. ⓒ 쇼치쿠


이 영화는 일본의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습니다. 다케다 데쓰야가 1978년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Asia-Pacific Film Festival)의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일본 아카데미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및 6개 부문에 걸쳐 수상했습니다. 또 역대 일본 '흥행 베스트10'에 등재된 불멸의 로드 무비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세 사람이 동행이 되어 홋카이도를 향해 갑니다. 여자 친구에게도 차이고 회사에서도 잘린 청년은 분풀이라도 하는 양 퇴직금으로 빨간 승용차를 샀습니다. 기차 안에서 도시락을 파는 일을 하는 여자도 남자 친구의 배신으로 입은 상처를 달랠 겸 여행을 떠났습니다. 둘은 동승을 하게 되었고, 뒷자리에 또 다른 사람을 한 명 더 태웠습니다. 청년은 가볍고 유쾌했고, 뒷자리의 그 남자는 입이 무겁고 신중합니다.

이제 막 새순이 돋는 봄입니다. 높은 산에는 희끗희끗 눈이 쌓여 있지만, 들판에는 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습니다. 생면부지의 세 사람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됩니다. 입이 무거운 그 남자는 막 출옥한 사람이었습니다. 술김에 붙은 싸움으로 사람을 죽인 그는 6년 3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홋카이도로 향한 세 사람

 우연히 동행이 된 세 사람은 사랑과 치유의 여행을 합니다.

우연히 동행이 된 세 사람은 사랑과 치유의 여행을 합니다. ⓒ 쇼치쿠


'사랑하므로 헤어진다'는 말은 통속적인 유행가 가사 속에나 있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 남자가 그랬습니다. 살인죄를 짓고 감옥살이를 할 그를 기다리지 말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나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하며 아내를 보내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출옥한 그는 아내에게 엽서 한 통을 보냅니다. 만약 아직도 혼자 산다면, 그리고 나를 받아줄 생각이 있다면 집 앞 장대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놓으라고. 버스를 타고 그 앞을 지나다 노란 손수건이 보이지 않으면 영영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도쿄에서 홋카이도까지는 먼 길입니다. 그 여정은 쓸쓸한 듯 아름답습니다. 홋카이도를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차창 밖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탄광촌 마을인 '유바리'는 이 영화 덕분에 찾는 사람이 많은 유명한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본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 톱10'에 오를 정도로 사랑받는 영화의 무대이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까불대던 청년도 변해갑니다. 어떻게 하면 여자를 꾀어 품에 안아볼까 궁리하던 그가 진지해졌습니다. 남자와 그 아내의 순애보를 보고 변했습니다. 여자를 함부로 대하지 말고 진정으로 대하라는 남자의 충고를 그가 깨달았나 봅니다.

영화를 보노라니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정채봉 선생이 쓴 '노을'이란 동화입니다. 노을의 주인공도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십 년 동안 죗값을 치르고 이제 막 출소했습니다. 옛집을 찾아가는 길에 열 살짜리 소년과 동행이 되었습니다. 소년은 엄마를 보러 간다고 합니다.

'노을' 속 아이와 밀짚모자 아저씨

"간이역 지붕 위에 흰 구름이 한 송이 걸려 있었다. 철로 변에 있는 대추나무에는 올해도 대추꽃이 한창이었다. 오후 다섯 시 반에 완행열차가 도착했다. 내리는 손님 가운데 밀짚모자를 쓰고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가 있었다. 열 살 남짓해 보이는 눈이 큰 사내아이도 있었다." - 정채봉의 <노을> 중에서

 정채봉이 쓰고 이태호가 그린 동화 '노을'.

정채봉이 쓰고 이태호가 그린 동화 '노을'. ⓒ 효리원 출판사

정채봉 선생이 쓴 '노을'이란 동화를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열 살 소년 원이는 지금 엄마를 보러 가는 길입니다. 원이는 읍내에서 할머니와 살고 엄마는 지금은 댐이 생겨 수몰되어 버린 옛 동네에서 뱃사공을 하며 혼자 삽니다. 원이는 토요일마다 엄마를 만나러 갑니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아저씨와 동행합니다. 아저씨도 원이 엄마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예전에 살았다고 합니다. 그 아저씨는 머리카락이 짧고 눈동자는 깊숙합니다. 길 쪽으로 나와 있는 고구마 덩굴을 밀짚모자 아저씨는 일일이 들어서 밭 안쪽으로 돌려놓습니다. 고구마 덩굴이 길 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힐까 봐 그렇게 하나 봅니다.

원이는 아저씨에게 엄마 이야기를 해줍니다. 엄마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먼데 가셨는데, 살아서 가는 가장 먼 데에 갔다고 엄마가 원이에게 말해주었답니다. 아저씨도 먼 데에 가 있다가 지금 오는 길입니다. 장장 십 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고 합니다. 아저씨는 기다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동네가 보이는 고갯마루가 가까워지자 아저씨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아저씨는 벙어리가 되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저 아래 시퍼렇게 출렁거리고 있는 거대한 댐의 물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길을 잘못 든 모양이구나. 우리 고향에는 저렇게 큰 호수가 없었는데…." 아저씨의 목소리는 비에 젖은 지푸라기처럼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엄마를 본 소년이 달려갑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저씨는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습니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얼굴이 뱃머리에 오롯이 서 있었습니다. 여인의 얼굴도 순간 석고처럼 굳습니다. 두 뺨에 노을이 번졌습니다. 호수 속에 비친 세 사람의 모습을 노을이 환하게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믿고 기다려주는 것

전에 <노을>을 읽으면서 눈가에 맺힌 눈물을 조용히 훔쳤는데, 오늘 <행복의 노란 손수건>을 보면서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우직한 사랑이 묵직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사랑을 완성해 주는 것은 '신뢰'라는 것을 두 이야기는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노란 손수건은 사랑과 믿음의 징표였습니다. 그것은 또 기다림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깔끔하게 끝났습니다.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거나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장대에 매달려 있는 노란 손수건을 본 남자가 묵묵히 아내를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이 참으로 묵직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호들갑스럽게 달려가서 안기거나 그러지 않고 고개를 푹 꺾더니 천천히 얼굴을 들어 남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순정했습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사랑이었습니다.

노란 리본 행복의 노란 손수건 정채봉 노을 야마다 요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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