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를 위기에서 구해낼 적임자로 선택된 이는 신태용이었다. 최상의 선택이다.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해 시계추를 과거로 되돌리기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대한축구협회의 역할이라 보기 때문이다. 신태용 감독은 '난놈'이란 별명답게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능력이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지난 2008년 겨울, 신태용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38세에 친정팀인 성남 일화(현 성남 FC) 감독직을 맡아 팀을 챔피언 결정전에 올려놓았다. 2010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최고의 감독으로 떠올랐고, 이듬해에는 FA컵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선수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소통 능력이 빛났고, 비싼 값을 주고 모셔온 외국인 선수라도 훈련장에서 능력을 증명하지 않으면 실전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원칙이 돋보였다.

신태용 감독이 한국 축구를 구원할 적임자라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2016 리우 올림픽과 2017 U-20 월드컵에서 거둔 호성적 때문이다. 신태용 감독은 2015년 1월 급작스럽게 백혈병에 걸린 고(故) 이광종 감독의 뒤를 이어 U-23 대표팀을 맡았다. 직전 대회였던 2012 런던 올림픽과 비교해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대다수였지만, 신태용 감독은 주눅 들지 않았다.

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일본에 아쉬운 역전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본선 진출에는 문제가 없었다. 본선에서는 더욱 빛났다. '디펜딩 챔피언' 멕시코, 강력한 우승 후보 독일, 최대한 큰 점수 차로 격파해야 했던 피지와 한 조에 속해 조별리그 통과도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신태용호는 당당히 조 1위를 차지하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약체로 평가받는 온두라스에 패하며 2대회 연속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도전에 '실패' 딱지를 붙일 수는 없었다. 2009 U-20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거쳐 2012 런던 올림픽에 도전했던 홍명보 감독과 비교하면, 준비 기간과 지원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미 국가대표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던 기성용과 구자철, 김보경, 정성룡 등과 비교해 2016 리우 올림픽 핵심 멤버였던 류승우, 문창진, 권창훈, 최규백 등은 이름값에서도 밀렸다. 그런데도 피지를 대파했고, 독일과 대등하게 싸웠으며, 멕시코를 눌렀다.

신태용 감독의 U-20 월드컵 도전은 더 대단했다. 대회 개막을 6개월여 앞둔 시점에 감독직을 수락해 팀을 빠르게 재정비했고, 다양한 전술과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이며 박수를 받았다. 대회 최다 우승국 아르헨티나, 2017 U-20 월드컵 우승국 잉글랜드, 미지의 팀 기니와 한 조에 속해 우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만, 신태용호는 가장 먼저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16강에서 만난 포르투갈에 일격을 당하며 대회를 마무리해야 했지만, 신태용호의 도전은 '실패'가 아닌 '성공'이었음은 확실했다. 아시아 예선(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하는 팀이 세계무대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했는데 어찌 '실패' 딱지를 붙인다는 말인가. 신태용 감독이 아니었다면, 2016 리우 올림픽과 2017 U-20 월드컵에서 우리가 조별리그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1년짜리 감독 신태용', 협회가 제시한 계약 기간은 최선이었나

지금의 한국 축구에서 가장 잠재력이 뛰어난 감독은 신태용이다. 중국과 카타르에도 이기지 못하는, 2015 U-20 월드컵은 물론 2017 U-20 월드컵도 개최국이 아니었다면 출전하지 못했을 우리나라 축구 현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신태용 감독은 국가대표팀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까지로 못 박힌 계약 기간이 마음에 걸린다. 영웅이었던 홍명보를 잃었듯이 신태용 역시 허무하게 대한민국 축구판을 떠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2018년 6월 14일에 개막하는 러시아 월드컵이 1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신태용은 또다시 짧은 시간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올림픽과 U-20 대회처럼 성과를 낸다면 다행이겠지만, 월드컵은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세바스티안 소리아(카타르)나 우레이(중국)를 수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나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를 막아야 하는 곳이 월드컵이다. 전 세계 어디서도 보지 못한 수비형 스트라이커가 등장하는 국가대표팀이 지오르지오 키엘리니(이탈리아)나 디에고 고딘(우루과이)을 뚫어내야 한다.

이란 원정에서 유효 슈팅 1개도 시도하지 못했던, 중국과 카타르도 잡아내지 못하는 팀이 1년 안에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설 수 있는 팀으로 변하는 것이 가능할까. 월드컵은 경험하는 곳이 아닌 증명하는 자리란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한국 축구의 현실을 고려할 때,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증명'이 아닌 '경험'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새롭게 시작하는 팀에게 가혹할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현실을 제대로 알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2012 런던 올림픽 성적에 대한 기대로 인해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시한부 감독'과 한심한 준비 과정이 반복됐지만, 모든 책임은 일말의 기대를 떠안았던 홍명보만의 몫이었다. 이제라도 현실 인식과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변화 의지는 없어 보인다. 신태용이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산임이 확실함에도 대한축구협회는 결과를 요구한 느낌이다. 홍명보의 퇴장이 전하는 교훈을 금세 잊어버린 기분이다.

자칫 잘못하면 신태용 감독은 데뷔전부터 흔들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에서 4승 1무 3패(승점 13점)를 기록하며 2위에 올라있다. 3위 우즈베키스탄에 승점 1점 차로 앞서있다. 문제는 신태용호의 데뷔전이 A조 1위 이란이란 사실이다. 이란은 8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이란과 최근 4경기에서 4연패 중이다.

이란전이 꼬이면, 우즈베키스탄과 단두대 매치를 벌어야 한다. 4경기에서 1무 3패로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원정에서 말이다. 여기서도 미끄러지면 B조 3위와 플레이오프를 치를 가능성이 있고, 그 상대는 일본이나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중 한 팀이다. 여기서 극적으로 이긴다 해도 북중미 4위와 또 싸워야 한다. 신태용 감독은 시작부터 첩첩산중인 셈이다.

냉정하게 2018 러시아 월드컵은 기대 없이 지켜봐야 하는 무대가 됐다. 3년의 준비 과정이 실패로 끝났고, 원칙이 사라진 국가대표팀은 중국과 카타르도 이기지 못하는 팀이 됐다. 그런데 어떻게 본선 무대에서 호성적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조세 무리뉴나 알렉스 퍼거슨이 우리 국가대표팀을 지휘한다 해도 16강 진출 이상의 성적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아쉬움의 농도가 더욱 진해진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이 힘들다면, 최소한 2019 AFC 아시안컵(개최국 UAE)까지는 신태용 감독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2018 러시아 월드컵 성적에 대한 책임이 또다시 감독만의 것이 아니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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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 신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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