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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할 때 우리는 어떤 인사로 아침을 맞을까. 눈을 뜰 때 햇살을 마주하며 웃을까.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친구를 보며 반갑다고 손을 흔들게 될까. 각자가 맞이하는 인사는 다르다. 길을 걸을 때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닥을 보며 길을 걷는 사람이 있고, 발바닥이 떨어지기도 전에 후다닥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꿈치부터 살살 걷는 사람이 있다. 모두 다른 걸음걸이처럼 모두 다른 개성으로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알바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반갑습니다. 투썸입니다!" 고객님을 응대할 땐 항상 이 말로 시작한다. 내가 일하는 투썸플레이스는 cj계열 카페로 유니폼, 레시피를 비롯해 인사말과 응대 방법, 제휴 카드에 대한 안내가 명확히 정해져 있는 기업형 카페다. 처음 인사말은 "반갑습니다" 마지막 인사말은 "감사합니다 또 뵙겠습니다"이다.

처음 카페에 들어왔을 때 이전 카페에서 하던 습관 때문에 "안녕하세요"하고 말했다가 "여기선 '반갑습니다'라고 하는 거야" 라는 말을 들었다. 매장에 들어와 캐비닛에서 모자를 꺼내 쓰고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 나의 세계는 모두 사라진다. 나의 인사법, 나의 습관은 사라지고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알바생이 되는 것이다.

지난 2년간 개인 카페 혹은 개인 식당에서 일하던 내가 '투썸 플레이스'라는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로 진입했을 때 제일 놀란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자칫하다가 고객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본사에 컴플레인이라도 들어간다면 잘못한 점을 즉시 시정하고 사과하여 더 나은 매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기서 더 나은 매장은 더 많은 규칙과 규율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무균실과도 같다.

우리 매장은 역 바로 아래 있는 100평 정도의 규모다. 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잠깐 들리기에 부담이 없고, 넒은 공간으로 인해 친구들과 지나가다 들려 수다 떨기에도 좋은 위치다. 주변 카페와는 다르게 흡연실이 있어 흡연자들도 많이 방문한다. 따라서 하루 매출 이백만 원이 넘는다.

우리는 주로 세 명이 매장을 관리하는데 한 명이 주방에 들어가 케이크 생산을 하면 두 명이 매장을 본다. 한 명은 포스를 보고 한 명이 음료를 만든다. 내가 일하는 저녁 시간엔 음료 만들기와 기계 마감, 매장 청소까지 하다 보면 잠시 앉아있기는커녕 쉴 새 없이 뛰어다니기 일쑤다.

사실 손님이 없어도 앉아 있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먼지를 닦거나 냉장고에 묻은 얼룩을 지우거나 홀을 돌며 쓰레기를 버리거나 없는 일을 찾아 끊임없이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약 6시간이 넘도록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발이 퉁퉁 부어있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매장에서 1년이 넘도록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주휴수당과 야간수당을 챙겨주기 때문이다.

대부분 매장은 주휴수당과 야간수당을 챙겨주지 않는다. 나는 이전에 일하던 카페를 나올 때 주휴수당을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매우 곤란한 경험이었다. 정을 빌미로 돈을 달라는 배신자로 찍히게 되는 과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일하는 매장은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될뿐더러 주휴수당을 챙겨주지 않는 매장에 비해 월 10만 원 정도를 더 벌면서 일할 수 있다. 어차피 동일한 시간 일하는 거라면 몸이 조금 힘든 대신에 돈을 더 벌겠다는 목적이다.

돈을 번다는 목적 아래 모인 우리는 동료라는 이름으로 삶을 나눈다. 유난히 동갑이 많은 매장에서 독립을 준비하는 A(남·24)는 극단에 들어가기 위한 생활비를 번다. 하루에 8시간씩 주 6일 근무를 강행한다. 달마다 들어오는 돈은 차이가 있지만 많이 일할 때는 150만 원, 적게 벌 때는 12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여기서 60만 원은 다달이 적금을 들고 10만 원은 따로 돈을 모으고 약 50만 원 정도로 생활을 유지한다.

하루 쉬면서도 6일을 일하는 이유는 명확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너 나중에 유명해지면 모른 척하면 안 된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찾아오게 될 빛나는 미래를 위해 이곳에 삶을 바친다. B는(여·24) 다음 학기에 갈 교환학생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한다. 유럽에서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알바를 하기가 어려우니 미리 돈을 모아 빠듯하게 생활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몇 달 뒤 가게 될 유럽 생활을 꿈꾸며 알바를 한다.

나는 학교에 다니며 빈 시간에 알바를 한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면서 생활비를 직접 벌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학교 다니면서 알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8시간 정도. 한 달 일하면 55만 원 정도를 번다. 월세와 교통비는 부모님이 내주시고, 핸드폰 비와 인터넷 비 10만 원, 관리비10만 원을 내고 나면 35만 원 정도 남는다.

35만 원으로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고 생각해보자. 6000원짜리 밥 두 끼를 먹으면 하루에 1만2000원, 한 달이면 36만 원이다. 부족한 셈이다. 커피를 마시거나 친구 생일 선물이라도 산다면 편의점에서 때우거나 거르거나 한다. 만약 내가 부모님의 지원을 하나도 안 받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할 만큼 알바비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부모님의 지원 없이 생활비를 버는 친구들이 대다수다. 지금 버는 시급 6470원으로는 우리 매장에 있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먹을 수도 없는 가격이다. 그리고 내가 버는 55만원은 내가 쉴 수 있는 시간과 맞바꾼 돈이다. 과제가 많을 때면 잠을 자는 시간을 줄이며 생활을 할 때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도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없는 세상이 나의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의 세상이다.

밤 11시 30분, 하루가 가기 30분을 남겨두고 매장을 정리한다. 종일 틀었던 팝송을 끄고 매장문을 닫으면 30분간의 청소시간이 주어진다. 바닥을 쓸고 설거지를 하고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이 시간만큼은 우리들만의 시간이다. 원하는 가요를 크게 틀어놓고 쓱싹쓱싹 걸레질을 한다. 일하는 내내 감추었던 자기만의 스타일로 몸을 흔들며 일을 마친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말을 한다고 모두가 같은 하루일까. 나는 하루의 1/4인 6시간에서 1/3인 8시간이 넘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하루를 관통하는 시간이다. 함께 문을 닫으며 내일을 기약하는 친구들의 하루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수고했어" 신호등이 꺼진 횡단보도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우리는 하루가 값지다고 위로를 한다.

노동은 분명 값진 일이다. 함께 하는 이들과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더하기에 값지다. 그리고 내가 만든 커피를 손님이 맛있게 먹기에 기쁘다. 열심히 닦은 바닥이 반짝반짝 빛나기에 기쁘다. 하지만 식대가 나오지 않아 저녁을 거르고, 쉬는 시간이 부족해 허겁지겁 밥을 먹는 시간이 기쁘다 말할 순 없다. 월급이 들어와도 그동안 밀린 돈이 빠져나간 통장의 잔고를 걱정하는 삶이 빛난다고 말할 수 없다.

밤 12시, 오늘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부은 발을 어루만진다. 나는 오늘 하루가 보람찼을까. 딩동. 함께 일한 친구가 아직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문자가 왔다. 12시가 넘었지만,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 건 사치다. 눈을 감는다. 내 친구의 밤길이 좀 더 안전해지기를 바란다. 창문 밖으로 퍼지는 현란한 도시의 불빛들이 감은 눈을 방해한다. 이 불빛 또한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는 누군가의 땀이겠지. 다시 눈을 감는다. 우리들의 하루가 형형색색 빛나기를 바란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두들 "굿나잇" 하고 잠들 수 있는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 ''굿 나잇'할 수 있는 하루가 올까'는 알바들의 대변인, 고 권문석 4주기 추모 알바노동자 수기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강솔비 님의 글입니다.
고 권문석(알바연대 대변인)은 2013년 6월 2일 최저임금 1만원과 기본소득을 알리는데 헌신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뜻을 이어 최저임금 1만원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한 수기공모전은 2016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2회차를 맞았습니다.



태그:#최저임금, #기본소득, #최저임금1만원, #노동자,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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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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