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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딱 붙어있는 두 눈을 더욱 꾹 감는다. 잠결이지만 몽롱한 정신을 간절히 붙잡아 두 손을 모은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기도 제목 두 가지가 있다. "내가 무너지지 않게 나를 보호해달라는 것"과, "오늘도 잘 '버틸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

나는 항상 내 삶에 주어진 선택지들 앞에 한참을 고민하는 사람이고, 자주적인 삶을 꾸리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이런 나는 늘 독립을 꿈꾸었으며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다. 나는 나의 한 시간이 만 원보다 더 가치 있다 여겼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다섯 번 면접을 실패한 뒤 주휴수당도 주지 않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다.

물건을 가져오라고 시키거나 캔 뚜껑을 따라고 시키는 것은 일상적이었다. 화장법에 대해 지적하거나 웃어보라고 시킨 사람도 있었다. 반말까진 참았지만 소리 지르고 욕하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나랑 사귀면 돈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술에 취해선 옆으로 와보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있었다. 눈빛이 섹시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건을 던지거나 짜증을 내며 독촉하는 사람들 앞에선 정신이 혼미해졌다. 심장이 빨리 뛰었고 손이 떨렸다. 자주 그랬다. 그렇게 일해서 하루에 번 돈이 겨우 5~6만 원이었다. 그것이 내가 쏟고 들인, 소모하고 태운, 잃고 상처받은 것들에 대한 대가였다.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음식을 먹다가 탈이 나면 병원을 가야 했고, 나는 병원비 앞에서 또 비굴해졌다. 내 존재가 너무 초라해져 괜히 스스로에게 화를 낸 적도 있었다.

'폐기' 먹고 매일을 버텨내는 나... '그러려니' 하라니

편의점 음식
 편의점 음식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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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내 삶에 주어진 선택지들 앞에 한참을 고민하는 사람이었고, 자주적인 삶을 꾸리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하지만 삶이 '살아내는 것'이 아닌 '버텨내는 것'이 되어버린 오늘날, 나는 이 비정상적인 세계에서 나의 존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참을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 속에 나는 이것이 실패가 아님을 끝없이 되뇌어야 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괜찮다는 말을 반복해야만 그 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다.

사장님은 '그러려니 해라'라는 말을 자주 했다. 편의점 사정이 좋지 않으니 주휴수당 챙겨주기가 힘들다, 최저임금 주는 곳도 많지 않은데 이것에 만족하고 그러려니 해라, 손님들의 편의를 위한 감정노동은 일상적인 것이며 그러려니 해야 네게도 더 좋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바로 이 '그러려니'로 돌아간다. 자본은 노동자에게 부당한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가르친다. 악착같이 버텨내는 사람만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라고, 이렇게 치열한 와중에 어떻게 그 사소한 불편함들을 하나 하나 따지고 있겠냐고 말한다. 그렇게 그러려니 하는 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시장이 돌아가고 자본이 창출된다. 그리고 이 과열된 시장 속에서 사람의 존재성과 삶, 인권은 사소한 것들로, 유보될 수 있는 것들로, 소모되고 태워진다.

그러려니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사람들, 그들의 약속은 한결같았지만 모두 내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무엇인가. '사람'인 나는 노동력이자 돈으로 살 수 있는, 그러니까 최저임금 6470원이면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어떤 '수단' 혹은 '도구'였다. '수단'과 '도구'는 제 목적에 맞게 쓰여야 그 쓰임새를 인정받는다. 나는 고용자의 이윤 창출을 위해 웃음을 팔고 감정을 팔고 얼굴을 팔며 때에 맞게 인권을 팔아야 그 쓰임새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딱 붙어있는 두 눈을 더욱 꾹 감는다.
 이른 아침 딱 붙어있는 두 눈을 더욱 꾹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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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논리대로라면 수요 공급 원리에 의해 정해진 통상가격이 판매물품의 원재룟값보다 낮으면 장사를 그만두는 것이 맞다. 노동시장에 공급(노동력)이 많아져 통상임금이 낮아질 때, 그 값이 노동력의 가치만큼 높지 않다면 그 장사는 엎어버려야 한다. 우리의 노동력의 가치는 어떻게 측정되는가? 무엇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사실 사람은 시장에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식의 비유도 불편하다.

물건은 돈 주고 사면 주인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사람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닐뿐더러 고용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도록, 적어도 죽지 않도록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받아야 하고, 인격적으로 대우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개입된 시장의 기본적인 질서여야 한다. 하지만 '노동권'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공허해졌다. 속이 텅 빈 단어처럼, 현실적이지가 않다. 우리에겐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더 당연한 이야기, 당연해져야 하는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러한 바람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근로계약서 써달라는 말, 주휴수당 챙겨주냐는 물음들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일하다가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사과하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그런 나를 지지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하기 싫은 일은 싫다고 거절할 수 있기를, 거절해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일하면서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바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아파서 하루 쉴 때 생계의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짐이 많은 날 망설임 없이 택시를 잡고, 택시비를 밥값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폐기 먹기 싫은 날에는 망설임 없이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맛있는 거, 몸에 좋은 거, 먹고 싶은 거 먹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부담 없이 영화도 보고, 방학 때는 한 번쯤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도 삶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삶을 원한다.

한 시간이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책을 읽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거나, 사랑하는 반려견과 원 없이 산책을 하고, 영화 한 편을 볼 수도 있으며, 글을 쓰고 그림 한 점 완성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보다 더 다양한 일들로 채울 수도 있다. 이 시간들은 사실 1만 원보다 훨씬 값지다. 한데 우리는 이 한 시간 동안 사람대접도 못 받으며 1만 원조차 벌지 못한다. 대부분이 먹고 살기 위해 알바를 한다.

이제 우리는 버티고 '그러려니' 하며 현실로 가져오지 못했던 이 모든 당연한 바람이 내 당연한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더 이상 실패와 좌절로 인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삶이 아니라, 버텨내고 참아내는 삶이 아니라, 삶은 '삶(살아냄)'이 될 수 있게, 안전하게 보호받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채워나가는 것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알바들의 대변인, 故권문석 4주기 추모 알바노동자 수기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백소민 님의 글입니다.
故권문석(알바연대 대변인)은 2013년 6월 2일 최저임금 1만원과 기본소득을 알리는데 헌신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뜻을 이어 최저임금 1만원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한 수기공모전은 2016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2회차를 맞았습니다.



태그:#최저임금, #최저임금1만원, #기본소득, #아르바이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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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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