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작품 속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으면서 권력에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위기를 그리며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을 선보였던 박경수 작가. 그의 신작 <귓속말>은 이보영과 이상윤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귓속말>은 박경수 작가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정의로운 판사였던 이동준(이상윤 분)은 정의롭다고 여겼던 판결 때문에 법정에 서지 못할 위기를 맞았고, 이 때문에 양심에 거스르는 판결을 내리는 조건으로 대기업 회장인 최일환(김갑수 분)이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된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에서 생겨난 피해자 신영주(이보영 분)는 아버지에 대한 불합리한 판결을 인정할 수 없고 복수의 칼날을 들이댄다. 선과 악, 그리고 권력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강약조절에 실패한 스토리..주인공들의 매력도 반감

ⓒ SBS


초반부 스토리는 이동준이 받는 압박으로 흘렀다. 이동준은 신념을 버렸다는 양심에 가책은 물론, 신영주와 최일환의 딸 최수연(박세영 분), 최수연의 연인 강정일(권율 분) 등 사방을 둘러싼 적들에게 고통받아야 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는 지옥과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서 <귓속말>의 첫 번째 오류가 생겼다. 17회 내내 남자 주인공을 향한 압박을 보여주는 통에, 시청자들은 내내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드라마는 피곤함을 안겨줬다.

여기에 '섹스비디오'로 협박을 하는 여주인공 신영주는 초반부터 매력 발산에 실패한다. 아버지가 받은 부당 판결에 대한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신영주의 '막무가내식' 몰아붙이기는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가 됐다. 상황과 현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계획이 아니라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라며 떼를 쓰는 모습은 여주인공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방해한다.

초반부의 답답한 전개를 딛고, 이동준과 신영주는 같은 편에 서게 되고, 둘의 멜로가 진행됐다. 하지만 드라마의 서사는 이들의 감정에 이입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매회 일어나는 사건과 반전은 시청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보다는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이 해결될 때쯤에 터지는 새로운 위기와 반전은 놀라움이 아닌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느껴졌다. 이는 사건의 강약조절에 실패한 스토리라인의 탓이 가장 크다. 적절한 순간에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찬사를 받지만, 마치 패턴처럼 반복되는 반전에 대한 호기심은 일지 않는다. 반전에 대한 시청자들의 긴장감은 사라졌고, 으레 이쯤에서 다른 상황이 터져 나오겠거니 예상하게 했다

주인공 보다 악역에 집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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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는 이보영과 이상윤은 매력을 잃고 말았다. 연기마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였을 정도다. 형사 출신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보영의 말투나 액션은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기보다는 이전의 지적이고 깔끔한 이보영의 이미지에 갇혀있었고, 이상윤의 심각한 표정과 낮게 깔린 목소리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기계적으로 느껴졌다.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풍성하게 만든 것은 악역을 소화한 권율이었다. 권율이 소화한 강정일 캐릭터는 주인공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애인의 배신이나 아버지의 죽음 등을 계기로 복잡해지는 감정의 진폭을 표현하는 권율의 연기는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주인공들에 대한 매력이 반감되고 악역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자, 드라마의 중심축이 흔들렸다. 악인을 처단하는 통쾌함에 초점을 맞출 수도 없고, 주인공들의 처절한 고군분투에 공감이 가지도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이 모호해지면서 드라마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졌다.

주인공들에 대한 힘이 떨어지자 멜로라인에 대한 관심 역시 줄어들었다. '성인의 멜로'를 보여주겠다던 포부가 무색할 정도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지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고, 멜로에는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었다. 결국 드라마는 주인공들에 대한 매력을 설명하는 데 실패하고만 셈.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으나 과연 작가와 배우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낸 드라마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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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귓속말 이보영 이상윤 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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