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순위 판도가 개막 초반의 혼전 양상을 벗어나 서서히 상·중·하의 서열이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의 판세는 3강 6중 1약의 구도다. 나란히 20승 고지를 돌파한 기아-NC-LG가 3게임 이내의 촘촘한 격차로 상위권 선두 경쟁을 펼치고 있다. 4위 SK부터 공동 8위 한화-KT까지 6팀간 격차는 2.5게임에 불과하다.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삼성만 아직까지 두 자릿수 승리 고지에 오르지 못하며 고립된 섬처럼 홀로 외떨어져 있다.

개막 직전 전문가들의 전망과 비교할 때 가장 예상과 벗어난 부분은 역시 디펜딩 챔피언 두산의 부진과 삼성 왕조의 몰락, 그리고 기아의 약진을 꼽을 수 있다. 우선 한국시리즈 3연패에 도전하던 두산이 이렇게 고전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일방적인 독주체제를 예상했지만 정작 두산은 14승 1무 17패로 5할승률에도 못미치는 모습을 보이며 7위에 머물러있다. 지난주 잠실 라이벌 LG와의 어린이날 시리즈에서는 3연전 스윕패의 굴욕을 당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벌써 개막 6주차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두산은 좀처럼 지난 시즌의 압도적인 포스를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두산이 지난 시즌 독주체제를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타선도 있지만 역시 '판타스틱4'로 요약되는 막강한 선발진의 힘이 컸다. 지난해 두산이 거둔 93승 중 선발승만 75승이었고 이중 70승을 더스틴 니퍼트-마이클 보우덴-장원준-유희관의 4인방이 합작했다.

 3월 3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개막전 두산 대 한화 경기. 두산 선발 니퍼트가 7회초 역투하고 있다.

3월 3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개막전 두산 대 한화 경기. 두산 선발 니퍼트가 7회초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보우덴(1패 평균자책점 7.11)이 어깨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며 선발진의 한축에 구멍이 났고, 장원준(2승 3패 평균자책점 4.15)과 유희관(2승 1패. 4.34)의 구위도 예년만 못하다. 에이스 니퍼트(3승 2패 평균자책점 2.33)만이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두산은 지난해 팀 평균자책점(4.45)과 선발 평균자책점(4.11)이 모두 리그 1위였다. 그러나 올해는 팀 평균 4.60(7위)-선발평균 4.50(6위)에 머무르고 있다. 퀼리티스타트도 13회로 5위, 선발승은 10승으로 6위다. 지난해보다 스트라이크존이 더 넓어지면서 타고투저 현상이 크게 완화된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마운드의 약화는 더 큰 셈이다.

두산이 주춤하는 사이 상위권으로 치고올라온 기아와 LG-NC는 순항하고 있다. 기아와 LG는 이미 올시즌 강력한 다크호스로 거론된 바 있다. NC도 에릭 테임즈와 재크 스튜어트 등 외국인 선수들의 공백에도 재비어 스크럭스-재프 맨쉽 등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이 제몫을 해내며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해의 두산이 그러했듯 올시즌 상위권 팀들의 공통적인 성공 비결도 막강한 선발야구다. 기아는 양현종-헥터 노에시-팻 딘-임기영으로 이어지는 타이거즈 버전의 판타스틱 4를 구축했다. 기아는 팀평균자책점이 4.20으로 전체 4위에 불과하지만 선발투수 평균자책점만 놓고보면 3.00으로 10개 구단 중 당당히 1위를 달리고 있다. QS(22회)와 선발승(18승)도 전체 1위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 기아의 선발투수 양현종이 역투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 기아의 선발투수 양현종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양현종과 헥터 노에시가 벌써 나란히 6승씩 챙겼고, 4선발로 부상한 임기영이 4승을 따내며 깜짝 활약을 펼치고 있다. 양현종(1.52)-임기영과 헥터(이상 1.99) 등 무려 세 명의 선발이 1점대 자책점을 기록중이다. 빅4 중 상대적으로 승운이 안따른 팻 딘(2승)도 자책점 2.92로 다른 팀 같았으면 에이스급이다. 기아는 287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선발 4인방이 벌써 187.1이닝을 책임지며 출중한 이닝 소화력을 과시하고 있다.

옥의 티는 역시 불펜과 5선발이다. 막강한 선발진과 달리 불펜의 평균자책점은 7.04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KBO 통산 2번째로 250세이브를 수확한 베테랑 임창용의 구위가 살아났고, 불펜으로 전환한 김윤동도 허리진에 힘을 보태면서 뒷문 불안이 개선될 희망을 남겼다. 선발진의 남은 한 자리를 놓고 김윤동, 홍건희, 고효준, 김진우 등이 연이어 테스트를 받았으나 아직까지 기대를 충족시킨 투수가 없다는 것이 기아 마운드의 마지막 고민거리다.

투수력에서 기아의 대항마가 될 만한 팀은 현재 LG를 꼽을 수 있다. 류제국(6승1패 평균자책점 3.05), 헨리 소사 (4승2패 자책점 2.23), 차우찬(3승 2패 2.52)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안정적이다.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던 4, 5선발도 임찬규(2승 1패 자책점 1.30)와 김대현(2승 2패 평균자책점 5.65)이 최근 나란히 연승행진을 이어가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여기에 LG는 신정락, 정찬헌, 김지용 등이 버티는 불펜조차 탄탄하여 마운드의 깊이 면에서는 오히려 기아보다도 한수위다. LG는 현재 10개구단 중 유일하게 팀 평균자책점 2점대(2.78)를 기록중이며 심지어 불펜 자책점은 2.26에 불과하다. 홀드(25개)와 세이브(11개) 모두 리그 1위다. 심지어 LG의 지난 주간 6경기 평균자책점은 불과 2.00이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LG가 아직 에이스 데이비드 허프와 마무리 임정우가 전력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 정도라는 것이다.

팀 순위 2위를 기록 중인 NC는 팀 평균자책점은 3.97로 리그 3위를 기록중이다. 외국인 원투펀치와 불펜의 활약이 돋보인다. 새 얼굴 제프 맨쉽이 6전 전승에 평균자책점 1.69. 에릭 해커가 3승 무패 평균자책 3.13으로 준수한 활약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토종선발진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최금강(3승1패 3.94)이 분전하고 있지만 다소 기복이 있고, 장현식(1승 1패 평균 자책점 6.56), 구창모(1승 5패 평균 자책점 7.76) 등 김경문 감독이 기대했던 젊은 투수들의 부진이 아쉽다. 그나마 구원과 홀드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는 임창민(10세이브)과 원종현(10홀드)을 중심으로 한 필승조의 안정감이 토종 선발진의 불안감을 상당히 메워주고 있다.

반면 올 시즌 동네북으로 전락한 삼성은 팀 평균자책점이 무려 6.27이다. 삼성을 제외하면 5점대 이하의 자책점을 기록한 팀도 없다. 심지어 지난 주간 평균자책점은 7.98에 이르렀다. 선발(6.62)과 불펜(5.97) 모두 최악이다. 피안타(327개)만 2위고 피홈런(37개)과 사사구(162개), 실점(218점) 등에서 모두 1위를 독점할 만큼 긍정적인 기록이 하나도 없다.

이처럼 마운드에 따라 각 팀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양상이 뚜렷하다. 야구가 왜 투수 놀음이라고 부르는지를 기록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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