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서울 삼성 썬더스와 안양 KGC 인삼공사의 경기에서 승리해 우승을 차지한 안양 KGC 선수들이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서울 삼성 썬더스와 안양 KGC 인삼공사의 경기에서 승리해 우승을 차지한 안양 KGC 선수들이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6-17 프로농구 통합 우승팀 안양 KGC 인삼공사는 역대 KBL 우승팀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챔피언으로 꼽힌다. 창단 최초로 정규시즌에 이어 챔피언전까지 석권하며 실력만으로 명실상부한 올시즌 프로농구 최강팀으로 손색이 없지만, 한편으로 유독 크고 작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미 정규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키퍼 사익스를 둘러싼 교체 논란에서부터, 김철욱의 발걸기, 이정현의 플라핑 등이 잇달아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챔프전 2차전에서 벌어진 이정현과 삼성 이관희의 충돌을 기점으로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일련의 해프닝 속에서 인삼공사는 본의 아니게 코트의 '악역' 이미지가 굳어졌고, 극적인 명승부에 이은 우승에도 불구하고 역대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챔피언이 됐다.

사실 인삼공사가 논란의 팀이 된 것은 올해부터 갑작스럽게 발생한 문제는 아니다. 인삼공사가 KBL의 강호로 부상하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 조금씩 부각된 현상이다. 전신인 SBS와 KT&G 시절을 포함하여 이전까지만 해도 인삼공사는 오히려 화제성과는 가장 거리가 먼 팀이었다. 매년 6강 언저리를 들락거리는 팀 성적에 이렇다 할 인기스타나 프랜차이즈 선수도 많지 않았고 투자를 안 하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인삼공사가 농구계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것은 2009년 파격적인 리빌딩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인삼공사는 당시 양희종-김태술 등 주력선수들을 한꺼번에 군입대시키고 신인 드래프트를 노려서 오세근-이정현-박찬희 등을 잇달아 영입하며 리빌딩에 돌입했다. 인삼공사는 2011-12시즌 정규시즌 2위에 올라 챔프전에서 당시 정규리그 최다승을 기록한 원주 동부를 물리치고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첫 정상에 올라 리빌딩의 성공을 증명했다.

하지만 인삼공사가 리그의 강팀으로 부상하면서 늘어난 유명세만큼이나 논란거리도 증가했다. 인삼공사가 시도한 주축 선수 동반 군입대-성적 포기-신인드래프트 상위 지명권 확보 등으로 이어지는 리빌딩 방식은 이후 다른 구단들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2010년대 초반 LG(김종규)-KCC(김민구) 등으로 이어지는 '탱킹' 논란이 심화되는 데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KBL은 한선교 전 총재 시절 프로농구를 강타한 승부조작-고의 태업 논란 등과 관련하여 신인드래프트 우선 지명권 제도까지 수정하는 후폭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깡패공사' 코트 매너, 규정 위반은 아니지만...

 23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2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삼성 이관희와 인삼공사 이정현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23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2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삼성 이관희와 인삼공사 이정현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코트 매너 논란도 여러 번 도마에 올랐다. 안티팬들 사이에서 인삼공사는 터프한 플레이로 인하여 오래 전부터 '깡패공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양희종의 끈끈하다 못해 거친 수비와 이정현의 과도한 할리우드 액션이 논란의 중심에 떠오른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다.

특히 올해 이정현과 이관희의 충돌이 있었다면 인삼공사가 첫 우승을 차지했던 5년 전 챔프전 당시에는 양희종과 윤호영(동부)의 갈등이 있었다. 양희종은 당시 "윤호영은 동부에 있기 때문에 윤호영이다" 등 거침없는 도발로 경기 외적으로도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처음엔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갈수록 선을 넘은 '어그로성' 발언에 구단에서까지 자제를 요청할 정도로 분위기가 악화됐다.

결국 챔프전이 끝난 후에도 양팀 선수들에게 한동안 앙금으로 남는 등 후유증이 컸다. 공교롭게도 5년 전의 양희종이나 올해의 이정현같이 당시 챔프전의 '악역'을 전담하던 선수들이 인삼공사의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위닝샷의 히어로가 되었다는 것도 묘한 평행이론이다.

물론 인삼공사 입장에서는 이런 악역 이미지로 굳어진 것이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인삼공사 구단과 선수들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들이 비평의 대상이 될수는 있지만 어쨌든 적어도 '룰'의 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2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경기에서 인삼공사 사익스가 덩크슛을 성공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2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경기에서 인삼공사 사익스가 덩크슛을 성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삼공사의 파격적인 리빌딩 방식이나 사익스-마커스 블레이클리의 외국인 선수 교체를 둘러싼 해프닝, 이정현의 빈번한 플라핑 논란에 이르기까지, 인삼공사가 비록 '제도의 빈틈이나 허점을 악용했다'는 지적은 받을수 있어도, 규정을 위배한 것은 아니다. 발걸기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던 김철욱같이 명백히 룰에 위배된 행위를 한 경우에는 징계를 받았다. 양희종이나 이정현도 "잘못한 부분은 수용하지만 너무 한쪽만 나쁘게 몰아가는 것 같아 서운하다"며 인삼공사를 향한 지나친 비난 여론에는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프로스포츠에서 챔피언이 악역이 되는 것이 드문 일만은 아니다. NBA에서 1980-90년대 '배드보이즈'로 불리며 거친 플레이로 악명을 떨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는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의 대항마로 통했다. 축구의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나 바이에른 뮌헨(독일), 야구의 뉴욕 양키스(미국), 요미우리 자이언츠(일본) 등은 자국리그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시절,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선수 싹쓸이 등으로 시장 질서를 해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성적과 인기가 높아질수록 안티도 비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인삼공사 악역 논란, 한국농구 구조적인 문제

 지난 2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서울 삼성 썬더스와 안양 KGC 인삼공사의 경기에서 안양 KGC가 승리해 우승을 차지했다. 안양 KGC 선수들이 김승기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서울 삼성 썬더스와 안양 KGC 인삼공사의 경기에서 안양 KGC가 승리해 우승을 차지했다. 안양 KGC 선수들이 김승기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으로 인삼공사를 둘러싼 악역 논란은 KBL와 한국농구의 구조적인 문제가 투영된 부분이기도 하다. 인삼공사식 리빌딩이나 외국인 선수 교체 논란은 사실 KBL의 '전력평준화' 집착이 빚어낸 기형적인 제도의 후유증이라고 할수 있다. 가뜩이나 선수층이 부족한 국내 농구판에서 FA나 트레이드를 통한 선수 이동에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기 때문에 구단들은 어쩔 수 없이 신인드래프트나 외국인 선수 영입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 인삼공사가 룰의 범위 내에서 '꼼수'를 썼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리그 환경이나 구단 사정을 감안하면 불가피했다는 옹호론도 만만치않다.

챔프전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이정현은 어느새 국내농구에서 플라핑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선수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런데 한국 농구에서 플라핑이 유독 이정현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 문경은(SK 감독)-이상민(삼성 감독)같은 스타 선수 출신들로 이어지는 할리우드 액션의 계보가 도마에 오른 지는 꽤 오래됐다. NBA에서도 플라핑은 뜨거운 화두로 종종 거론되지만 적어도 플라핑 자체를 철저한 비매너 행위로 간주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농구에서는 여전히 플라핑을 '파울로 얻어내는 요령이나 기술' 정도로만 여기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는 게 문제다.

플라핑에 익숙해진 선수들은 몸싸움을 기피하기 쉽다. 당연히 국제 무대에서는 이런 플라핑이 통하지 않는다. 국내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가 국내에서와 똑같이 플라핑을 시도하려다가 먹히지 않으면 심판에게 어필하는 모습을 종종 찾아볼수 있다. 한국농구의 국제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과도한 플라핑은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플라핑을 하는 선수도 문제지만, 판정에서 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삼공사의 통합우승이 예전 챔피언들에 비하여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한 데는 구단과 선수들 자체적으로 프로로서의 이미지 관리의 문제, 또 한편으로는 한국 농구계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의 유산이 복합적으로 녹아있다. 성적과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는 발상에서 벗어나 팬들을 감동시켜야 하는 프로다운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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