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루다>의 한 장면, 시인 파블로 네루다.

영화 <네루다>의 한 장면, 시인 파블로 네루다. ⓒ 에스와이코마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부문에서 상영된 영화 <네루다>는 1948년 냉전 시대 광풍이 몰아치던 칠레에서 시인이자 상원의원인 네루다가 탄핵 후 체포를 피하고자 망명길에 오른 과정과 비밀경찰의 추격을 담은 시대극이다.

<네루다>는 상원의원이던 네루다가 공산당 비합법화로 체포 위기에 놓이자,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했던 과거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네루다는 여장을 하고 여인들 사이에서 몸을 숨기는가 하면, 온갖 방법으로 위험한 순간들을 넘기다 뒤를 쫓던 경찰과 설원의 국경지대에서 만나게 된다.

 국경을 넘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

국경을 넘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 ⓒ 에스와이코마드


영화는 현실과 정치에 개입했던 시인 네루다의 칠레 시절을 중심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어두운 현실을 우화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시인의 언어가 정치의 모순과 한계를 어떻게 넘어서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네루다의 행적을 통해 암울했던 시대의 풍자와 현실의 무게를 그렸다.

<네루다>는 케네디를 다룬 영화 <재키>로 골든글러브 후보에 오는 파블로 라라인이 연출했다. 그는 네루다의 다양한 모습과 비밀경찰 오스카의 섬세한 내면의 움직임을 칠레의 풍광과 함께 잘 묘사했다. 저항시인 네루다는 칠레의 국민배우 루이스 그네코가 맡았다. 그는 네루다의 이중적인 행동과 성격을 잘 표현했다. 네루다를 추격하는 비밀경찰 오스카 역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체 게바라로 분했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맡아 미묘한 심리를 열연한다.

 비밀경찰 오스카.

비밀경찰 오스카. ⓒ 에스와이코마드


네루다를 쫓는 비밀경찰 오스카

공산당과의 연립 내각을 파기한 비델라 대통령에 반발해 탄핵을 주도한 네루다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연설 내용이 국가원수 모독죄로 수사선상에 오른다. 비밀경찰 오스카는 그를 체포하라는 대통령의 임무를 받아 네루다를 쫓는다.

영화는 오스카가 네루다를 체포하기 위해 미행하고 추격하며 보고 겪은 네루다를 오스카의 시점에서 그려간다. 시종일관 비밀경찰 오스카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끌어가며 그의 변화하는 심리를 묘사한다.

오스카는 네루다를 추격하는 동안 그의 책을 탐독하게 되고, 네루다의 사상에 경도된다. 이어 자신이 네루다가 말하는 가난한 민중의 아들이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오스카의 추격은 사상범을 쫓는 추격이 아니라 어느덧 네루다를 흠모하고 따르는 '보호자'의 관계로 빠져든다. 번번이 코앞에서 네루다를 놓치는 오스카는 어쩌면 네루다의 망명을 방조하는 경찰이다.

 경찰 캐릭터도 눈여겨 봐야 한다.

경찰 캐릭터도 눈여겨 봐야 한다. ⓒ 에스와이코마드


오스카는 그를 부정하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노동자와 환락가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네루다와 어울리고 그의 망명을 돕는 모습을 목격하지만, 매번 네루다를 체포하는 데 실패한다. 한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시를 쓰면서도 상류층 출신으로 파티를 즐기는 네루다의 위선적인 면모도 오스카의 시점으로 여과 없이 드러난다.

하얀 눈으로 덮인 설원의 칠레 국경에서 네루다와 오스카가 만나는 추격전의 마지막 장면은 충격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남미의 음악과 춤이 영화를 감칠맛 나게 하는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 <네루다>는 2016년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 이후 토론토국제영화제, 시카고국제영화제, 뮌헨필름페스티벌, 골든글러브 어워즈 등 전 세계 20여 개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 상과 외국어영화상 등에 지명되었다. 국내에서는 5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네루다 파블로 라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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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미디어기독연대 대표,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운영위원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감사, 가짜뉴스체크센터 상임공동대표, 5.18영화제 집행위원장이며, NCCK언론위원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특별위원, 방송통신위원회 보편적시청권확대보장위원, 한신대 외래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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