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사 진진


영국연방에 속하는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국가 중 하나다. (영국연방 중 북아일랜드만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 국가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거나, 시민 결합 제도를 통해 동성 결혼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

잉글랜드를 비롯하여 현재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유럽 국가들이 처음부터 동성애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기독교 문명을 바탕으로 이뤄진 유럽 국가들은 독실한 개신교, 가톨릭 신자들이 밀집해 있으며, 동성애는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히 이루어져 왔다.

지난 27일 개봉한 <런던 프라이드(Pride, 2014)>는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1984년을 배경으로 한다.

1980년대, 지금과는 달랐던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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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영국은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마가렛 대처 수상 집권 시기로, 성 소수자들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거리낌 없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영화에서 '광부들을 지지하는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모임(아래 L.G.S.M)을 이끄는 마크(벤 슈네처 분)과 더불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조(조지 맥케이 분)는 이제 막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초보 게이다. 영국의 전형적인 보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조는 부모님 몰래 성 소수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집회에 참여하고, 그곳에서 L.G.S.M의 핵심 멤버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런던의 게이, 레즈비언 권리 향상을 위해 앞장서는 마크는 연대 차원에서 자신들과 비슷하게 대처 정부의 탄압을 받는 파업 광부들을 돕기 위해 나서지만, 같은 성 소수자들 사이에서도 큰 호응을 받지 못한다. 광부 노동조합에서도 게이, 레즈비언들이 자신들을 위해 모금 활동을 벌이는 것을 순순히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크가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에 따라, 웨일스에 위치한 작은 탄광 마을에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한 L.G.S.M은 우여곡절 끝에 연대에 성공하게 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L.G.S.M이 어떤 단체인지 모르고 그들을 받아들었던 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고 당혹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성 소수자들도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은 자신들을 돕기 위해 나선 게이와 레즈비언들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물론 모든 마을 주민들이 성 소수자들을 선뜻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성 소수자들에게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주민들 때문에 곤욕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성 소수자들과 광부들과의 연대 또한 위기에 빠지게 된다.

영화 속 등장하는 다수의 이성애자는 성 소수자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혐오의 발언을 툭 던진다. 타인을 모욕하는 행위이지만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성 소수자들을 두고 신의 섭리를 거스른 비정상으로 간주하며, 교화의 대상으로 여긴다. 하지만 마크를 비롯한 성 소수자들은 사람들에게 받는 모든 모욕을 감내한다. 성 소수자들 내에서도 광부들을 위한 모금 운동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탄광 마을의 몇몇 주민들 또한 L.G.S.M과의 연대를 방해하는 악순환 속에서도 마크와 친구들은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가해진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더 적극적으로 탄광 마을과의 연대에 동참한다.

<런던 프라이드>에는 한국 영화 팬들 사이에서 친숙한 배우들이 종종 등장한다.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 출연으로 한국에서도 꽤 높은 인지도를 구축한 빌 나이를 주축으로 <셜록> 시리즈에서 짐 모리아티로 사랑받는 앤드류 스캇이 HIV 양성 증상을 가진 조나단(도미닉 웨스트 분)을 사랑하는 성 소수자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다. 2014년 동성결혼이 법제화될 정도로 성 소수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영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호화 캐스팅이기도 하다.

하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난무하던 잉글랜드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받고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성 소수자 소재 영화가 영국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차별과 혐오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보편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용감한 성 소수자들과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열띤 지지를 보냈던 시민들과의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기상조'를 말하는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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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 소수자들이 원하는 것은 크지 않다. 성 소수자들 또한 보통의 시민으로서 응당 누려야 하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고, 자신들을 포함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 그러나 성 소수자들의 간절하고 진실한 외침에 다수의 사람은 "(성 소수자의 인권은) 나중에"를 외친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생각했고, 사회 전반적으로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면서 동성애 합법은 국민 정서가 허락하지 않으며,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인다.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차별은 하지 않는다는 말도 심상치 않게 들린다.

실존 인물인 마크가 광부들을 돕기 위한 게이와 레즈비언의 모임을 조직하던 1984년 런던에도 동성애자들을 위한 인권 보장 운동은 '시기상조'였다. 현재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국가들도 처음부터 동성애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거리로 나선 성 소수자들의 오랜 투쟁의 산물이고, 이들의 싸움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만약에 게이와 레즈비언들과의 연대에 나선 웨일스 탄광 마을 주민들이 '성소수자들의 인권은 나중에'와 같은 마인드였다면, 오늘날 영국에 거주하는 성 소수자들의 인권은 여전히 30년 전 그대로였을지 모른다. 성 소수자들이 먼저 파업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한국의 성 소수자들 단체들도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를 주축으로 세월호, 쌍용차 파업, 촛불 집회 등 각종 사회적 연대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5일 열린 JTBC 초청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한 대선 주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유일했다. 지난 25일 토론에서 있었던 심상정 후보의 발언처럼 동성애는 찬/반으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각 개인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이다. 타인이 좋고 싫고 찬성 반대를 나눌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은 동성애는 사회 통념상 합법화는 아직 이르며, 성 소수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나중의 일로 미룬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에 나중은 없다. 각자가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달리 보일 뿐. 처음에는 게이, 레즈비언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으나,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성 소수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들의 감동 실화를 다룬 <런던 프라이드>를 지금 꼭 보라고 '강추'드리고 싶다.

런던 프라이드 동성애 영화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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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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