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캐릭터가 도봉순을 살렸다.

배우의 캐릭터가 도봉순을 살렸다. ⓒ JTBC


<힘쎈여자 도봉순>(아래 <도봉순>)은 출연 배우들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며 성공 신화를 썼다. 'JTBC 최고 시청률'이라는 기록은 그 성공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박보영과 박형식 커플이 만드는 케미스트리는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도봉순이란 캐릭터는 박보영의 이미지로 가장 적절하게 표현된다.

작고 귀여운 박보영이 괴력을 발휘해 불의와 맞서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박보영의 이미지와 합쳐져 큰 재미를 만들어낸다. 깜찍한 모습을 하고 악당들을 혼내주는 여성 캐릭터는 '도봉순'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그러나 문제는 박보영과 박형식의 케미스트리가 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대부분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대체로 가벼운 터치로 흐른다. 크게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배우의 매력에 빠져들다 보면 한 시간은 금방 흐른다. 드라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박보영과 박형식의 이미지는 큰 역할을 한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도봉순>의 이야기 구조 속에서도 이 둘의 합은 시청률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제작진의 '역량부족'은 배우로 커버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드러난다. 드라마 후반부,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도봉순> 속 작위적인 설정들, 긴장감 떨어트려

 결국 힘 쎈 여자도 '남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결국 힘 쎈 여자도 '남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 JTBC


사실 처음부터 이런 기미가 보였다. 도봉순이 슈퍼맨처럼 '힘이 센' 캐릭터라는 설정은 신선했지만 그 설정을 활용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도봉순의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설정들은 작위적이고, 메인이 사건인 '도봉동 살인사건'은 드라마에 녹아들기보다는 별개의 사건처럼 다뤄진다. 사건은 유기적인 구성으로 치밀하게 짜여있기보다는 그저 사건을 위한 사건처럼 느껴지고, 그렇기 때문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실패한다.

도봉순과 안민혁(박형식 분)과의 러브라인 역시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극 초반 안민혁이 아무런 경험도 없는 도봉순에게 경호업무를 제안하는 것부터 자연스럽지 않다. 도봉순은 실제로 안민혁이 수차례 다치거나 위험에 처할 동안 제대로 된 경호를 하지 못한다.

그런 도봉순에게 '같이 자자'며 집으로 끌고 오거나, 함께 누워 "엄마는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했다"고 고백하는 장면도 상당히 뜬금없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설정들로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를 만들려고 하지만 에피소드의 흐름은 뚝뚝 끊긴다. '힘센 도봉순'이라는 설정을 제외하면 드라마를 흥미롭게 만드는 설정 자체가 부족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도봉동 살인사건의 범인 김장현(장미관 분)의 이야기는 가장 황당한 부분이다. 도봉순의 능력이면 충분히 범인을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범인은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공격을 당해도 불사신처럼 멀쩡하다. 차라리 범인도 '특수능력 사용자'라면 이해가 가능하지만,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인 범인이 불사신처럼 살아나고 도망 다니는 모습은 긴장감보다는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경찰들의 수사 역시 너무나 안일하다. 시체가 발견되지도 않은 채 '수사 종결'을 내리는 경찰들의 모습을 공감하기란 어렵다.

'판타지'와 '개연성'은 분명 다르다. 현실적이지 않은 판타지에도 작가가 부여한 세계관이나 설정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개연성이다. <도봉순>은 그 개연성을 명백히 놓쳤다.

이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힘쎈 여자' 도봉순의 캐릭터다. 도봉순은 원더우먼처럼 악을 심판하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 캐릭터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그의 행동은 개인적인 이익과 주변 사람의 안녕에만 쓰인다. 가장 큰 아쉬움은 그런 힘을 가지고도 결국 남자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야만 해결이 되는 사건의 종결부다. 힘을 잃은 도봉순은 결국 안민혁이 구해줘야 하고, 위기 상황속에서 힘을 다시 찾는 것도 안민혁의 사랑 때문에 가능하다. 자신이 가진 힘을 주체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도봉순의 캐릭터는 점차 매력마저 잃어간다. 이 캐릭터는 아무리 사랑스러운 박보영이라도 어쩔 수가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 박보영 박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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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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