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은 변수가 상당히 많은 스포츠로 통한다. 1위로 달리고 있다가도 갑작스럽게 미끄러 넘어져 메달을 놓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이번 세계선수권 대회는 그런 대회였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지난 10~12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당초 여자부에선 4년 연속 종합 우승 자리를 지킬 것으로 봤고 남자부는 혼돈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최강 원투펀치'를자랑하는 심석희(한국체대)와 최민정(성남시청)은 유럽의 텃세와 이해할 수 없는 판정에 울어야 했다. 반면 남자부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서이라가 4년만에 종합 우승을 되찾아 오며, 대약진을 한 채 막을 내렸다.

 서이라의 모습

서이라의 모습 ⓒ 박영진


'대약진' 한 남자 쇼트트랙

남자 쇼트트랙은 이번 대회를 통해 부활과 희망을 보았다.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노골드에 그치며 충격적인 결과를 냈던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세계의 중상위권 선수들이 상향 평준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그러나 올 시즌 맏형 이정수(고양시청)의 부활을 시작으로 이번 대회에선 신다운과 서이라의 활약이 빛났다. 신다운은 첫날 15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환호했다. 올 시즌 월드컵에서 줄곧 넘어지면서 성적이 저조했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두 개의 은메달을 획득했고, 이번 대회에서도 오랜만에 금메달을 수확했다. 비록 1000m에서 레이스 도중 넘어지며 종합 우승과는 멀어졌지만, 3000m 슈퍼파이널에서 서이라의 종합우승을 같이 만들어낸 1등 공신이었다.

서이라는 이번 대회 전 종목에서 3위 이내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첫날 1500m와 500m에서 모두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1000m에선 1위, 그리고 3000m 슈퍼파이널은 2위를 차지했다. 서이라는 국가대표 경력은 꽤 있었지만 그동안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올 시즌에도 초반 부상으로 인해 월드컵 경기에서 이탈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에서 1000m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페이스를 끌어올렸고 이번 대회에서 절정의 기량을 보여줬다. 특히 1000m 결승에서 보여준 인코스 장악능력은 박수 받기에 충분했다.

이정수는 비록 이번 대회에선 1500m에서 운이 따라주지 않으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지만, 올 시즌 월드컵 1500m에서 랭킹 2위를 할 만큼 이제는 부진을 털고 주장으로서 든든하게 팀을 이끌었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남자 선수들이 종합 우승을 할 것이란 예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쌍두마차로 이끌고 있는 여자부의 심석희(한국체대)와 최민정(성남시청)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정반대로 남자부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그동안 부진이라는 꼬리표를 좀처럼 떼지 못했던 남자부가 세계선수권을 바탕으로 대약진하며 평창을 향한 발판을 마련했다.

기대주들로 가능성 보인 남자 쇼트트랙

올 시즌 남자 쇼트트랙은 국가대표 선수뿐만 아니라 후보 선수들의 활약이 매우 컸다. 서이라와 박세영(화성시청)이 시즌 초 부상으로 월드컵 대회에 불참하면서, 후보 선수였던 황대헌(부흥고), 홍경환(서현고)이 그 자리를 메웠다.

황대헌은 올 시즌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신예였다. 2차 월드컵 패자 부활전에서 1000m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시작부터 무서운 존재임을 보여줬다. 그는 대표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불참한 5, 6차 월드컵에도 다시 나섰다. 그리고 역시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보여줬다. 특히 전통적으로 약했던 500m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어느 때보다 값진 수확을 거뒀다. 홍경환 역시 황대헌과 마찬가지로 월드컵 시리즈에 여러 번 출전하며 지난 6차 월드컵에서 첫 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이외에도 국가대표 마지막 순위로 합류한 임경원(화성시청)과 유스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바 있는 이효빈(경희대)을 비롯해 임용진(경희대) 등 차순위 선수들이 대거 활약하면서 평창을 앞두고 남자 쇼트트랙에 대한 희망이 다시 커졌다.

 이정수의 모습

이정수의 모습 ⓒ 대한빙상경기연맹


여전히 춘추전국, 방심은 금물

한 시즌을 통해 기대감이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방심은 금물이다. 남자 쇼트트랙은 이미 상향 평준화가 상당히 진행되면서 이제는 실력이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다. 과거엔 볼 수 없었던 헝가리, 네덜란드, 이스라엘, 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선수들이 준결승과 결승에까지 오르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올 시즌 초반 월드컵에서 역사상 첫 금메달을 가져가기도 했다.

여기에 기존 강국이였던 캐나다는 찰스 해믈린의 뒤를 이어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여러 선수들이 고르게 활약하며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었다. 중국은 단거리 중심에서 벗어나 점차 장거리에도 선수들이 능해지고 있고, 계주에선 막강한 조직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번 세계선수권에 나선 선수 중 일부는 아직 컨디션이 채 올라오지 않은 모습도 보였다. 대표적으로 빅토르 안(안현수, 러시아)이 그러했다. 다음 시즌인 올림픽 시즌에는 모든 선수들이 기량을 최고조로 끌어 올려 나타날 것이기에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는 경쟁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풀지 못한 계주에 대한 숙제도 해결해야 한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이 국제대회에서 계주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지난 2014-2015 시즌이 마지막이다. 무려 3년 가까이 된 것이다. 이렇게 국제 경쟁에서 밀린 것은 무엇보다 계주에 특화된 인재가 없기 때문이다. 계주는 인코스 능력과 순간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순식간에 순위 교체가 이뤄지고, 짧은 바퀴에 다른 선수들을 따라 잡아 추월해야 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올 시즌 남자 선수들 가운데 이런 능력을 가진 선수는 거의 없었다. 특히 마지막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할 2번 선수에 맞는 인재가 없었다. 평창 올림픽에서 계주에서도 시상대에 오르기 위해선 이 부분이 절실하다.

소치에서의 아픔을 씻고 평창에서 웃기 위해서는 비시즌 동안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전략을 구상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쇼트트랙 평창동계올림픽 남자쇼트트랙 서이라 이정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