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배구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와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경기. 3세트 삼성화재 선수들이 득점한 뒤 기뻐하고 있다.

지난 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배구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와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경기. 3세트 삼성화재 선수들이 득점한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던 삼성화재가 끝내 준PO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삼성화재는 창단 후 처음으로 배구 없는 봄을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삼성화재의 시즌은 끝났다.

찬란했던 삼성화재의 시대

1995년 창단한 삼성화재는1997년부터 2004년까지 슈퍼리그를 8년연속 제패한 뒤 V-리그 출범 첫 해 챔피언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한국 배구 최강자로 군림했다. 2005-2006 시즌과 2006-2007 시즌 현대캐피탈에 연달아우승을 내줬지만 2007-2008 시즌부터 2013-2014 시즌까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7연패라는 대기록과 함께 V-리그통산 8회 우승으로 20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야말로 삼성화재의 '왕조'였다.

특히 2010-2011 시즌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삼성화재는 '수비도사' 석진욱의 부상을 기점으로 수비 조직력이 와해되며 2라운드 종료 후 최하위까지 추락했다. 3라운드부터 차츰 순위를 올려가며 정규리그를 3위로 마감했지만 창단 이후 최저순위와 최다패배를 기록했다.

그러나 삼성화재의 진짜 반격은 포스트시즌에서 시작됐다. 준PO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LIG손해보험, 현대캐피탈, 대한항공을 연파하며V5를 달성한다. 준PO에서 LIG손해보험에 2승 1패로 진땀승을 거두었을 뿐, PO에서 만난 현대캐피탈과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대한항공에게 각각 3:0, 4:0으로 시리즈를 스윕하며 진정한 승부사의 기질을 보여주었다.

삼성화재는 주춤했던 이전 시즌을 뒤로하고 2011-2012 시즌부터 2013-2014 시즌까지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통합 3연패로 V8을 달성한다. 주축선수들의 은퇴와 이적, 계속된 우승으로 신인드래프트 지명권 순서에 밀리며 원활하지 못했던 신인 선수 수급까지 시즌 개막 전이면 항상삼성화재의 위기론이 대두되었지만 우승은 그들 차지였다.

신치용 시대의 마지막과 시대의 변화

영원할 것 같던 삼성화재의 시대는 2014-2015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OK저축은행에 3연패로 무너지며 마침표를 찍었다.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이 나란히 포스트시즌에 탈락하는 이변 속에 삼성화재는 주포 박철우의 입대 공백에도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젊음의 패기로 무장한 OK저축은행에 시리즈를 스윕 당하며 무너졌지만 OK저축은행의 이변으로 평가되었을 뿐 삼성화재의 몰락이라 말하는 이는 드물었다.

2015-2016 시즌을 앞두고 창단 감독 신치용이 물러나고 임도헌 감독이 새롭게 부임했다. 여느 시즌처럼 막강하던 모습은 거의 사라진 채 포스트시즌 진출에 사력을 다하며 정규리그 3위를 차지했다. 삼성화재는 준PO에서 대한항공을 꺾고 PO에서OK저축은행을 마주한다. 지난 시즌의 복수를 꿈꿨지만 특급용병 시몬이 버티던 OK저축은행의 벽은 높았다. 결국 2연패로 허무하게 무너져 창단 이후 최초로 챔피언결정전에 오르지 못했다.

삼성화재에서 두 번의 우승을 이끌었던 레오가 불성실한 태도로 퇴출된 이후 영입된 그로저의 불규칙한 기용과 주축 선수들의 은퇴 이후 정비되지 않은 수비라인으로 인한 리시브 불안이 시즌 내내 발목을 잡았다. 창단 이후 최저성적인 3위를 기록한 삼성화재는 그동안 대두되었던 위기론들이 점점 현실화되어가고 있었다.

왕조의 몰락, 최악의2016-2017 시즌

2016-2017 시즌을 앞두고V-리그 남자부에서도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제도가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삼성화재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많았다. 철저한 분업화 배구로 용병의존도가 현저하게 높은 삼성화재이지만 안젤코-가빈-레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우승을 이끌었던 용병들은 입단 당시에는 배구계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삼성화재에서 키워진 그들은 최고의 용병으로 성장했고 리그를 지배했다.

2013-2014 시즌을 앞두고 라이벌 현대캐피탈이 세계 3대 공격수라는 아가메즈를 영입했지만 삼성화재는 이전 시즌 우승을 함께한 레오로 맞붙었고 결국 우승은 삼성화재였다. 이미 여러 차례 검증된 용병 트레이닝 노하우가 충분했던 만큼 동등한 조건에서 외국인 선수를 뽑는다면 삼성화재에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배구는 용병 한 명에 의존하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철저한 분업화배구, 속칭 '몰빵배구'는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스피드배구 시즌2'로 무장한 현대캐피탈과 명장 박기원 감독을 데려온 대한항공, 국내 공격수들이 성장한 한국전력까지 V-리그는 평준화되었고 용병 한 명으로 승리할 수 없었다. 결국 삼성화재는 추락했다.

시즌 중반, 군 복무를 마친 박철우가 돌아와 뒷심을 발휘하며 4위로 올라서 3위 한국전력을 바짝 추격했다. 포스트시즌 진출의 가능성을 살리며 준PO 성사여부를 최종전까지 끌고갔지만 한국전력은 준PO를 허락하지 않았다. 삼성화재와의 승점차를 벌려 준PO를 무산시키며 PO에 직행했다. 삼성화재로서는 6라운드 시즌 마지막 맞대결에서 0-3 셧아웃 패배를 당한 것이 뼈아팠다.

이렇게 삼성화재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에 거둔 역대 최저성적을 1년 만에 경신했고 역대 최다패배와 역대 최저승률까지 2016-2017 시즌은 삼성화재 역사상 최악의 시즌이 되었다. 이렇게 왕조가 몰락했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랴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은퇴, 이적 그리고 원활하지 못했던 신인 선수 수급. 위기론이 대두될 때마다 제시되었던 근거들은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났고 왕조는 몰락했다. 혹자들은 신치용 전 감독을 비난한다. 감독 재임 시절 베테랑 선수들과 용병 위주의 경기를 꾸려 신인 선수들이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베테랑들의 은퇴와 이적은 수비 조직력 와해와 리시브 불안으로 이어졌으며 용병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플레이는 국내 공격수들의 공격력 약화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100% 틀린 말도 맞는 말도 아니다. 프로 감독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이다. 팀의 리빌딩을 위해 시즌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직 한국 프로 스포츠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신치용 감독은 이상적인 유망주 육성과 조직력 강화보다 현실적인 승리를 선택했을 뿐이다. 현실적인 승리를 위해 합리적인 분업화배구, 속칭 '몰빵배구'를 팀에 주입했고 삼성화재는 승리했다. 창단부터 20년간 감독으로 재임하며 쌓아온 슈퍼리그 8연패와 V-리그 V8 이라는 금자탑은 누구도 욕할 수 없을 것이다.

몰락한 왕조, 새 시대를 향해

왕조는 몰락했다. 패배를 모르던 팀이지만 이젠 패배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이게 삼성화재의 영원한 몰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2014-2015시즌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이 함께 무너졌지만 현대캐피탈은 지난 시즌 '스피드배구'로 무장해 후반기 18연승을 거두며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고 대한항공은 올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전체적인 리그 전력이 평준화되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만큼 삼성화재가 가지고 있는 V-리그 최다 우승팀이라는 역사와 우승 DNA는 삼성화재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고 새 시대는 열릴 것이다. 왕조는 몰락했지만 삼성화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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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청춘스포츠 박제윤
삼성화재 봄배구 V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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