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조세 무리뉴 감독은 경기 전날 있었던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곳이 경기를 치러야 할 경기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잔디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사실상 맨땅이나 다름없었고,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동네 공원에서 축구 경기를 하는 듯 보였다.

맨유가 10일 오전 3시(이하 한국 시각) 러시아 로스토프 올림프 2경기장에서 열린 2016·2017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16강 1차전 로스토프와 경기에서 1-1로 비겼다. 맨유는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원정에서 득점과 함께 무승부를 기록하며 8강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

'뻥축구'가 아니면 답 없던 잔디 상태

맨유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짧은 패스를 주고받고, 측면에서 적극적인 드리블 돌파를 시도해 기회를 만들려 했지만, 경기장의 잔디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발을 떠난 공은 팅팅 튀어 올랐고, 빨라지고, 느려졌다. 규칙은 없었고,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경기가 진행됐다.

결국 답은 '뻥축구'뿐이었다. 맨유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중원에 위치한 마루앙 펠라이니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패스를 오래 주고받으면 불리했기 때문에 전방으로 길게 넘겨주고, 헤딩 이후 침투와 슈팅을 노렸다. 그러나 너무 단순한 공격 패턴은 홈팀 로스토프에 통하지 않았다.

로스토프는 여유가 있었다. 경기 전날 이반 다닐얀트 감독이 "잔디 상태는 똑같은 조건이다"라 밝혔지만, 그들은 맨땅과 같은 잔디에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로스토프는 3번의 패스 이내에 슈팅까지 가져갔다. 볼을 길게 끌지 않았고, 공격은 간결하게 진행했다. 드리블 시도나 짧은 패스 역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선취골은 맨유의 몫이었다. 전반 36분 페널티박스 좌측 부근에서 펠라이니가 살짝 밀어준 볼을 이브라히모비치가 낮게 깔아줬고, 이를 헨리크 미키타리안이 골문 안으로 차 넣으면서 로스토프의 골망을 흔들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경기 상황에서 나온 귀중한 선취골이자 원정 득점이었다.

맨유는 후반 6분 달레이 블린트의 낮고 빠른 크로스를 이브라히모비치가 흘려보냈고, 애슐리 영이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하며 추가골까지 노렸다.

하지만 맨땅이나 다름없는 잔디 상태에 적응을 마친 홈팀 로스토프는 이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8분 오른쪽 윙백 칼라체프가 중앙선 부근에서 길게 넘겨준 볼을 알렉산드로 부카로프가 가슴 트래핑 이후 슈팅으로 연결하며 동점골을 뽑아냈다. 이 경기장에서는 어떻게 골을 만들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로스토프는 동점골 이후 맨유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사르다르 아즈문을 투입해 페널티박스 안쪽에서의 한 방을 더 적극적으로 노렸고, 전방으로 길게 붙여주는 패스로 맨유 수비진을 괴롭혔다. 그러나 로스토프는 더 이상의 득점을 기록하는 데 실패했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사실상 승리나 다름없는 맨유

맨유가 아쉽게도 승리를 놓치기는 했지만, 최악의 경기장 상태에도 불구하고 무승부를 따낸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다.

이날 맨유 선수들은 여러 차례 넘어졌다. 로스토프 선수와 충돌이나 경합이 없었음에도 최악의 잔디 상태 때문에 뜻대로 달릴 수조차 없었다. 폴 포그바와 안데르 에레라의 패스는 통하지 않았고, 미키타리안의 측면 돌파도 볼 수 없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전방에서 강력한 몸싸움과 공중볼 장악 능력을 보여줬지만, 혼자서 움직이다 넘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럼에도 맨유는 원정골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펠라이니의 높이와 이브라히모비치의 센스, 미키타리안의 침투와 마무리가 빛났다. 만약 이 득점이 아니었다면, 맨유가 승점을 따내기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로스토프의 동점골 이후 경기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갔고, 맨유는 선취골 이후 이렇다 할 공격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득점을 만들어낸 선수들도 대단했지만, 맨유 수비진의 집중력은 더 훌륭했다. 불규칙한 잔디 상태 때문에 중거리 슛에 대한 위험이 커졌고, 공중볼 다툼 이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마르코스 로호와 크리스 스몰링, 필 존스가 맡은 스리백 수비는 좀처럼 슈팅 기회를 내주지 않았다. 특히 스몰링과 로호는 공중볼을 장악했고, 절묘한 태클로 상대의 공격을 여러 차례 끊어내면서 승점을 따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 킬러' 사르다르 아즈문은 어땠을까

이날 경기 또 하나의 관심사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 아즈문의 출전 여부였다.

아즈문이 누구인가. 아즈문은 2014년 우리나라와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해 결승골을 뽑아냈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맞대결에서도 또다시 결승골을 뽑아냈다. 우리나라는 아즈문의 활약에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려야 했고, 박지성의 은퇴 이후 이란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하는 징크스를 이어가야 했다.

그렇다면 그의 올 시즌 활약은 어떨까. 올 시즌 아즈문의 활약은 나쁘지 않다. 그는 기나긴 겨울 휴식기 이후 재개된 지난 3일 리그 경기에서 멀티골과 1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리그 15경기 출전 4골 2도움, 특히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득점을 뽑아내는 '강심장'도 보여줬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아즈문은 후반 28분 교체 투입됐지만, 기회를 잡아내지 못했다. 전방에서 부지런히 움직였고, 과감한 드리블 돌파 시도로 맨유 수비를 흔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무엇보다 긴 패스에만 의존한 공격 전술에서는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직 22살에 불과한 아즈문이 한국 축구에 불안한 존재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그의 활약을 지켜보며 미리 대비하는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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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VS 로스토프 이란 사르다르 아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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