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든 피겨스> 포스터. 지금 시국에 참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이다.

영화 <피든 피겨스> 포스터. 지금 시국에 참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이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1960년대 미국은 극단주의적인 매카시 열풍이 여전히 남아있던 곳이었다. 흑인들의 인권 운동은 시위과정에서 폭력적 진압을 당했으며, 백인우월주의는 흑인들을 하층민으로 대했다. 버스를 타도 흑인들이 앉을 자리와 백인이 앉을 자리가 구분돼 있었고, 백인의 빈자리에는 흑인이 앉을 수조차 없었으며, 화장실도 남녀에 대해 인종에 따라 구분되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하찮은 취급을 당하던 흑인들이 당시 소련과 우주탐사 경쟁을 벌이던 나사(미 항공우주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막혔던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게 된 것은 눈여겨볼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흑인들은 백인들 속에 파묻혔던 흙 속의 진주였다고나 할까?

<히든 피겨스>는 바로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흑인이라고 차별받던 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흑인차별은 물론이고 여성차별도 만만치 않은 곳에서, 흑인에 여성이라는 당시로써는 만만치 않은 굴레를 이겨내는 과정이다. 불리함을 넘어 불가능한 현실을 바꾸어낸 작은 혁명인 셈이다.

800m 달려 화장실 가는 흑인여성의 웃픈 현실

 인종차별이 보편화되어 있는 세상, 그들은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

인종차별이 보편화되어 있는 세상, 그들은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당시 상황을 보면 이들의 도전은 달걀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 답이 안 나오는 고차방정식 같은 구조가 얽히고설켜 있다. 백인들은 기본적으로 올라가는 승진도 흑인이라 매우 더디다. 아니 업무는 맡겨도 정식으로 직책을 높여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실력이 뛰어나 엔지니어가 되려고 해도 규정은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교육을 받으면 가능하지만, 교육을 하는 학교는 흑인의 입학이나 수강이 제한돼 있다. 공공 도서관에서 책 한 권 대출받기도 쉽지 않은 현실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흑인이란 좌절감을 느끼기 충분한 상황이다.

백인 전용 화장실을 갈 수 없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800m를 가야 하는 화장실 문제는 우스운 한편으로 슬프게 다가온다. 누구나 마시는 커피 역시 흑인이 사용하는 것을 따로 구분해 놓을 정도로 당시 인종차별은 보편화 돼 있는 사회적 구조였다.

이런 현실을 깨보겠다는 의지를 공유한 흑인 여성 셋은 부지런하게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에 끊임없이 도전한다. 개인의 욕망과 함께 꿈을 이뤄보겠다는 의지가 결합한 결과다. <히든 피겨스>는 그래서 흥미롭다. 제도의 굴레를 넘어서서 성취를 이뤄내는 과정에 더해 실화였다는 부분은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다.

그렇다고 인종갈등 과정에서 지나친 대립이나 갈등을 강조하지 않는다. 도드라지게 보이는 부분은 차별이다. 일반적이라면 누군가 심하게 괴롭히고 차별을 조장하는 인물이 나와야 하지만 사회 구조 자체가 원인이다 보니 몇 가지 특징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그 심각성을 전달한다. 유색인종이 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표기된 장치들이 그렇다.

차별이 일상화돼 있는 환경에서는 그게 차별이라는 생각을 안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차별이 인재의 역량을 묻히게 할 때 자연스레 주변의 분노가 폭발한다. 더구나 그 인재가 꼭 요구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흥분하기보다는 그들의 처지를 호소하면서 자각하게 만드는 식이다. 그러니까 차별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엄청난 문제라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달한다. 영화의 결론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로 마침내 실력을 인정받는 흑인 여성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아 놓은 메시지는 성공한 사람들보다는 차별을 조장하는 잘못된 구조에 대한 비판과 평등의 중요성이다.

차별을 이겨낸 성공 그리고 비판

 의미와 재미를 골고루 담고 있는 영화. 우리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곱씹어야 한다.

의미와 재미를 골고루 담고 있는 영화. 우리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곱씹어야 한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히든 피겨스>는 흑인들의 처절한 투쟁이 담겨 있지는 않다. 간혹 보이는 흑인들의 시위에서 영화의 주인공들은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이다. 물론 지지의 표현은 빠지지 않는다. 차별에 맞서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전반적으로 온화하다. 우주개발의 주역인 나사가 1960년대 흑인 인권 개선에 특별한 공간적 배경으로 자리하는 것은 온순한 저항의 바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소 삐딱하게 본다면 실력으로 이기는 것은 흑인 중에서도 상위층과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얻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그 도전 기회조차 못 얻는 경우도 많다. 배운 게 적거나 가진 게 없는 흑인도 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메시지는 약해 보인다.

그런데도 <히든 피겨스>는 의미와 재미를 골고루 담고 있다. 차별을 딛고 이뤄내는 성취와 그 과정은 감동적이다. 시대적인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이 영화를 보고 그저 웃음으로 흘려보낼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이 같은 시대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흘러간 옛 시대 이야기가 아닌 퇴행적 과거를 다시금 불러오려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도 일깨워준다. 특히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인우월주의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우회적으로 비꼬고 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60년대는 한국에서는 박정희 시대가 펼쳐진 시기다. 미국에서 흑인의 인권이 짓밟히던 때 한국에서는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던 군사독재가 강화되고 있었다. 막연히 그때의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현실에서, 차별과 억압이라는 구시대적 유물과 같은 상황을 되돌아보고 과거의 잘못된 모습을 깨닫는 것은 <히든 피겨스>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이다. 옛 시대에 대한 그리움이 나라를 어떻게 망쳐놨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그래서 시국집회에 나가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들에게 꼭 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영화다.

비록 수상은 못 했으나 올해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작으로 올랐던 것은 이 영화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부분이다. 3월 초에 열린 마리끌레르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미국 영화인들의 반트럼프 의지에 대한 한국 영화인들의 연대감이기도 했다. 시대가 영화의 정치성을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는 여전히 시대적 명제라는 점에서 영화의 여운 길게 남는다. 오는 23일 개봉.

히든 피겨스 나사 흑인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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